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범어(梵語)에는 고조선어가 있어야 한다. 범어(梵語)에는 고조선 사람들의 어음이 있어야 한다.
원시 불교의 전파: 대루탄경(大樓炭經)
천축국(天竺國) 인도 (印度)의 어원
원시 불교의 서역 진출:
고조선 문자 천부인(天符印):
시원을 찾아 왔다.
원시불교의 중원에 전래
루탄경
지나 (支那)의 어원: 중원 남쪽을 뜻했다. 지나 (支那)란 어음은 지나 (went over, passed by)서의 사음자다.
나무아비타불 관세음보살 이란 문구는 魏晉南北朝 이후에 처음 보인다.
나무[南無 ] 아미타불[阿彌陀佛]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의 뜻은,
아미타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께 귀의한다는 의미이다.
타불이란 글자(共工臣名曰相繇,九首蛇身)와 원시 불교의 발생과 전래를 종하합 해 보면, [나무아비타불 관세음보살 이란 뜻은 금미달에 세워 놓았던 서낭신(totem pole,나무로 깎아 만든 애비상,저陀 부처佛님) 이 세상 사람 들의 예기를 듣고 살펴 주십시요]란 뜻이다.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을 뜻을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며 부처님 앞에서 빌고 있다.
甘山寺石造阿彌陀佛立像감산사 석조 아미타불 입상,
孟子 滕文公下: 天下之生久矣,一治一亂。當堯之時,水逆行,氾濫於中國。蛇龍居之,民無所定。下者為巢,上者為營窟。《書》曰:『洚水警余。』洚水者,洪水也。使禹治之,禹掘地而注之海,驅蛇龍而放之菹。
감산사 절터에서 발견된 화강암 석불.
《康熙字典·宀部·二》它:《玉篇》古文佗字。佗,蛇也。《說文》虫也。本作它,从虫而長。上古艸居,慮它,故相問無它乎。又《玉篇》非也,異也。《正字通》與佗他同。《易·比卦》終來有它吉。《禮·檀弓》或敢有它志,以辱君義。又《揚子·法言》適堯舜文王爲正道,非堯舜文王爲它道,君子正而不它。又《正譌》它,虫之大者。象寃曲𠂹㞑形。今文加虫作蛇,食遮切與托何切,二音通用。
원시불교 서론: 홍산 문화권에 남아 있던 사람들의 역사가 환단고기에 실려 있다. 동양 최초의 신앙을 황노사상(黃老思想)이라 했다. 선사시대 부터 동북아시아 전역에 예맥 (濊貊. 斯)족이라 부르던 유목민이 살았다. 환웅천왕의 아들의 뜻이 구속 받고 있는 사람들이 사는 땅에 있어 북쪽에서 내려와 나라를 세웠다. 그와 같은 의재시 (意在斯)란 문구가 사마천에게 남긴 유언에 있다. 단군설화를 기록으로 남기던 시절에 원시 불교가 금미달에 정착 했다는 증거다.
시(斯)자를 따라가면 불교의 시원과 분포도가 보인다.
남쪽으로 도망 갔던 사람들이 차마고도를 따라 히말리아 산맥 동쪽에 올라가 고조선의 토속 신앙을 전하여 원시 불교가 나타났다. 운남성 (雲南省) 사람들이 전한 고조선에 전해 오던 설화와 기록을 원시불교 발생지 현지인이 번역 하여 루탄경 (大樓炭經) 초안을 범어(梵語)로 남겼다.[1]
환단고기와 범어(梵語)로 기록된 불경에는 고조선 역사와 어음이 있어야 한다.
도덕경 (道德經)의 유래: 가상 인문 황제와 그의 뒤를 이은 여러 노인들의 가름침이란 뜻이다. 노자(老子)가 서쪽으로 가서 호 (教胡)를 가르쳤다. 서쪽으로 가기 전에 진나라 서쪽 관문 (西關)에서 하룻밤을 자면서 남긴 5000자가 도덕경이라 한다. 이를 청우에 싣고 (乘青牛)갔다. 새상 어디에고 푸른 소는 없다. 청우란 청구를 뜻한 글자다. 고조선 수도에 전헤오던 각종 귀중한 서적 (詩 書 經)을 수래에 싣고 갔다는 뜻이다. 노자(老子)는 복수다. 은나라 때 태어나서 동주의 사관으로 지냈다. 공자보다 늙은이라 귀가 먹은 노인을 노담(老聃)이라 한다.[2] 석가모니는 주장왕(周莊王; 재위: 기원전 696년 ~ 기원전 682년) 9년 에 탄생 했다. 공자가 만났던 노자 이전에 출생 했다.
