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 범어(梵語)에는 고조선 사람들의 어음이 있어야 한다.
원시 불교의 전파: 대루탄경(大樓炭經)
천축국(天竺國) 인도 (印度)의 어원
원시 불교의 서역 진출:
고조선 문자 천부인(天符印):
시원을 찾아 왔다.
원시불교의 중원에 전래
루탄경
지나 (支那)의 어원: 중원 남쪽을 뜻했다. 지나 (支那)란 어음은 지나 (went over, passed by)서의 사음자다.
나무[南無 ] 아미타불[阿彌陀佛]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의 뜻: 나무아비타불 관세음보살 이란 문구는 魏晉南北朝 이후에 처음 보인다.
타불이란 글자(共工臣名曰相繇,九首蛇身)와 원시 불교의 발생과 전래를 종하합 해 보면, [나무아비타불 관세음보살 이란 뜻은 금미달에 세워 놓았던 서낭신(totem pole,나무로 깎아 만든 애비상,저陀 부처佛님) 이 세상 사람 들의 예기를 듣고 살펴 주십시요]란 뜻이다.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을 뜻을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며 부처님 앞에서 빌고 있다.
甘山寺石造阿彌陀佛立像감산사 석조 아미타불 입상,
孟子 滕文公下: 天下之生久矣,一治一亂。當堯之時,水逆行,氾濫於中國。蛇龍居之,民無所定。下者為巢,上者為營窟。《書》曰:『洚水警余。』洚水者,洪水也。使禹治之,禹掘地而注之海,驅蛇龍而放之菹。
감산사 절터에서 발견된 화강암 석불.
《康熙字典·宀部·二》它:《玉篇》古文佗字。佗,蛇也。《說文》虫也。本作它,从虫而長。上古艸居,慮它,故相問無它乎。又《玉篇》非也,異也。《正字通》與佗他同。《易·比卦》終來有它吉。《禮·檀弓》或敢有它志,以辱君義。又《揚子·法言》適堯舜文王爲正道,非堯舜文王爲它道,君子正而不它。又《正譌》它,虫之大者。象寃曲𠂹㞑形。今文加虫作蛇,食遮切與托何切,二音通用。
원시불교 서론: 홍산 문화권에 남아 있던 사람들의 역사가 환단고기에 실려 있다. 동양 최초의 신앙을 황노사상(黃老思想)이라 했다. 선사시대 부터 동북아시아 전역에 예맥 (濊貊. 斯)족이라 부르던 유목민이 살았다. 환웅천왕의 아들의 뜻이 구속 받고 있는 사람들이 사는 땅에 있어 북쪽에서 내려와 나라를 세웠다. 그와 같은 의재시 (意在斯)란 문구가 사마천에게 남긴 유언에 있다. 단군설화를 기록으로 남기던 시절에 원시 불교가 금미달에 정착 했다는 증거다.
시(斯)자를 따라가면 불교의 시원과 분포도가 보인다.
남쪽으로 도망 갔던 사람들이 차마고도를 따라 히말리아 산맥 동쪽에 올라가 고조선의 토속 신앙을 전하여 원시 불교가 나타났다. 운남성 (雲南省) 사람들이 전한 고조선에 전해 오던 설화와 기록을 원시불교 발생지 현지인이 번역 하여 루탄경 (大樓炭經) 초안을 범어(梵語)로 남겼다.[1]
환단고기와 범어(梵語)로 기록된 불경에는 고조선 역사와 어음이 있어야 한다.
도덕경 (道德經)의 유래: 가상 인문 황제와 그의 뒤를 이은 여러 노인들의 가름침이란 뜻이다. 노자(老子)가 서쪽으로 가서 호 (教胡)를 가르쳤다. 서쪽으로 가기 전에 진나라 서쪽 관문 (西關)에서 하룻밤을 자면서 남긴 5000자가 도덕경이라 한다. 이를 청우에 싣고 (乘青牛)갔다. 새상 어디에고 푸른 소는 없다. 청우란 청구를 뜻한 글자다. 고조선 수도에 전헤오던 각종 귀중한 서적 (詩 書 經)을 수래에 싣고 갔다는 뜻이다. 노자(老子)는 복수다. 은나라 때 태어나서 동주의 사관으로 지냈다. 공자보다 늙은이라 귀가 먹은 노인을 노담(老聃)이라 한다.[2] 석가모니는 주장왕(周莊王; 재위: 기원전 696년 ~ 기원전 682년) 9년 에 탄생 했다. 공자가 만났던 노자 이전에 출생 했다.
상 (殷商)나라 현인 상용(商容)에게서 도(道)를 배웠다.[3] 상용(常容), 즉 환웅 천왕의 모습을 깎아 세워 놓은 웅상(雄常)을 상용(商容)이라 했다. 시경 위풍 벌단(魏風 伐檀)에 실린 “彼君子兮, 不素餐兮, 즉 저 군자는 소박한 복록도 받지 않는다”는 시구를 상용의 예기라 한다. 능력있는 사람이 등용되지 않아 위나라 사람들이 풍자한 시문이라 한다.
도(道; 辶首)란 우두머리를 따른다는 뜻으로 백익(伯益)의 가르침을 따른다는 뜻이 있다. 덕(德:悳:直 心)이란 “여러 사람의 진심에서 우러난 말을 듣는 다는 뜻”글 자다.
주역 계사(繫辭)에 미륜천지지도 (彌綸天地之道)란 문구가 있다. [4] 이방인 세력 주족이 고조선 땅에 들어와 단군왕검 백익이 남겨놓은 역서를 주역이라 했다. 홍법구주 이윤 유서의 이윤 (彝倫)을 미륜(彌綸)으로 바꾸었다. [5] 미륜천지지도 (彌綸天地之道)란 문구는 백익의 가름침(彌綸)이 천지의 도(道)란 뜻이다.
