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를 찾아서 상고사 연구에 뛰어들면서 상고란 시대를 “통일 신라, 삼한을 통일하고 일본이란 국호가 나타난 시기” 까지를 하한선으로 정했다.
한반도에 자타난 신라가 삼한을 통일한 이후 일본이 나타났다.
그후에 당나라 세력과의 갈등으로 압록강 서쪽의 경계가 혼미 하게 기록 되었다.
三國史記 新羅本紀第一 築京城,號曰金城。是𡻕,樂浪兵至,圍金城數重。樂浪謂內虛,来攻金城,甚急。
築京城,號曰金城。是𡻕,即位,號居西干,時年十三。國號徐那伐。先是,朝鮮遺民分居山谷之間,為六村
高勾麗始祖東明立。三國史記 新羅本紀第三 : 三十八年夏五月,倭人来圍金城,五日不觧,将士皆請出戰
삼국유사:新羅第一赫居世姓樸. 六新羅高麗甲申築金城第一東明王甲申立理十九年姓高名朱蒙一作鄒蒙壇君之子成帝建始.
此王代樂浪國人來侵金城. 伊西國人來攻金城
한중 사서에 금성 (金城)이란 여러 시대 여러 곳에 나타난다. 방어가 완벽한 철옹성 이란 뜻이다. 박혁거세가 수도를 정한 신라 건국 초기에 금성 (金城)을 침략 했다는 기록이 있다. 피란민 정착지에 서로 좋은 곳을 찾으려고 다투선 상황이다.
흔히 알려진 신라 1000 수도 경주(慶州)라 하는 이름은 경순왕이 고려에 나라를 바쳐 왕건이 지어준 이름이다. 改新羅為慶州,以為公之食邑
이란에 여러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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釋氏《西域記》曰:牢蘭海東伏流龍沙堆,在屯皇東南四百里阿步干鮮卑山。東流至金城為大河。河出崑崙,崑崙即阿耨達山也。河水又東逕石城南,謂之石城津。闞駰曰:在金城西北矣。河水又東南逕金城縣故城北。應劭曰:初築城得金,故曰金城也。《漢書集註》薛瓚云:金者,取其堅固也,故《墨子》有金城湯池之言矣。王莽之金屏也。
신라 본기에 수도를 금성(金城)이라 했다. 철옹성이란 뜻이다. 김수로 왕이 가까이 살았다. 계림, 경주, 수서에도 같은 이름이 실렸다.
고구려 신라 (발해)고려 이조의 수도 명칭 분석
같은 글자가 여러 시대 여러 곳에 나타났고, 그 설명 또한” 견고 하다,성터에서 금이 나와 붙인 이름이다”는 등등 다양 하다. 이러한 이름을 신라 수도에 붙여 풀이가 난해 하다. 통일 신라의 뒤를 이은 고려의 수도를 개성(開城) 개경 (開京), 이를 황도(皇都)라 한다. 그에 얽힌 사연을 밝혀 본다.
가시(까시)리 (마을 읍, 성도)란 뜻글자로 기록 했다.
阿耨達山 이란 글자 해석 「王舍城」
대당서역기:因其先瑞即以為號。則贍部洲之中地者。阿那婆答多池也唐言無熱惱。舊曰阿耨達池訛也在香山之南大雪山之北。周八百里矣。
연나라의 현장 진개(秦開, ?~?)가 빼았었다는 금미달, 고조선의 수도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