사기에 “蓋老子百有六十餘歲,或言二百餘歲.”
상 (殷商)나라 현인 상용(商容)에게서 도(道)를 배웠다.[3] 상용(常容), 즉 환웅 천왕의 모습을 깎아 세워 놓은 웅상(雄常)을 상용(商容)이라 했다. 시경 위풍 벌단(魏風 伐檀)에 실린 “彼君子兮, 不素餐兮, 즉 저 군자는 소박한 복록도 받지 않는다”는 시구를 상용의 예기라 한다. 능력있는 사람이 등용되지 않아 위나라 사람들이 풍자한 시문이라 한다.
도(道; 辶首)란 우두머리를 따른다는 뜻으로 백익(伯益)의 가르침을 따른다는 뜻이 있다. 덕(德:悳:直 心)이란 “여러 사람의 진심에서 우러난 말을 듣는 다는 뜻”글 자다.
주역 계사(繫辭)에 미륜천지지도 (彌綸天地之道)란 문구가 있다. [4] 이방인 세력 주족이 고조선 땅에 들어와 단군왕검 백익이 남겨놓은 역서를 주역이라 했다. 홍법구주 이윤 유서의 이윤 (彝倫)을 미륜(彌綸)으로 바꾸었다. [5] 미륜천지지도 (彌綸天地之道)란 문구는 백익의 가름침(彌綸)이 천지의 도(道)란 뜻이다.
치수 사업을 하던 시대 부터 형벌이 있었다. 하나라 때의 보속형(夏贖刑)을 개조 하여 주목왕 때 만들었다는 여형(呂刑)이 있다.
한(韓)나라의 여러 공자들이 한비자(韓非子)를 남겼다. 대표적 인물 한비(韓非, 기원전 280년? ~ 기원전 233년)는 말을 더듬어 “옛적부터 전해 오던 상서여형 (尚書•吕刑),형 벌”을 옳바로 설명 하지 못했다.[6] 그로 부터 법가(法家)란 이름이 나타났다. 공자는 충서 (忠恕)를 강조 했다. 성 (性)을 따르는 것이 도(道)라고 인식 했던 공자의 제자들은 성선 (性善) 성악설(性惡說)하는 두파로 갈리고, 제자 백가란 이름이 나타났다.
시경의 유래: 공자가 주나라 궁정에 있던 동상에 세겨진 금인명 (金人銘)을 읽었다. 그 글자를 시문(斯文) 이라 했다. 그곳에서 노자를 만났다. 천할 시(斯), 즉 옛적부터 그 지역에 살던 예맥(濊貊)족이 쓰던 글자다. 사마천은 고조선과 하나라의 기록 (虞夏 之文可知)을 알수 있다 했고, 모시정의에는 시경의 기원은 전설을 기록으로 남기던 시절 (唐虞始造其初)이라 했다. [7]
고자시삼천여편(古者詩三千餘篇)라했다. 공자가 이를 줄여 현존하는 시경을 만들었다. 왕풍 이외의 국풍(향가國風)는 모두 변한사람들이 부르던 민요란 뜻에 변풍(變風)이라 했다. 고조선에 전해 오던 예기를 노자 여러 사람들이 깊은 산속 원시불교 발생지(Sinja Village)에 전했다. 인도 역사에 나오는 베다 시대(Vedic period, 기원전 1500년 ~ 기원전 500년) 사람들이 부르던 향가에 남아 있으리라 본다. 불가에서도 삼태극 (三太極) 문양을 쓰고 있다. 시문(斯文)으로 편술 되었던 향가를 시경 (詩經)이라 했다. [8]
원시 불교의 개념: 사마천은 그가 살던 지역에 전해오는 토속 신앙을 황로 사상 이라 했다. 자신이 고난을 격으면서 “천도 시야 비야(天道是也非也), 즉 천도라고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하고 의심했다. 그의 고향이 고조선 발생지다. 고조선 사람들이 권선징악으로 푸리 하는 천도를 믿었다. 이를 신선 사상(神仙思想) 또는 신선의 가르침(仙敎) 이라고 믿었다. 사마천은 중원의 지도자(王)를 천자라 하여 천자지덕(天子之德) 또는 삼왕지덕 (三王之道)이라는 등 도와 덕을 분리해서 기술했하고 도교(道敎) 란 용어는 쓰지 않았다. 지상에서 모든 것을 다 할수 있던 지도자는 죽지 않고 하늘 나라를 자유로이 날아 다닌다고 인식했던 신선(仙, 僊)이 되기를 원 했다. 신선의 가르침을 천도(天道)라 했다.
