利簋銘文: 珷征商,隹甲子朝,歲鼎克昏,夙有商。
辛未,王才闌啟,易又吏利金,用乍旜公寳尊彜。
앞서 목야전은 갑자 (甲子)일에 있었다는 기록과 금석문에 실린 갑자일 아침 (甲子朝)을 근거로 백어(白魚)가 깃발을 들고 승선한 필공(畢公,旜公)이라고 논증 했다. 유목민들이 살던 벌판에서 싸운 전쟁에 앞서 발표한 목서(牧誓)에 실린 내용과 시경 사간 그리고 무양편을 살펴 보면 목야전 전후의 상황이 뚜렸하다.
**필(畢;bì)자는 햇살(햇볓,sun-ray,beam of light)의 사음자다.
필공이 양때 같이 이끌고 참전한 장면을 그린 “麾之以肱、畢來既升”란 시귀가 기/궤 (빌 기, 산제사 궤)부지습 무양(祈父之什 無羊)편에 실렸다[1]. 그가 이끈 군사가 잘 싸워 이기고 돌아오는 장면을 그린 시문이다. 이 시문을 한글 어순으로 풀이 하면; <대장 기 휘(麾; huī)를 팔에 안고 필공이 와서 이미 올라 탔다>가 된다.
상서(尚書 周書) 사기등 모든 사서에는 이<휘(麾; huī)와 음이 같은 글자, 賄 뇌물 회, 재물 회>회숙진지명(賄肅慎之命)라 했다. 이를 태평어람에서는 자세히 설명 했다[2]. 형용사 또는 동사로 푸리 되는 “비俾 사 使” 하는 글자로 영백 앞에 실었다. 영백을 금문에는 사이(吏利)라 했다. 숙진씨 앞에는 뇌물이란 뜻 글자에 줄사 비단 패 (幣賄賜) 두자를 더 했다. 정중하게 바쳤다는 뜻이다. 그 뜻이 위에 올린 금석문에 보인다.
아래와 같이 읽어야 한다.
珷征商隹 甲子朝歲鼎, 克昏夙有商。辛未,王才闌啟易, 又吏利金用 乍旜公寳尊彜。
무왕이 상나라 지도자를 정벌 했다. 갑자일 아침 목성이 떠오른 미명에 상나라군사를 ( 牧野戰鬪에서 )제앞했다. 신미일 (8일 후)에 왕을 보필하던 사람들이 난입 하여 (걸왕의 최후) 방어진(闌, 성문을 가로 막은)을 쉽게 열었다. 그래서 관원 이가 금속물을 사용하여 단공이 조상 백익(彜, 伯益)을 섬기는 보물로 쓰도록 괘(簋)를 만들었다.
**隹는 三足烏를 상징하던 새를 비하 한 글자. 又자는 인과 관계를 다시 설명 함->또 그래서.
<명을 글로 써서 재보(財寶, 賄肅慎之命)에 남도록하여 숙진씨에게 하례 하라>는 기록이 있다.
영백(榮伯)의 이름 자(名)가 이(利)다.
죽서기년 성왕(成王)조에는 왕사영백(王使榮伯) 하고, 뇌물 회, 재물 회 (賄)자를 주석 석, 줄 사, 다리 체(錫肅慎氏命 )로 기록 되었다[3]. 상서(尚書 周書)에는 왕비 영백(王俾榮伯)이라 했다. 두 글자 (使, 俾)는 뜻이 다르다. 비(俾)자는 햇 빛의 사음자로 백익(彜)의 후손이란 뜻이 있다. 산서성에 살던 토착 민으로 서주 왕실에 끌려가 (其追其貊)시중들던 사람(卑人, 侍人) 으로 후에는 관노가 되였다[4]. 조선의 평민이란 뜻에서 선비(鮮卑)란 이름이 산서성에서 부여(浮游作矢, 蜉蝣, 胡不與之國)와 같이 나타났다[5]. 지도층을 뜻하던 사(斯)자가 점차로 하락한 경로와 같다. 깃발을 든 전공(旜/旃 公)이 시경에 나온 사간(斯干) 이다.
숙진(肅慎; sù shèn)씨는 진(慎, 辰, 晨)을 공경한다는 뜻으로 朝鮮의 대명사다. 단군조선이 탄생 했다는 요순 시절(帝舜有虞氏)에 현도(玄都, 玄菟, 元菟, 元兔)씨 와 같이 활을 선물 했다[6]. 서쪽 烏孫 月氏씨와 같은 혈통이다. 그 한 부족이 동쪽 으로 옮겨와 치수사업에 동참하여 단군조선을 세웠다. 지도자 백익을 잃고 만주로 옮겨 와서 우거왕의 경기 지역에 살았다[7]. 진한의 한 부족으로 만주에 남았던 사람들이 고려도경 (高麗圖經)에 진여(辰餘)란 문구다. 그들이 女眞의 선조다.
시경의 사간(斯干)이 햇님의 후손(畢公) 단/전/선공(旜公)으로 단군왕검 백익(彜, 伯益)의 후손이였다. 주 왕실로 부터 배신 당해한 사간(斯干)의 아들이 백이숙제 로 알려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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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 2018
[1].塗:泥也。《書·禹貢》塗泥。見土字註。《爾雅·釋詁》路旅,塗也。《史記·夏本紀》禹會諸侯塗山,今山前有禹會村。《蘇軾·有禹會村詩》。俗謂塗山在會稽,渝州,濠州,當塗,九江,及三巴之江州,𠀤非。又山名。《山海經》天帝山之西南曰臯塗之山. 涂:水。出益州牧靡南山,西北入澠。水名在堂邑. 水名在益州.《說文》水出益州牧靡南山。
[2].史記 周本紀:成王既伐東夷,息慎來賀,王賜榮伯作賄息慎之命. 尚書 周書: 成王既伐東夷,肅慎來賀。
王俾榮伯作《賄肅慎之命》.《書》曰:成王既伐東夷,肅慎來賀,海東諸夷,武王克商,皆通道焉。成王即政而叛,王伐而服之,故肅慎相來賀。王俾榮伯作《賄肅慎之命》。王使榮伯為命書,以幣賄賜肅慎之束賀
[3].竹書紀年 成王: 肅慎氏來朝,王使榮伯錫肅慎氏命.
[4].俾:《說文》益也。一曰俾門,侍人。《爾雅·釋詁》俾,使也。《書·大禹謨》俾予從欲以治。《詩·魯頌》俾爾昌而熾。
《書·武成》罔不率俾。又《爾雅·釋言》俾,職也。《註》使共職也。
[5].竹書紀年:康王:元年甲戌春正月,王即位,命冢宰召康公總百官。諸侯朝于豐宮. 九年,唐遷于晉,作宮而美,王使人讓之. 十二年夏六月壬申,王如豐,錫畢公命.
[6].竹書紀年 帝舜有虞氏: 二十五年,息慎氏來朝貢弓矢. 四十二年,玄都氏來朝,貢寶玉. 《山海經》肅愼之國,
在白民北。又州名。《韻會》古月支國地,漢置酒泉郡,《左傳·昭九年》肅愼,燕亳,吾北土也。又《書序》肅愼來賀
[7].竹書紀年 成王: 肅慎氏來朝,王使榮伯錫肅慎氏命.
竹書紀年:康王:元年甲戌春正月,王即位,命冢宰召康公總百官。諸侯朝于豐宮. 九年,唐遷于晉,作宮而美,王使人讓之. 十二年夏六月壬申,王如豐,錫畢公命.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