바둑 잘뛰는 사람 혁추(弈秋) 맹자에 “ 바둑 잘뛰는 사람 혁추(弈秋)를 설명 했다. 그에 실린 저명(著名)이란 문구는 글자꼴이 비슷한 절가락 저자 저명(箸名)이 옳은 글자다. 옛적에는 절가락 저 箸, 또는 대죽변에 조(助)자가 붙은 상형자 (筯) 두 글자를 혼용 했다. 도울조자는 백익 (助:益也)을 뜻했다. 어믐 조(助)는 삼가분진 이후에 산서성에 나타난 조나라와 같은 어음이다. 조(趙)나라의 먼 시조가 백익의 후손 조부 (伯益孫造父)라고 했다. 산서성에서 절가락(箸 筯)이란 어음이 처음 나타났다. 중원에서는 화려한 생활의 극치를 옥 절가락(玉筯. 紂為玉箸) 또는 상아로 만든 절가락 (紂作象箸而箕子泣)이라고 표현 했었다. 한국음식문화의 특징이…..
단군의 가름침이 묵가 (墨家)의 핵심 사상이다. 모두들 단군조선을 전설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단군왕검이 시련을 받고 사는 사람들을 옳바로 가르쳐 밝은 세상에 살도록 인도 한다는 홍익인간이 대한민국의 교육이념으로 채택되었다. 풀이에 논란이 있는 재세이화 (在世理化)를 AI에는 답하기를 ” “To govern and transform the world” or “to regulate and civilize human affairs.” The phrase “在世理化” is used to describe this divine mission: Hwanung’s role is to bring order, civilization, and moral guidance to the human world.” 라고 답한다. 국조 단군이 지시한 “신성한 사명”을…..
금미달을 떠나 만주 연해주로 올라가 살던 사람들 기록이 “동이전 읍루전挹婁傳”에 있다. 금미달에 살던 숙신 (肅愼)의 한 지류가 말갈 (靺鞨)이다. 그들이 만주땅으로 올라가 읍루 (挹婁) 라는 부족국이 함경도에서 부터 북쪽 끝을 알수 없는(未知其北所極) 넓은 해안에 살았다. 붉은 옥돌(赤玉) 우수한 피혁(好貂)등 자연 자원이 많이 나는 지역에 살았다. [1] 그들은 용맹하여 배를 타고 옛부터 전해오는 독약을 화살에 발라 이웃 나라들을 괴롭 혔다. 장신의 털보 모인(毛人)이 산다는 전설이 중국에 전해 왔다. 중원을 통일한 수나라가 처음으로 한해를 건너 한반도 하구 김해를 지나 일본과 구주를 돌아…..
맹자에 실린 돌아볼 고(顧)자 드디어 중국대륙 해안에 있었던 대륙백제와 가라의 수도를 찾았다. 맹자에는 바둑을 박혁(博弈)이라고 한 글자가 있다. 그가 살던 당시 혁추(弈秋)라는 국수가 있었다. 바둑기사 설명에 홍곡장지(鴻鵠將至)란 표현이 실렸다. 홍곡(鴻鵠)이란 안문관이 있는 금미달을 떠나 남쪽으로 네려온 기러기란 뜻이다. 양혜왕과의 대화에서 고홍안 미록 (顧鴻鴈麋鹿)이란 문구가 있다. 돌아볼 고(顧)자는 금미달을 떠난 가야를 뜻했다. 양나라때 고야왕( 顧野王)이 옥편(玉篇) 을 만들었다. 그 시절에 후경이 (侯景寇亂) 대륙백제 수도 거발성 (居拔城)을 분탕질 하여 문집이 모두 망실 (文集並亡逸) 되었다. 필자는 가야( 加耶, 加羅) 왕을 고야왕이라 했다고 논증했다……
애필로그 바둑(圍碁. Go)의 시원(始原): 시대와 장소. 오직 한국에서만 위기(圍棋 囲棋, 行く, go, departure)를 바둑이라 한다. 중원 기록에는 요임금(堯造圍棋)이 창안 하여, 그의 아들 단주 (丹朱)가 즐겼다고 한다. 아니다. 글자와 어음 언어에 그 사연이 있다. 바둑을 중원에서는 여러 글자로 기록 했었다. 논어 양화(論語 陽貨)편에 박이자(博弈者)로 적혂다. 공자는 [생각을 깊히 하고 지혜를 양성하는 행위]라고 했다. 맹자는 박이와 음주(博弈好飲酒)를 불효로 풀이했다. [1] 도가문시진경에는 [활쏘기, 현악기다루기, 바둑은 아무리 연습해도 똑 같은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는 뜻에 “習射, 習琴, 習奕”란 문구가 있다……