수행을 하고 맑은 정신을 유지(精神清淨) 하면 불가의 가름침 (則成佛道) 을 터득 할수 있다. 성불이란 뜻을 범어로 보시 (梵語菩提)라 했다. 범어란 불교 발생지 사람들이 쓰던 언어란 뜻이다. 보시(菩提)란 호어(胡語)다. 그에 관한 문구를 읽어 보면 [한국어로 보살피다. 보살펴 준다는] 뜻이다. [9] 불(佛)이란 불 (火), 즉 횃불 (torch))의 어음이다. 횃불을 높히 들고 앞서 가둣 세상 만사를 훤히 볼수 있다는 뜻이다. 맏 백(伯) 일백 백(百)자 풀이에서 설명 했다. 고조선에 전해 오던 역사 전통 풍속 가치관 (詩 書)에, 끝없이 변해가는 휘험하고 미묘한 새상 만사(危微之幾)를 설명 하던 역(易) 의 개념이 불교 개념에 실려 있다.
[성악설의 효시로 알려진 순자에 옛 도경(故道經)에 실렸다는 문구가 현제 통용 되는 도덕경에는 보이지 않고, 주자어류 석씨 (釋氏)편에 한구절 실렸다. 주희(朱熹)는 석씨편에서 불가와 유자, 묵가 법가등 제자 백가와의 관계를 간략히 설명 했다. 노자가 서쪽에 가서 호를 가르쳐 원시 불교가 나타났다는 문헌에 실린 기록을 순자와 주희가 사실로 논증 했다. [10] ]
불가에서도 높은 하늘에서 빛을 내리는 일월성진(日月星辰) 삼신(三辰)을 뜻한 삼태극 (三太極)문양을 쓰고 있다. 태초 부터 석가모니까지 일곱 부처님 (칠성; 七星)이 계섰다. 그후 미륵(彌勒)이 나타났다. 미륵이란 글자가 나타난 곳이 금미달 (今彌達)이다. 위(魏)나라 역사서를 편술한 위징(魏徵)은 불교와 도교는 방외지도 (方外之教) 즉, 먼나라 성인들의 가르침 이라 했다. 고조선 원주민(斯)들이 난을 피해 하얀 눈이 덮힌 희말라야 높은 산속에서 읊던 염원(念願)이 원시 불교 으로 나타났다.
출생지: 삼국지 왜인전에 석가모니 탄생지 임아국(臨兒國,[梵Lumbinī] 佛)에 관한 기록이 있다.[11] 석가모니(釋迦牟尼)칭호에 “소가 우는 소리, 馬/牟;móu mù mào의 상형글자”에는 유목민(牟)이란 뜻이다. 석가(釋迦)란 “멀리서 온 깨인 집안”이란 뜻이 있다. 출생지를 삼국지 왜인전에 석가모니 탄생지 임아국(臨兒國lín ér guó [梵Lumbinī] 佛) 즉 “어린 아기 부도(生浮屠)가 태어나려는 나라”란 표현을 음역한 글자다. 같은 곳을 람비니원 (嵐毘尼園), 또는 람비니(藍毗尼)라 했다. 신선한 비람이 부는 히말라야 산골짜기에 올라와 살던 빛을 숭상하는 유목민의 자손이란 뜻이다. 원시 불교 발생지와 운남성은 계속 하여 교류가 있었다.
노자(老子)가 서쪽에 가서 원주민(胡)에게 도덕경을 가르쳤다는 사실을 동진의 도안(道安: 312-385) 이 인용 했다. 운남성과 천축국이 문화와 믿음이 상통 한다는 표현을 [언어를 서로 이해 할수 있었고, 도덕경 두편을 사용하는 스님들을 보았다]고 했다. 운남상과 교류가 계속 있었다,
한위지제 성행 시의 (漢魏之際盛行斯意) 란 문구가 고승전 (宋高僧傳) 에 있다. 도덕경 내용에 예맥족(斯)의 가르침이 있다는 뜻이다.[12]
대대로 사관을 지냈던 선조의 뒤를 따라 사마천이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중앙아시아 시탄(斯坦)에서 온 예맥 족(意在斯乎!)의 역사를 완성 하려고 사료룰 구하려고 산서성에 올라 갔었고 운남성을 비롯한 남쪽 여러 지역을 여행 했다. [13] 도교(道教)에 심취 했던 동진(東晉)의 갈홍(葛洪, 283년 ~ 343년)이 서경 잡기에서 곤명호수(昆明池)를 자세하게 설명했다.[14] 운남성에는 아직도 옛적(고조선)에 쓰던 글자가 남아 있다.