치수 사업을 하던 시대 부터 형벌이 있었다. 하나라 때의 보속형(夏贖刑)을 개조 하여 주목왕 때 만들었다는 여형(呂刑)이 있다.
한(韓)나라의 여러 공자들이 한비자(韓非子)를 남겼다. 대표적 인물 한비(韓非, 기원전 280년? ~ 기원전 233년)는 말을 더듬어 “옛적부터 전해 오던 상서여형 (尚書•吕刑),형 벌”을 옳바로 설명 하지 못했다.[6] 그로 부터 법가(法家)란 이름이 나타났다. 공자는 충서 (忠恕)를 강조 했다. 성 (性)을 따르는 것이 도(道)라고 인식 했던 공자의 제자들은 성선 (性善) 성악설(性惡說)하는 두파로 갈리고, 제자 백가란 이름이 나타났다.
시경의 유래: 공자가 주나라 궁정에 있던 동상에 세겨진 금인명 (金人銘)을 읽었다. 그 글자를 시문(斯文) 이라 했다. 그곳에서 노자를 만났다. 천할 시(斯), 즉 옛적부터 그 지역에 살던 예맥(濊貊)족이 쓰던 글자다. 사마천은 고조선과 하나라의 기록 (虞夏 之文可知)을 알수 있다 했고, 모시정의에는 시경의 기원은 전설을 기록으로 남기던 시절 (唐虞始造其初)이라 했다. [7]
고자시삼천여편(古者詩三千餘篇)라했다. 공자가 이를 줄여 현존하는 시경을 만들었다. 왕풍 이외의 국풍(향가國風)는 모두 변한사람들이 부르던 민요란 뜻에 변풍(變風)이라 했다. 고조선에 전해 오던 예기를 노자 여러 사람들이 깊은 산속 원시불교 발생지(Sinja Village)에 전했다. 인도 역사에 나오는 베다 시대(Vedic period, 기원전 1500년 ~ 기원전 500년) 사람들이 부르던 향가에 남아 있으리라 본다. 불가에서도 삼태극 (三太極) 문양을 쓰고 있다. 시문(斯文)으로 편술 되었던 향가를 시경 (詩經)이라 했다. [8]
원시 불교의 개념: 사마천은 그가 살던 지역에 전해오는 토속 신앙을 황로 사상 이라 했다. 자신이 고난을 격으면서 “천도 시야 비야(天道是也非也), 즉 천도라고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하고 의심했다. 그의 고향이 고조선 발생지다. 고조선 사람들이 권선징악으로 푸리 하는 천도를 믿었다. 이를 신선 사상(神仙思想) 또는 신선의 가르침(仙敎) 이라고 믿었다. 사마천은 중원의 지도자(王)를 천자라 하여 천자지덕(天子之德) 또는 삼왕지덕 (三王之道)이라는 등 도와 덕을 분리해서 기술했하고 도교(道敎) 란 용어는 쓰지 않았다. 지상에서 모든 것을 다 할수 있던 지도자는 죽지 않고 하늘 나라를 자유로이 날아 다닌다고 인식했던 신선(仙, 僊)이 되기를 원 했다. 신선의 가르침을 천도(天道)라 했다.
수행을 하고 맑은 정신을 유지(精神清淨) 하면 불가의 가름침 (則成佛道) 을 터득 할수 있다. 성불이란 뜻을 범어로 보시 (梵語菩提)라 했다. 범어란 불교 발생지 사람들이 쓰던 언어란 뜻이다. 보시(菩提)란 호어(胡語)다. 그에 관한 문구를 읽어 보면 [한국어로 보살피다. 보살펴 준다는] 뜻이다. [9] 불(佛)이란 불 (火), 즉 횃불 (torch))의 어음이다. 횃불을 높히 들고 앞서 가둣 세상 만사를 훤히 볼수 있다는 뜻이다. 맏 백(伯) 일백 백(百)자 풀이에서 설명 했다. 고조선에 전해 오던 역사 전통 풍속 가치관 (詩 書)에, 끝없이 변해가는 휘험하고 미묘한 새상 만사(危微之幾)를 설명 하던 역(易) 의 개념이 불교 개념에 실려 있다.
[성악설의 효시로 알려진 순자에 옛 도경(故道經)에 실렸다는 문구가 현제 통용 되는 도덕경에는 보이지 않고, 주자어류 석씨 (釋氏)편에 한구절 실렸다. 주희(朱熹)는 석씨편에서 불가와 유자, 묵가 법가등 제자 백가와의 관계를 간략히 설명 했다. 노자가 서쪽에 가서 호를 가르쳐 원시 불교가 나타났다는 문헌에 실린 기록을 순자와 주희가 사실로 논증 했다. [10] ]
불가에서도 높은 하늘에서 빛을 내리는 일월성진(日月星辰) 삼신(三辰)을 뜻한 삼태극 (三太極)문양을 쓰고 있다. 태초 부터 석가모니까지 일곱 부처님 (칠성; 七星)이 계섰다. 그후 미륵(彌勒)이 나타났다. 미륵이란 글자가 나타난 곳이 금미달 (今彌達)이다. 위(魏)나라 역사서를 편술한 위징(魏徵)은 불교와 도교는 방외지도 (方外之教) 즉, 먼나라 성인들의 가르침 이라 했다. 고조선 원주민(斯)들이 읊던 한과 소망이 하얀 눈이 덮힌 높은 산속에서 원시 불교 으로 나타났다.
