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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Mosol’s Book Collection
10 Mar

삼국사기 (三國史記) 에 실린 낙랑(樂浪) 과 대방(帶方)-1:

Lee Mosol Blog 0 0

낙랑(樂浪) 과 대방(帶方)의 위치가 발해만 서쪽 해안 일대로 판정되고 보니, 삼국사기 (三國史記)에 실린 신라, 백제, 왜가 모두 남만주 해안에서 발생 했다는 근거가 분명하다.

앞에서 거론한 바와 같이 전쟁을 목격한 사마천이 남긴 사기에는“현토(玄菟) 낭랑(樂浪)하는 이름”이 없고, 광개토대왕 비문에도 그런 글자가 없다. 고구려와 백제가 남겼다는 사서가 있었다고 하나, 삼국사기(三國史記)의 편집진은 이러한 한국사료를 인용치 못한듯 하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실린 대방, 현토 ,낙랑 (樂浪)하는 낱말을 종합해 보면 삼국지, 후한서, 통전등 후한시대 이후에 편찬된 중국사료에 의존하여 이치에 어긋나는 앞뒤가 틀린 기록을 남겼다. 삼국사기 (三國史記)에 실린 여러 낙랑(樂浪)과 대방(帶方)에 관하여 살펴 본다:

낙랑(樂浪)의 어원을 다루면서 밝혀진 바와 같이 낙랑이란 이름의 출생지는 갈석산이 있는 발해만 서쪽지역이다. 현토(玄菟)는 우거왕의 왕검성이 있던 (京畿)지역이 안정된 후에 그 곳에 나타났다.
많은 분들이 “중국에서는 같은 이름을 시대의 변천에 따라 여기 저기 여러 곳에 써왔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낙랑(樂浪)이란 이름이 삼국사기에 여러번 나오지만, 같은 곳을 뜻하는지 아니면 다른 곳을 뜻하는지 아무도 밝혀보았다는 근거를 찾지 못했다. 그러나 대방(帶方)은 남 북 두 곳에 있었다고 인식 했다. 필자는1세기 초에 있었던 낙랑왕 최리(樂浪王崔理)가 통치하던 영역이 요동반도 서쪽이 였다고 밝혔다. 대방(帶方)이란 이름은 2세기 말에 발해만 서안 한낙랑(漢樂浪)의 남쪽을 띄여서 새로 만든 행정 구역으로 밝혀 졌다. 이 두 이름은 공손도 (公孫度)으로 부터 공손연 (公孫淵,?198-238)의 멸망 전후를 놓고 다루어 본다.

공손연(公孫淵)의 선조에 관한 기록은 많은 의문에 싸여 그 진실을 알수 없게 기록되였다. 필자는 그의 선조가 한무제 당시 평진후로 봉해졌던 공송홍의 후예들이라고 풀리 했다 . 후한 말기에 중원이 어수선한 틈을 타서 많은 사람들이 먼 낙원으로 피신 했다. 이 시기에 공손도가 현토군으로 도망을 하여 삼한의 후예들과 호형 호제하며 삼국시대 중원에서 넓리 쓰이던 사기 기만술을 이용하여 발해만 일대를 군소국가를 통솔 했다. 그 곳을 대표하던 백제의 힘을 빌려 짧은 시간안에 급성장한 내력이 승제(升濟, 昇濟)라는 공손도의 이름에 숨어 있다 . 그러한 숨은 내력이,강희자전, 삼국지와 삼국사기에 나오는 공손(公孫)씨, 낙랑, 대방 하는 글자에 숨어 있다 . 이문제는 뒤에 “공손도 (公孫度)와 백제(百濟)의 관계”편에서 깊히 다루기로 한다.

