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미달을 떠나 만주 연해주로 올라가 살던 사람들 기록이 “동이전 읍루전挹婁傳”에 있다.
금미달에 살던 숙신 (肅愼)의 한 지류가 말갈 (靺鞨)이다. 그들이 만주땅으로 올라가 읍루 (挹婁) 라는 부족국이 함경도에서 부터 북쪽 끝을 알수 없는(未知其北所極) 넓은 해안에 살았다. 붉은 옥돌(赤玉) 우수한 피혁(好貂)등 자연 자원이 많이 나는 지역에 살았다. [1] 그들은 용맹하여 배를 타고 옛부터 전해오는 독약을 화살에 발라 이웃 나라들을 괴롭 혔다.
장신의 털보 모인(毛人)이 산다는 전설이 중국에 전해 왔다. 중원을 통일한 수나라가 처음으로 한해를 건너 한반도 하구 김해를 지나 일본과 구주를 돌아 보았다.
白虎通德論 -禮樂:此言以人得之,先以文,謂持羽毛人舞也;以武得之,先以武,謂持干戚儛也。《樂元語》曰:「東夷之樂持矛舞,助時生也;南夷之樂持羽舞,助時養也;西夷之樂持戟舞,助時煞也。」北夷之樂持干舞助時藏也,誰制夷狄之樂?以為先聖王也。先王惟行道德,和調陰陽,覆被夷狄,故夷狄安樂,來朝中國,於是作樂樂之
옛 성왕들은 도덕을 실천하고 음양의 조화를 이루었으며 오랑캐들을 보호하여 오랑캐들이 평화롭게 중국에 조공을 바치게 했다. 그리하여 음악이 창조되었다. 서쪽에서 온 털보들(숙진씨)로 부터 궁중 음악이 나타났다.
| 樂所以必歌者何?夫歌者,口言之也。中心喜樂,口欲歌之,手欲舞之,足欲蹈之 |
續搜神記》曰:晉武世,宣城人秦精常入武昌山采茗,遇一長毛人,長丈余,引精至山曲
魏明帝景初二年,司馬宣王之平公孫氏也,倭女王始遣大夫詣京都貢獻。魏以為親魏倭王,假金印紫綬。齊王正始中,卑彌呼死,立其宗女臺輿為王。魏略云:「倭人自謂太伯之後。」其後復立男王,並受中國爵命。晉武帝泰始初,遣使重譯入貢。
宋武帝永初二年,倭王讚修貢職,至曾孫武,順帝昇明二年,遣使上表曰:「封國偏遠,作蕃於外,自昔祖禰,躬擐甲冑,跋涉山川,不遑寧處,東征毛人五十五國,西服眾夷六十六國,渡平海北九十五國。」
《田休子》曰:渠搜之人服夏禹德,獻其珍裘,毛出五彩,光曜五色。
又曰:少昊氏都於曲阜,鞬鞮毛人獻其羽裘
수서에는 유구에 유래를 알수 없는 털보 지도자가 살았도, 일본에도 살았다.
유래를 알수 없는 모인(毛人, ainu)이 산다는 기록이 통전에 실렸다. 이들이 울릉도 원주민으로 한반도 동해안을 따라 내려와 울산 암벽화에 고래잡이로 각인되었고, 가덕도에서 발견된 유골이라 본다.
배를 타고 활로 무장 하여 인접한 나라 사람이 두려워 했다.[2]
고래 경(鯨,Whale)자를 일본어로는 “くじら, kujira크지라 “로 읽는다. 고래(golae)란 “ 클 거(巨, /高) 올 래 來, 큰 높은 놈이 온다“는 뜻의 우리 말 이라 본다.
읍루전에 실린 숙신 (肅愼)의 후손이라 본다. 숙신 (肅愼)의 후손이 자그만 배(小乘, canoe, kayak)를 타고 고래(whale)를 잡으며 동북아시아 해안에서 생활 했다.
논란이 많은 가덕도 (加德島)공항 신설지에서 인골이 발굴 되었다. [3] 공항 건설을 중지하고 인골의 유래를 밝혀야 한다. 필자의 소견을 간략히 몇자 올립니다.