출생지: 삼국지 왜인전에 석가모니 탄생지 임아국(臨兒國,[梵Lumbinī] 佛)에 관한 기록이 있다.[11] 석가모니(釋迦牟尼)칭호에 “소가 우는 소리, 馬/牟;móu mù mào의 상형글자”에는 유목민(牟)이란 뜻이다. 석가(釋迦)란 “멀리서 온 깨인 집안”이란 뜻이 있다. 출생지를 삼국지 왜인전에 석가모니 탄생지 임아국(臨兒國lín ér guó [梵Lumbinī] 佛) 즉 “어린 아기 부도(生浮屠)가 태어나려는 나라”란 표현을 음역한 글자다. 같은 곳을 람비니원 (嵐毘尼園), 또는 람비니(藍毗尼)라 했다. 신선한 비람이 부는 히말라야 산골짜기에 올라와 살던 빛을 숭상하는 유목민의 자손이란 뜻이다. 원시 불교 발생지와 운남성은 계속 하여 교류가 있었다.
노자(老子)가 서쪽에 가서 원주민(胡)에게 도덕경을 가르쳤다는 사실을 동진의 도안(道安: 312-385) 이 인용 했다. 운남성과 천축국이 문화와 믿음이 상통 한다는 표현을 [언어를 서로 이해 할수 있었고, 도덕경 두편을 사용하는 스님들을 보았다]고 했다. 운남상과 교류가 계속 있었다,
한위지제 성행 시의 (漢魏之際盛行斯意) 란 문구가 고승전 (宋高僧傳) 에 있다. 도덕경 내용에 예맥족(斯)의 가르침이 있다는 뜻이다.[12]
대대로 사관을 지냈던 선조의 뒤를 따라 사마천이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중앙아시아 시탄(斯坦)에서 온 예맥 족(意在斯乎!)의 역사를 완성 하려고 사료룰 구하려고 산서성에 올라 갔었고 운남성을 비롯한 남쪽 여러 지역을 여행 했다. [13] 도교(道教)에 심취 했던 동진(東晉)의 갈홍(葛洪, 283년 ~ 343년)이 서경 잡기에서 곤명호수(昆明池)를 자세하게 설명했다.[14] 운남성에는 아직도 옛적(고조선)에 쓰던 글자가 남아 있다.
범어(梵語)에는 고조선 사람들의 어음이 있어야 한다.
클 범(範)자의 동음 이자가 범어(梵語)의 범자다.
대당서역기에는 “시위성(斯為盛)이야란 문구가 있고, 석가여래(釋迦如來) 너자아지족 (汝子我之族)이란 문구가 있다. 깨달은 사람들 여럿이 와서 너의 애기 (석가모니)는 우리와 같은 족속이다라고 알렸다. 세존왈 시자 아지족야(世尊曰, 斯人者我之族也) 란 했다. 석가모니가 사인(斯人; 老子들) 은 나와 같은 족속이다 라고 말했다. [15] 인도에는 여러 소읍 국가가 있었다. 그중에 김이국(金耳國)이 있다. 뜻이 같은 시킴 (Sikkim; 斯金) 이란 왕국이 부탄 왕국 옆에 있었다. 그 일대에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록된 신앙촌(信仰村; Sinja Valley)이 있다. [16] 예맥족이 사천-운남성을 지나 히말라야 동쪽에 올라가서 고조선 토속 종교 가치관 (斯意)을 전해 원시 불교가 나타났다.
무위지교미신(無為之教彌新)이란 문구가 있다. 도덕경의 핵심이 인도의 지도자에게는 새롭다는 뜻이다. 주역 계사(繫辭)에 미륜천지지도 (彌綸天地之道)란 문구가 있다. 미(彌) 자는 명사로 지도자를 륜 (綸)자는 동사다. 옛부터 미(彌)가 다스리던 고조선 지역에 전해오던 천지인 우주관을 설명한 문구다. 도덕경에 실린 도생일 일생 이 (道生一,一生二) 로 점괘을 풀이라는 거북이 홍범을 풀이하며 성인의 법칙(聖人則之) 이라 했다. [17] 옛적 고조선의 언어가 운남성을 거처 천축국에 이르러 그 곳에 원음이 많이 남아 있다.
파리(婆夷)의 언어가 파리어 (巴利語): 서가모니는 어머니 마야부인(摩訶 摩耶夫人)이 일찍 죽어 이모(姨母)가 길렀다. 동이 여자란 뜻이다. 석가모니의 모국어가 고조선 사람들이 쓰던 언어다. 마하마야 (摩訶 摩耶)란 애기에게 “엄마야”를 뜻한 어음으로 가르치던 옛적 한국어다. 석가모니의 이모(優婆夷) 가 쓰던 언어란 뜻이다. 그녀가 쓰던 고조선언어가 초기불교의 공인어로 채택 되었다. 불교경전 노파의 언어란 뜻에 파리어 (巴利語. Pali Language)라 한다.
서역기에는 시/사(斯)라고 부르는 신라의 옛이름 시라 (尸羅) 와 금미달을 뜻한 두루미 미(彌)자가 많이 실렸다. 신라를 새운 사람들이 그곳에서 왔다. 옛적 부터 금미달이 점령 되던 시기에도 계속 해서 고조선 사람들이 먼 남쪽 나라 운남성으로 피란을 갔다. 저 멀리 구름에 덥힌 산너머 남쪽 나라를 지나 (支那)라 했다. 그 후에도 전란에 밀려 옛 부터 다니던 차마고도(茶馬古道)를 따라 원시불교 발생지에 이르러, 불교 초기 경전에 실린 언어를 쓰는 우수한 사람들로 인정 받아 예맥족이 쓰던 시라(尸羅)어 가 그 지역에 정착 했다. 이런 연유로 불교 경전에 옛 한국어를 가차 전주 한 글자가 많이 있다.