삼국사기에는 낙랑이란 글자가 신라 본기 1초대 박혁거세 30년(기원전 28년)에 “낙랑사람들이 친입해 와서 신라가 평화로운 나라임을 알고 돌아 갔다”는 기록이 있다. 신라의 발생지와 낙랑(樂浪人)이 가까이 있었다는 뜻이다. 기원전 20년조에 실린 내용은 신라 발생지가 발해만 연안이 였다는 증거지만, 요동 반도 동서에 낙랑(樂浪)이 있었기에 어느 낙랑이라고 확증하기는 어렵다 . 제 2대 남해차차웅 (南解次次雄,재위 4년- 24년) 원년(기원후 4년)에 낙랑군사가 신라의 수도 금성을 포위했다. 이에 왕은 두 성인이 돌아가고 자기가 왕이 되였다 하니 그가 세번쩨 왕이 아니가 한다. 또한 그 상황을 인국래침(隣國來侵)이라 했다 . 왕 11년(기원후 14년) 에는 왜가 배를 타고와 바닷가 민가를 약탈했다. 그틈을 타서 낙랑은 신라의 수도 금성이 비였다고 생각하여 친입했다. 왕 16년(기원후19년)에는 “북명 사람 (北溟人)이 밭을 갈다 예왕의 도장(濊王印)을 덛어 신라 왕에게 바쳤다 .
이까지 기록을 살펴보면 “신라의 발생지, 낙랑, 왜, 북명, 예왕이 다스리던 나라”는 모두 고구려의 남쪽 요동반도 북쪽 해안 가까이에 있었다. 신라의 수도 금성(金城) 이 낙랑국(樂浪國) 가까이에 있었다. 왜, 마한, 변한(卞韓), 진한(辰韓)이 모두 뱃길로 통할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북명(北溟)이란 이름은 고구려 장군 괴유의 고향이다 . 이렇게 북명이란 곳이 요동만 북쪽 해안 가까이 있던 곳이 뚜렸하지만 한국사람들은 이를 잘못 풀이 하여 예왕의 도장(濊王印)을 강원도 강릉에서 나타 났다고 아직도 믿고 있다. 제 3대 유리이사금 (儒理尼師今 : 24년-57년) 13년(36년)에는 낙랑이 북쪽 변경을 친입하여 타산성(朶山城)을 함락하고, 다음 해에는 고구려가 최리의 낙랑국을 정벌하여 피란민이 신라로 왔다 . 호동 왕자와 낙랑공주의 사연이 얽힌 곳이 낙랑국이고 신라는 더남쪽 고구려에 인접한, 요동반도 서쪽 발해만 수계(水界, watershed)에 있던 나라가 분명하다.

15대 기림 이사금(基臨 泥師今, 재위; 298년-310년) 3년(300년)에는 왜와 사신을 보내 (交聘) 국교를 정상화 했고, 낙랑과 대방이 다시 돌아와 복종 했다. 10년인 307년에 다시 나라 이름을 신라 (新羅)라 했다 . 얼마 동안 신라라는 국호를 쓰지 못했다가, 공손연이 처형 당하여 요동에서 활거하던 공손씨 세력이 사라지니까 옛적에 신라가 관장 하던 지역이 되돌아 왔고, 나라 이름도 되 찾아 썼다는 뜻이다. 신라는 박혁거세(朴赫居世; 재위, 기원전 57년 -4년) 가 요동만 동북해안, 고조선 (古朝鮮) 유민들이 살던 진한 6부에서 발생하여 나라 이름을 서라벌(徐那伐)라 했다. 중원이 다시 양한 혼란기에 접어들어 발해만 연안을 따라 오라온 피란민을 흡수하여 요동만 서쪽으로 확장해 나갔다. 이 시절에 김일제 후손이 올라와 김씨의 시조가 된다. 그가 나타난 곳을 사음자로 시림 또는 계림이라 기록 했다. 이를 삼국사기에서는 시림이란 이름을 계림으로 바꾸어(改始林名鷄林) 나라 이름으로 썼다고 했다 . 이문제는 앞으로 “공손도전(公孫度傳)과 왜인전(倭人傳)의 새로운 고찰” 이라는 제하에 다루기로 한다. 이문제는 앞으로 “공손도전(公孫度傳)과 왜인전(倭人傳)의 새로운 고찰” 이라는 제하에 다루기로 한다.

끝

March 1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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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Lee Mosol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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