더할 가(加)자는 힘과 입이 더해 젔자는 뜻글자다. “더하다. 살다. 베풀다. 입다. 업신여기다” 는 뜻이 있다. 참가(參加)란 글자가 있다. 황석공 삼략(黃石公三略)에서 참가(參加)란 글자가 나타났다. 장량(張良, ?~기원전 186년)이 늙은 도술인을 만나 격은 일화에서 황석 (黃石) 이란 별명이 나타났다. 황석공 (黃石公)의 전술을 이용한 사람이 과 조참(曹參, ? – 기원전 189년)이다. 한 고조를 따라 건국에 큰 공을 세워 평양후(平陽侯)에 봉해졌다. 평양(平陽)에 수도를 두었던 고조선이 분산되어 육경(六卿) 이 나타났다. 그때 순망치한(脣亡齒寒) 이란 사자성어가 나타났다. 그후 육경(六卿)이 강해져서 삼가분진 현상이 나타나 전국시대가 되었다..
가야국 (加耶國)의 어근이 되는 가(加)자는 기원전 655년 이후 고조선의 수도 이전과 관계가 있다. 이들이 북쪽으로 밀려 금미달에서 가야 여러 나라가 나타났다.
가야국 (加耶國)이 있던 금미달에서 내려온 양혜왕을 만나 대화를 나눈 맹자(孟子)에 가다(加多)란 어음이 실렸다. 가다란 어음을 이리저리돌려 가라연맹 여러글자가 나타났고, 그 어음 에서“가락지, 절가락 가시나무 등등”여러 파생어가 나타났다.
그곳에서 가까운 김해에는 보주태후 허씨 (駕洛國 首露王妃 普州太后 許氏)로 기록된 가락국 수로왕의 부인 허황옥(許黃玉, 32년 ~ 189년)의 사당이 있고 많은 유적이 발굴되었다.
가덕도 (加德島) 또한 가다(加多)란 어음의 파생어라 본다.
[1]. 三國志 挹婁傳: 挹婁喜乘船寇鈔,北沃沮畏之. 挹婁在夫餘東北千餘里,濵大海,南與北沃沮接,未知其北所極。
天道無親,而能下人。戒之哉!」孔子既讀斯文也,太平廣記: 老子將去而西出關, 以昇崑崙。關令尹喜占風氣,逆知當有神人來過,乃掃道四十里。以禾為量, 而浮游乎萬物之祖, 物物而不物於物, 則胡可得而累?此神農、黃帝之所法. 尚書 西伯戡黎: 殷始咎周, 周人乘黎。 祖伊恐, 奔告于受,作《西伯戡黎》西伯既戡黎,祖伊恐,奔告于王。曰:「天子!天既訖我殷命.
[2]. 三國志 挹婁傳: 挹婁在夫餘東北千餘里,濵大海,南與北沃沮接,未知其北所極。其土地多山險。 其人形似夫餘,言語不與夫餘、句麗同。土氣寒,劇於夫餘。夏則裸袒,以尺布隱其前後,以蔽形體。其弓長四尺,力如弩,矢用楛,長尺八寸,青石為鏃,古之肅慎氏之國也。自漢已來,臣屬夫餘,夫餘責其租賦重,以黃初中叛之。其國便乘船寇盜,鄰國患之。東夷飲食類皆用俎豆,唯挹婁不,法俗最無綱紀。
[3]. 한국서 발견된 대규모 신석기 유골의 정체 | KBS 20140911 방송
天道無親,而能下人。戒之哉!」孔子既讀斯文也,太平廣記: 老子將去而西出關, 以昇崑崙。關令尹喜占風氣,逆知當有神人來過,乃掃道四十里。以禾為量, 而浮游乎萬物之祖, 物物而不物於物, 則胡可得而累?此神農、黃帝之所法. 尚書 西伯戡黎: 殷始咎周, 周人乘黎。 祖伊恐, 奔告于受,作《西伯戡黎》西伯既戡黎,祖伊恐,奔告于王。曰:「天子!天既訖我殷命.
September 23, 2025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