원시 불교의 전파(傳播):
원시 불교의 서역 진출: 중국(中國)을 서역에서 진단(震)이라 부른다는 사료의 출처를 루탄경(樓炭經)이라 했다. 진시황이 중원을 통일 하기 전에, 인도 마우라 왕조 (Maurya Empire; 322 BCE – 185 BCE)때에 국교가 되었다. 원시 불교는 그보다 3 세기 앞서 나타나 인도 서남쪽으로 전파 되었다.
인도 동북 산악지대인 수지(隨地)에서 발생한 원시불교는 인도서쪽 인더스문명 발생지를 지나 중앙 아시아에 까지 파급 되었다. 당시에 동서남북 사방에 마명(馬鳴) 시파 (提婆) 용수(龍猛 龍樹) 동수(童受) 네사람의 현명한 스님이 있어 사일조세 (四日照世) 라 한다.[18] 마명(馬鳴: 嘶)은 인도의 최초의 불교 시인이라 한다. 그의 이름자에는 예맥족(嘶:口 斯)의 대변인이란 뜻이 있다. 남인도(南天竺)의 브라만 (Brahmin, 婆羅門) 출신의 용수 (龍樹)가 불교 발생지인 수지(隨地)에 올라가 노승 (老比丘. 李老; 妙雲相佛) 으로 부터 들은 외국 종교의 뜻 (外道義)을 기록한 수문 (隨文) 내용을 인도어로 경전을 만들어 중앙아시아에 알려 졌다. 대당서역기에 대사립 외도의 (大師立外道義) 수문파석상 그우열 (隨文破析詳其優劣) 이란 문구가 있다. 법립(法立)을 외국에서 들어온 도의 뜻을 바로 세운 스승으로 법거 (法炬)를 아견산에 있는 연정법거 (然正法炬) 라 했다.[19] 불법을 세우고 크게 번성시킨 사람이란 뜻이 있다. 이 두 사람이 천축국 사람들이 편술한 루탄경(樓炭經)을 중원에서 사용하던 언어로 번역 했다.[20]
인도의 다른 이름 이로 현두(賢豆)를 현수 (賢首)라 했다. 현수에서 흰머리란 뜻의 히말리아 또는 힌두교 인더스 하는 이름이 나타났다. 화엄종(華嚴宗)의 발생지가 수지(隨地)다.[21] 이렇게 몇 차례에 걸쳐 번역된 불경이 한국에 전해 졌다.
대루탄경(大樓炭經)
총령 동쪽을 진단(震旦)이라고 했다. 진단(震旦)의 우뢰진 자는 “별 진, 별 신, 때 신 (辰)이라 읽는 삼신 (三辰,日月星也)을 뜻한 글자의 파생자”로 “벼락 진, 아이 밸 신, 우레 진, 애 밸 신 震”이라고 풀이 한다. 이는 ‘동방 아침의 나라’라는 뜻이다. 출처를 불교경전 루탄경 (樓炭經)이라 했다. 대루탄경(大樓炭經)은 중국 서진(西晋)시대에 법립(法立)과 법거(法炬)가 290년에서 306년 사이에 낙양(洛陽)에서 한역하였다. 세기경(起世經)에는 빛의 종주권을 놓고 환웅과 석제가 다투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진수(陳壽, 233년 ~ 297년)의 삼국지 왜인전에 원시불교의 발생에서 중원에 알려진 사연을 간략히 설명 했다. 중앙아시아에 대진국(大秦國) 안식국(安息國) 과 인접한 곳에 시라(斯羅) 월지(月氏國) 소륵(疏勒)등 여러 나라가 있었다. [22]
현장 (玄奘:602-664년)의 대당 서역기(大唐西域記)에 나타난 루탄경 (樓炭經)에 실린 옛적 불교식 이름을 현장이 토를 달아 당나라 언어로 기록 하여 고조선어가 그 곳에 남아 있다. 진수는 불교가 나타난 곳에 노자 도덕경 내용이 “부도소재여 중국노자경 상출입 (浮屠所載與 中國老子經相 出入) 이라” 했다. 운남성 사람들이 불교 발생지 원주민과 차마고도 (茶馬古道)를 통해 계속 교류가 있었다는 뜻이다. 같은 길을 따라 대루탄경이 낙양에 전래 되여, 서진 말기에 번역 되기 시작 했다.
현지인들이 예맥족(斯. 濊貊 夫餘)이 쓰던 풍속과 신앙을 불교 경전에 남겼다. 불교 경전에는 옛적 예맥족이 쓰던 어음이 상형글자로 실려 있다. 그 한 예가 인도에 관한 이름이다. 축을 독(竺音篤)이라고 읽었고 백제 신라 임나가야가 남쪽에 있었다는 사실을 무시 했다. [23] 그러나 정운인 특 가라 (正云印特伽羅)란 문구가 있다. 이는 [천부인을 가라 사람들로 부터 얻었다]는 뜻이다.
동남유럽과 인도는 알래산더 대왕 때 부터 교류가 있었다. 원시 불교 발상지의 풍속, 신앙과 많은 어음이 서구에 알려 졌다. 서쪽으로 갔던 인도 사람들이 집씨(gypsy)란 종족의 원조다. 천축국 (天竺國)을 영어로 “Tianzhu, India” 라고 쓰고 있다.