글자 속에 역사가 있다-1. 청구 (靑丘 青丘)의 어원: 청구(靑丘,青丘)를 [천독(天毒)을 설명 할때 나타난 쌍토규 밑에 붉을 단자 또는 달월 모양을 붙인] 두 글자로 쓰고 있다. 한국에서는 붉을 단 (丹)자 모양을 붙인 청구(靑丘)자를 쓰고 있다. 황제가 자부선인(紫府仙人)을 만났다는 청구 (靑丘)는 발해만 서쪽 산서성 대(代)현 오대산 유역이다. 이 곳에 쌍간하(桑干河) , 성수(聖水), 단수(檀水), 거마수 (巨馬水), 역수 (易水) 라고도 부르는 여울이 흐르는다. 이 곳에 커다란 무덤이 여러개가 흐터진 모양이 마치 푸른 산봉우리 같다 하여 만든 지역 이름이 청구 (靑丘 青丘)다……
단행본 [고조선 壇君朝鮮始末考] 출판 계약을 했습니다. 편술 후기 하바드 대학에서 연수를 마치고 귀국하던 윤내현(尹乃鉉) 씨로 부터 1988년에 “한국 고대사 신론”을 선물로 받았다. 몇차례 깊히 읽어 보았진만 많은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그 당시 미국 국회 도서관에서 일하시던 영남학파의 명맥을 이어온 강호석 (Thomas Kang) 박사님과 퇴계학에 관해 상의 했다. 상형문자는 중국 사람들이 만들어 그들이 글자 풀이를 연구하는 “훈고학 (訓詁學)” 을 다루었다. 한국에는 글자를 연구한 학자가 없었다는 예기를 듣고 새로 한학에 눈을 뜨게 되었다. 대학에 다니던 큰 딸이 읽던 이기백씨의 영문책 “Korea Old…..
진-한(秦漢) 혼란기 선사 시대 부터 중원 땅에 예맥 (濊貊. 斯)이라 살았다. 산서성(山西省, 隸省)에 있던 제후국 진(晉) 나라가 “조위한 趙 魏 韓”셋 으로 분열 되여 이때 부터를 전국 시대 (戰國時代,기원전 476년 또는 기원전 403년 ~ 기원전 221년 )라 한다. 전국칠웅이 다투던 중원을 진 시황제(秦始皇帝)이 기원전 221년에 통일 했다. 맹자(孟子; 기원전 372년?~기원전 289년?)가 양혜왕(梁惠王) 을 만나 대화를 했다. 그 무덤이 279년에 도굴했다. 모두위나라 역사서 (蓋魏國之史書)라 했다. 발굴된 죽간 문헌에 “益乾啟位, 啟殺之”란 문구가 나타나 우(禹)의 아들 개 (帝啟)…..
아로자등묘(阿鲁柴登墓) 아루 차이덴의 무덤-1 아로자등묘(阿鲁魯柴登墓)이란 서쪽에서 온 융족 (羌:西戎) 부풍 (扶風)출신, 세 지도자의 한 사람 (參也魯) 이 었던 루/로(鲁魯)의 무덤에 향불을 피워 제사를 지내던 언덕]이란 뜻이 있다. [1] 부풍에서 동남 쪽으로 나와 공자와 맹자의 고향인 노(魯)나라가 생겼다. [2] 공자의 사위 공야장 (公冶萇)이 현명하여 새들의 이야기를 이해 했다고 한다. 중앙 아시아에서 온 삼족오를 숭상하던 오손(烏孫)족이란 뜻이다. 그 옆에는 강태공을 시조로 하는 제 나라가 있다. 금관이 발굴된 곳은 금미달 영역으로 판정된 지역 서부가 된다. 고전에 실린 부풍 (扶風)이란 [단군조선 지역에 들어와…..
재미 한인으로서 도산 사상의 실천적 방안 구한 말 민족의 선구자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 1878년 ~ 1938년)는 안중근 (安重根, 1879년~1910년)의사와 동본 동년배셨다. 도산 사상의 실천은 현대 교육 탈 봉건 제도. 자주 독립으로 요약 된다. 국 내외 여러 사람들이 노력 하여 자주 독립은 하였지만 많은 영토를 잃어 버리고 나라는 두동강이 났다. 시대는 변한다. 배가 태풍을 만나 항해를 하듯, 주위 환경에 따라 때때로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그러나 목적지는 변할수 없다. 우리는 동양 최초의 국가 조선 (朝鮮)이란 이름을 유지 하고, 개천절 (開天節) 행사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