당 현장의 대당서역기에 지나자 전왕지 국호 (至那者 前王之國號)란 문구가 있다. [24] 전왕이란 글자를 진시황의 진 나라 왕(秦王) 으로 풀이 했다. 삼국지 왜인전에 있던 대진 (大秦) 옆에 안식국에 속했던 시라국(斯羅國屬安息)이 있었다. 시라(尸羅) 란 불교를 위해 싸우다 죽은(殉敎者. Valor, Martyrs ) 시라(斯羅) 사람들의 시신이 여기 저기 흐터진 상황을 뜻한 글자다. 소륵(疏勒, 蘇勒)은 위그르 지역에 있던 나라로, 륵(勒)이 소생해 온 곳이란 뜻이다. 후한 시대에 나타났다. 천축국에서 활약 하던 예맥족(斯乃羅漢) 용사(勇士, 尸羅) 들이 중앙 아시아를 지나 금미달 영역에 왔다는 뜻이 있다. 힌두쿠쉬 협곡을 너머 중앙 아시아로 이어지는 통로에는 옛적 한국어가 남아 있고, 경주 금관총에서 출토된 유물이 중앙 아시아에서 출토된 유물과 같다. [25]
중앙아시아 불교국 사람들이 아침에 해가 뜨는 동쪽 땅을 진단 (震旦) 이라 했다. 진단 (震旦)의 본 뜻은 천한 예맥(濊貊)족이 사는 [옳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於義為地)사는 땅이란 뜻에 시탄 (斯坦)이라] 했다. 그 지역 대월지국에서 온 사신 이존(伊存)으로 부터 불경 내용을 말로 전해 들엇다.
마우라란 어음은 [도덕경에 실린 아무위(我無為)에서 유래] 했다고 본다.
예맥족 현인(賢人) 지도자 여러사람을 노자 (老子, 賢頭)를 뜻한 어음에서 “Himalaya, Indus, Hinduism” 하는 명사가 불교국가 영역에 나타났다.
인도에서는 아무런 근심걱정이 없는 지도자를 아수가 (Aśoka, Ashoka:阿輸迦) 라 했다. 이를 당나라에서 아육왕 (阿育訛也王) 으로 기록 했다.[26] 최고의 지도자를 무우왕 (無憂王, 阿育王) 이라 했다. 그가 진시황 이전에 인도 전역에 불교를 전파하여 아프카니스탄을 거처 중앙 아시아에 까지 이르서 서역 불교가 나타났다.[27]
고향을 찾아 왔다: 원시 불교 도인 시라 (尸羅)가 뿌리를 찾아 마지막 단군이 살던 지역에 왔다. 기원전 304 년에 천축국 도술인 시라 (尸羅)가 불상을 들고 연도(燕都)에 나타났다. 시라 (尸羅)란 범어로는 청란(清涼), 진(秦) 어로는 성선(性善) 이란 뜻이라 한다. 산서성 오대산 일대에 청랑산(清涼山)이 있다. 그 곳에서 상형글자가 처음 나타났다. [28] 토속 신앙를 다루던 선인을 보살로, 선인이 쓰던 건물을 불당으로, 선인이 즐기던 청양산 (清涼山)을 문수보살 (文殊菩薩)이 살던 오대산(五臺山)이라 했다. 보살 (菩薩)이란 보시(菩提)와 같은 옛적 한국어(胡語, 蓋狄語)로 “보살펴준다”는 뜻이다.
오대산 일대에 옛 단군의 무덤이 펼쳐진 신령한 구릉(丘陵)을 영구(靈丘), 영지(靈地) 또는 청구 (靑丘)라 했다. 황제가 그곳에 살던 자부선인 (紫府仙人居)을 만났다. [29]
여씨춘추에는 우(禹)가 인물을 구하려고 동쪽으로 갔다는 지명에 조곡 (鳥谷), 청구지향 (青丘之鄉)이란 이름이 있다. 서주 창립 초기 대회를 설명한 일주서 왕회해 에도 청구란 지명이 실렸다. 그 곳에 말갈 사람들이 살았다. 남조를 통일한 수나라가 돌궐 가한 막사에서 고구려 사신을 만났다. 그 사연을 배구가 답하기를 고구려본 고죽국 (高麗本 孤竹國)이라 했다. 고구려와 말갈병이 수문제의 아들이 이끌던 수나라 군사를 임유관 (臨渝關)에서 크게 격파 했다. [30] 고죽국이 있던 곳을 요서 임유 (遼西臨俞)라 했다. 낭랑이란 말갈어(多語, tartar language; 胡)라 했다. 청구산(靑丘山)에서 흘러 나오는 맑은 물소리를 사음한 글자가 낭랑(樂浪)이다. [31]
그 지역을 흐르는 여울을 쌍건하 역수 성수등 여러 글자로 기록 했다. 가람(伽藍, 神名)이란 명사가 그곳에서 나타났다. 그 시절에는 서왕모 (西王母)를 모시는 토속 신앙과 초창기 도교인 신선 (神仙. 僊)이 되기를 원하는 풍조가 흥행 했다. [32] 가라(加羅)와 신라는 원시불교 발생지와 깊은 관련이 있다.
불(佛) 부따( Buddha) 하는 어음은 “밝다, 환하다”는 뜻의 고조선 사람들(斯)이 쓰던 말이다. 예수(Jesus)란 예맥족(濊貊, 斯)의 수장 환웅(桓雄)에서 따온 이름인듯 하다.
한인(桓因)을 유가에서는 유인씨(有因氏) 불가에서는 제석(帝釋)라 한다. 세기경 (世記經)에 환인 (桓因)이 밝은 빛 (light)의 종주권을 놓고 제석(帝釋)과 다투었다는 기록이 있다.
천축국(天竺國) 인도 (印度)의 어원:
원시불교가 남 아시아 대륙에 퍼져,불교국 지역을 여러 이름으로 표기 했다. 천축국은 신독(身毒) 현두(賢豆) 인도(印度) 또는 월 (月)이라는 둥 이름이 분분하다. [33] 산해경에 조선의 지도자를 천독 (天毒)이라 한다. 필자는 규를 든 유목민의 지도자(𣫴)란 글자를 바꾸었다고 풀이 했다.[34] 인도에서 수지(隨地)란 곳을 특별한 나라로 다루었다. [35] 그곳 사람들이 천축국을 좋은 뜻으로 부른이름이 인도다. 인도를 월月이라 부르는 이유는 달의 형상이 여럿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그 하나가 사(斯)다. 모든 새상만사가 쉬지 않고 돌고 돌아 다시 나타난다. 이 사, 천할 시(斯) 라고 읽는 글자에는 “쪼개다. 떠나다. 희다” 는 뜻이 있다. 인도 지도자에게는 수지 사람들이 믿던 종교가 세롭다 하여 무위지교 미신 (無為之教彌新) 이라 했다. 인죽(印竹)이란 글자도 있다. 운남성에서 올라간 수지 사람들은 새로 정착한 곳을 좋은 뜻으로 천부인 (印)이 도착한 (度; reach to. deliver to) 곳이라 인도라 했다.
인도를 월이라 부르는 이유는 달의 형상이 여럿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모든 새상만사가 쉬지 않고 돌고 돌아 나타난다. 이 사, 천할 시(斯) 라고 읽는 글자에는 “희(白, 해, sun. 解)다” 는 뜻이 있다. 고조선의 수도 평양이 오늘의 해지(解池)연안 운성시다. 그 호수(salt water lake)를 씨애 치(Xiechi)라고 읽는다.
신구당서와 통전에 나오는 부도경 또는 고승전은 대당서역기에서 원명을 밝혔다. 그 원음을 사용하여 대루탄경 (大樓炭經) 이란 이름으로 첫 불교 경전을 작성 했다. 한국 고대어가 대루탄경과 불교경전에 살아 있다.
대루탄경(大樓炭經) 이란 먹칠한 큰 사원(Large temple painted with charcoal graffiti)이란 뜻이다. 대당서역기에는 루탄(樓炭) 이란 글자가 없다. 패허가 된 곳을 진흙이 주춧돌을 덮은 곳 (涅疊般那地) 또는 회탄 (灰炭) 또는 (塗炭)이라 했다.[36] 그 곳에서 자씨(茲氏), 즉 부처님이 나타났다. 현장은 황제 헌원 시절 순임금이 구토를 개발한 지도를 만들어 바치(虞舜之納地圖)던 시절에 이미 자씨가 내려 왔다 (自茲已降) 고 했다.[37] 산서성 분양시 (汾陽市) 를 자씨읍(茲氏邑)이라 한다. 도가 경전에는 황제 헌원이 청구에서 자부선인으로 부터 삼황내문 (三皇內文) 을 배웠다는 기록이 있다.[38] 이렇게 단군조선의 발생지에 관련된 사연이 황로 사상으로 바뀌어 수지에 이르러 원시불교로 나타났다. 금미달에 있던 큰 궁정 건물을 떠났다는 뜻이 맹자 이루 상하
(離婁上. 離婁下)편은 궁궐을 떠나 남 북으로 갔다는 뜻이다.
부여의 큰 궁정건물에 살던 사람을 해모수(解慕漱), 부루(夫婁 扶婁)태자라 한다. 어음이 유대인을 뜻한 히부루(Hebrew )와 비슷하다. 그 곳에서 해안으로 내려온 사람을 궁예 시조 박혁거세라 했다.
불경 비구 梵語 梵文 등등 불교 경전에 나오는 많은 고유명사 또는 형용사는 왕검조선과 관계 있는 사연들을 가차전주한 글자다. 고조선 땅이었던 진(晋)나라의 범선자 (范宣子) 는 洪範의 범자에서 성씨를 택했다고 한다. 같은 어음의 범(范,範)씨가 남긴 글자가 범문(梵文) 이라고 본다. 운남성에서 불교 스님이 쓰던 부적(符籍)의 글자와 비슷한 문자가 있다. 홍산문화권 전욱고양씨가 남겼다는 록도(綠圖, 錄圖)란 글자의 변형이 범문(梵文)이란 뜻이다. 주 무왕을 도았던 강태공, 태공망이 강성 여씨(姓姜, 氏呂)로 산서성 사람이다. 산서성 진양을 지나는 분수(汾水)로 이어지는 강수(降水)를 여러 글자로 썼다.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이 힌옷(白)을 입어 백적(白狄, 白翟) 또는 북적 (北狄)이라 했다. 강수(降水)연안이 백의민족(白衣民族)민족 시원이다. [39]
산서성 강수(降水)를 가차전주한 이름이 강가(ganga,강언덕)를 음차한 강기스 강 (Ganges River) 그사람들의 성수(聖水)다. 그곳 사람들 또한 힌(白)색을 선호 한다.
무시공(無是公)에서 무우왕 (無憂王)으로: 사마상여는 “無是公, 無是人也,明天子之義” 라는 문구를 남겼다. 무시공은 현명한 천자란 뜻이다. 무시공 (無是; shì, zhiɛ̌, xi)이 서역전에 나오는 무우왕 (無憂王)과 도덕경의 무위(無爲)모두 같은 뜻이다.
불학대전에는 천축국을 신독(身毒)국이라 했다. 신독국에 가상인물 황제헌원 (軒轅)이 살았다. 산해경에 나온 천독 (天毒)이 다스리던 조선을 신독국 이라 했다. 천독이 북쪽에서 상나라를 괴롭 혔다. 상 무정이 도깨비가 사는 북쪽지역 괴방(高宗伐鬼方)을 정벌 했다. 황제와 싸웠다는 치우 蚩尤, 천왕을 도깨비로 묘사 한다. 한 무제 때에 촉국의 상인이 인도 동북부에 있었다. 남월왕 조타 (趙他南越王),즉 남조의 지도자는 황옥에 살면서 천독, 즉 단군왕검이 다스리는 곳이란 뜻의 치우천왕이 들었던 둑기 (纛)를 달았다. 조(趙) 씨는 까마귀 오(烏)자에서, 새 조자 (鳥)로, 다시 나라 조자로 바뀌었다. 고조선의 영역이었던 삼서성 에서 나왔다.
한무제 (漢武帝) 당시 서역을 다녀온 장건(張騫.?~BC 114) 보다 앞서 촉국 상인이 차마고도를 거쳐 인도 동북부, 신독국(乾毒,身毒國) 즉 곤륜 (昆崙)이 사는 인도 동북부 수미산 (須彌山)이 있는 천축국(天竺國)과 교류 했었다. 소미로 (蘇迷盧) 또는 수미 (蘇迷盧山唐言妙高山。舊曰須彌) 란 글자는 중원에서 신선 (神僊) 이라고 부르던 단군신화를 전주한 글자다.
모름지기 수, 수염 수(須) 라고 읽는 글자는 유목민을 뜻한다. 그 지도자를 수미 (須彌山)라 했다. 곤륜과 같은 뜻이다. 수미산 (須彌山)이 곤륜산이 (崑崙山)이다. 뫼산자와 사람인자를 겸하여 여러 글자로 기록에 나타난다. 곤륜이란 글자가 나타나는 지역은; 산서성 분수 여안, 칸 탱그리가 있는 중앙 아시아, 그리고 운남성 서쪽에 있다. 수서에 나오는 곤륜인(昆侖人) 이 당시 토속 신앙을 주관하던 단군이라고 본다
강희자전에 여러 글자로 쓰던 천축국 어원을 설명 했다. 또한 인도(印度)의 인자는 부자와 같은 뜻이라 했다.符,印也。印,信也,亦因也,封物相因付。《增韻》刻文合信也 천부경이 도착한 곳이라 인도라 했다. 가라에서 얻어 왔다 印特伽” 란 설명이 있다.
흰두교(Hinduism)란 이름 자제가 외래어 (exonym) 라 한다. 범어(梵語; Sanskrit)란 장승을 세워 놓은 신앙촌 (因地隨人) 에서 나타난 천부인(天符印; 原始垂則) 47자, 유범천 품승(由梵天稟承)이라 했다. [40] 즉 여러 글자로 기록되던 가야(加耶, 伽倻 가라(加羅, 伽羅, 迦羅, 柯羅) 사람들이 천부인을 보관 하던 곳집(伽藍堂)에서 쓰던 글자를 이어 받았다.
[The word Hindū is an exonym,[31] derived from Sanskrit word Sindhu,[32] the name of the Indus River as well as the country of the lower Indus basin (Sindh)]
현명한 지도자란 뜻의 현두(賢豆)가 힌두(Hindhu)다. 노자(老子)란 뜻이다. 천축국(天竺國)이란 중원 사람들이 사용한 이름이다. 어원은 글자 속에 있어야 한다. 광아에 축은 죽(《廣雅》竺,竹也) 이라 했다. 천축국(天竺國)이란 하늘(天)을 떠밭이 (竺)는 나라(國)란 뜻이다. 시와 가무 (詩歌舞)를 즐기던 운남성에 살던 노인들이 높은 곳을 찾아 올라가 고조선 토속신앙과 풍속을 전했다. 예맥족 가라(伽羅) 사람들이 쓰던 글자 시문(斯文)으로 편술 되었던 시서역경 (詩書易經) 또한 천축국에 올라 갔다.
신앙촌
시킴(Sikkim, 斯金) 왕국 문양:
가림토(加臨土) 고조선 문자 천부인(天符印): 환인의 아들 환웅이 천부인(天符印)을 받아들고 비천한 사람들(예맥, 斯 扶餘)이 사는 땅에 내려 왔다. 천부인(天符印)이 천부경이다. 가림토(加臨土, 加臨多) 문자의 어근은 가림(분별 divide, 갈라지다)하는 한국어를 사음한 글자 또는 가람(伽藍)의 다른 글자다. 백제땅 부여에 가림성(扶餘 加林城)이 있었다. [41] 가림토(加臨土) 란 부여의 발생지인 금미달 가야국을 뜻했다.
불경 기록에 거루/가라선인 (Khara; 佉盧. 佉樓仙人) 이 창힐 이전에 글자를 만들어 썼다는 기록이 있다. 위진 혼란기에 금미달 지역에 있던 위나라 역사서 (蓋魏國之史書)가 발굴 되었다. 모두 옷칠로 그려진 과두자 (漆書皆 科斗字)로 적혔다. 과두조전(科斗烏篆) 자가 거루 선인 (佉樓仙人)이 쓰던 고조선 문자다. 주 선왕 시절에 산서성 북쪽 태원에서 중산보 (仲山父)가 잡혀와 구전해 오던 예기를 기록으로 남겼다. 이를 전(篆)자라 한다.
금미달 사람들이 남북으로 흐터져 나갔다. 만주로 올라 갔다. 발해국(渤海, 震國)에서 당나라에 보낸 “가림토 문자로된 서한”을 이태백 (701년 ~ 762년)이 풀이 했다는 기록이 있다. 환단고기 초본이 만주땅에서 나타났다. 그에 가림토(加臨土, 加臨多) 문자가 실렸다.
고조선 사람들(예맥, 斯 扶餘)이 운남성을 거처 원시불교 발생지에 이르렀다. 해부루와 음이 같은 “Hebrew alphabet” 과도 관계가 있다고 본다.
신앙촌에서 쓰던 글자가 범어(梵語)는 범어 (梵語)란 장승을 세워 놓은 신앙촌 (因地隨人) 에서 나타난 천부인 (天符印; 原始垂則) 47자다. 유범천 품승 (由梵天稟承)이라 했다. [42] 즉 곳집에서 쓰던 언어를 이어 받았다. 이에서 남방불교국 지나 여러나라의 표음문자로 쓰이고 있다.
천부경에 실린 글자와 내용(無始 無終)이 도덕경과 불가 기록에 보인다.
푸를 청자를 달월(月) 또는 붉을 단 (丹)의 상형로 적기도 한다. 중원 기록에는 요순시대 바둑이 나타나 단주(丹朱)가 즐였다고 한다. 달월(月)을 근간으로 하는 청(青)자는 단(丹)군이 살던 청구(靑丘)에 들어온 불교에서 유래된 글자다.
불교 경전에는 옛적 예맥족이 쓰던 어음이 상형글자로 실려 있다. 그 한 예가 인도에 관한 이름이다. 축을 독(竺音篤) 이라고 읽었고 가야가 있었다는 사실을 무시 했다. [43]
서진 시대에 나타난 루탄경 (樓炭經)에 실린 옛적 불교식 이름(舊曰,舊云) 을 현장이 토를 달아 당나라 언어 (唐言)로 풀이 했다.[44] 부도(浮屠)란 글자는 없고, 유목민의 지도자를 뜻하는 한(韓, Kahan, Khan)을 한나라 한(漢)자 로, 노자 도덕경과 도가에서 쓰는 문구를 인용한 글자를 이노 (李老)와 한자 (韓子曰) 라 했다.[45]
불경에 많이 나오는 수미(須彌) 도솔(兜率) 하는 글자는 옛적 변역 당시의 사음자라고 설명하느라 단 한번씩 나타났다.[46] 수미산(舊曰須彌)을 옛적에 묘고산 (唐言妙高山) 이라 부르던 높은 산이라 하고, 동서남북 네곳을 통치하며 수미를 보호하는 자를 사천왕 (四天王) 이라 했다. 금은동철륜왕(輪王)이라 이름했다. 금륜왕 (金輪王)이 사방(四方)을 모두 다스린다.[47] 그 곳에 윤왕의 목장(輪王之苑囿)이 있었다. 인도 동북 쪽 차를 많이 생산 하는 지역(漢荼城)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48]
전륜성왕(轉輪聖王)이란 복합어다. 미륵이전에 단군이 대를 이어 (轉輪) 통치했다는 뜻이다.《釋書》佛說彌勒成佛經,其先轉輪聖王,名儴佉。
도솔타(兜率他) 또는 도설술이란 용어는 [제일 높은 미로(迷路 Maze)가 되살아 났다는 산(蘇迷盧山)에서 친히 묘상을 보았다]는 뜻이 라고 했다. 도솔을 수미 (兜率他) 라 했다. 제일 높은 산에 다시 나타났다는 묘상이란 표현은 [요순시절에 삼묘 환두 (驩兜)를 북쪽 공공국에 있는 항산에 귀양을 보냈던 무리가 나타났다]는 뜻이다. 아라한(阿羅漢, 阿羅呵,阿羅呵) 이라고 기록된 인물 설명에 나온다.
축(筑)을 오를 섭(拾)이라 했다. 운남성으로 내려 갔던 노인들이 [다시 되돌아 올라 와서 쌓았(筑)다]는 뜻이다. 인도를 뜻한 축을 독(篤) 이라고도 발음했다. 쌓을 축(筑) 자는 쟁(箏)과 같은 현악기, 즉 가야금을 뜻했다. 운남성에서 선인(仙人) 의 경지에 이른 예맥족 노인(老子, 道士)들이 높은 지역에 올라가서 현지인에게 토속 신앙을 소개 했다. 당시 그들에게는 대(竹)로 만든 관악기와 현악기 “筑, 竺”가 필수품이 었다. [49]
자객 형가와 같이 갔던 고점리(髙漸離)가 현악기를 잘 다루어 이를 선격축(善擊筑) 이라 했다. [50] 변진전에는 철전(명도전)을 사용 하고 축과 비슷한 (似筑) 가야금이 있다. 전국시대 산동반도 제 나라 영역에서는 “鼓瑟、擊筑、彈琴” 풍속이 있었다. [51]
네 글자 “笁竺 筑築” 모두 대, 고죽과 관계가 있다. 첫 글자는 퉁소의 혀를 뜻한 글자다. 어음 죽 또한 ‘축’으로 혼용 했다.[52] 현악기를 뜻한 축(筑)자에 나무 목(築)을 더한 글자 와 같다고 한다.
불교 스님이 쓰고 다녔던 삿갓(笠)에는 고죽군을 뜻한 대나무 죽 (竹)자가 있다. 화살(arrow)을 천죽(箭,天竹也)이라 했다. 대(竹)로 만든 삿갓을 쓴 노인들이 높고 높은 곳에 올라가 살던 천죽국(天竹國)이 천축국 (天竺國) 으로 기록 되었다. [53]
상(商 殷)나라를 부흥 시킨[부열(傅說;夫餘)의 후손이 가야금을 들고 운남성에서 서쪽 으로 올라가 하늘을 높히 떠 바치(筑)는 나라를 만들었다]는 뜻이 천축국 이다. 부열 (傅說)란 어음이 예맥족이 새운 부여(夫餘)의 어원이라 했다. [54]
사기 은(殷) 본기에 실린 “是時說為胥靡,筑於傅險” 문구를[죄인으로 부암성을 쌓던 사람] 이라 한다. 이 문구는 [남루한 옷을 입고 부암에서 거문고와 같은 현악기(筑) 줄을 손으로 뜯고 있던 사람] 이란 뜻이다. 고조선 노인들이 쓰던 악기에서 유래된 이름이 천축국이다. 부열(傅說)이 고조선 영역(隱于虞)에 은거 했다.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