범어(梵語)에는 고조선 사람들의 어음이 있어야 한다.
클 범(範)자의 동음 이자가 범어(梵語)의 범자다.
대당서역기에는 “시위성(斯為盛)이야란 문구가 있고, 석가여래(釋迦如來) 너자아지족 (汝子我之族)이란 문구가 있다. 깨달은 사람들 여럿이 와서 너의 애기 (석가모니)는 우리와 같은 족속이다라고 알렸다. 세존왈 시자 아지족야(世尊曰, 斯人者我之族也) 란 했다. 석가모니가 사인(斯人; 老子들) 은 나와 같은 족속이다 라고 말했다. [15] 인도에는 여러 소읍 국가가 있었다. 그중에 김이국(金耳國)이 있다. 뜻이 같은 시킴 (Sikkim; 斯金) 이란 왕국이 부탄 왕국 옆에 있었다. 그 일대에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록된 신앙촌(信仰村; Sinja Valley)이 있다. [16] 예맥족이 사천-운남성을 지나 히말라야 동쪽에 올라가서 고조선 토속 종교 가치관 (斯意)을 전해 원시 불교가 나타났다.
무위지교미신(無為之教彌新)이란 문구가 있다. 도덕경의 핵심이 인도의 지도자에게는 새롭다는 뜻이다. 주역 계사(繫辭)에 미륜천지지도 (彌綸天地之道)란 문구가 있다. 미(彌) 자는 명사로 지도자를 륜 (綸)자는 동사다. 옛부터 미(彌)가 다스리던 고조선 지역에 전해오던 천지인 우주관을 설명한 문구다. 도덕경에 실린 도생일 일생 이 (道生一,一生二) 로 점괘을 풀이라는 거북이 홍범을 풀이하며 성인의 법칙(聖人則之) 이라 했다. [17] 옛적 고조선의 언어가 운남성을 거처 천축국에 이르러 그 곳에 원음이 많이 남아 있다.
파리(婆夷)의 언어가 파리어 (巴利語): 서가모니는 어머니 마야부인(摩訶 摩耶夫人)이 일찍 죽어 이모(姨母)가 길렀다. 동이 여자란 뜻이다. 석가모니의 모국어가 고조선 사람들이 쓰던 언어다. 마하마야 (摩訶 摩耶)란 애기에게 “엄마야”를 뜻한 어음으로 가르치던 옛적 한국어다. 석가모니의 이모(優婆夷) 가 쓰던 언어란 뜻이다. 그녀가 쓰던 고조선언어가 초기불교의 공인어로 채택 되었다. 불교경전 노파의 언어란 뜻에 파리어 (巴利語. Pali Language)라 한다.
서역기에는 시/사(斯)라고 부르는 신라의 옛이름 시라 (尸羅) 와 금미달을 뜻한 두루미 미(彌)자가 많이 실렸다. 신라를 새운 사람들이 그곳에서 왔다. 옛적 부터 금미달이 점령 되던 시기에도 계속 해서 고조선 사람들이 먼 남쪽 나라 운남성으로 피란을 갔다. 저 멀리 구름에 덥힌 산너머 남쪽 나라를 지나 (支那)라 했다. 그 후에도 전란에 밀려 옛 부터 다니던 차마고도(茶馬古道)를 따라 원시불교 발생지에 이르러, 불교 초기 경전에 실린 언어를 쓰는 우수한 사람들로 인정 받아 예맥족이 쓰던 시라(尸羅)어 가 그 지역에 정착 했다. 이런 연유로 불교 경전에 옛 한국어를 가차 전주 한 글자가 많이 있다.
원시 불교의 전파(傳播):
원시 불교의 서역 진출: 중국(中國)을 서역에서 진단(震)이라 부른다는 사료의 출처를 루탄경(樓炭經)이라 했다. 진시황이 중원을 통일 하기 전에, 인도 마우라 왕조 (Maurya Empire; 322 BCE – 185 BCE)때에 국교가 되었다. 원시 불교는 그보다 3 세기 앞서 나타나 인도 서남쪽으로 전파 되었다.
인도 동북 산악지대인 수지(隨地)에서 발생한 원시불교는 인도서쪽 인더스문명 발생지를 지나 중앙 아시아에 까지 파급 되었다. 당시에 동서남북 사방에 마명(馬鳴) 시파 (提婆) 용수(龍猛 龍樹) 동수(童受) 네사람의 현명한 스님이 있어 사일조세 (四日照世) 라 한다.[18] 마명(馬鳴: 嘶)은 인도의 최초의 불교 시인이라 한다. 그의 이름자에는 예맥족(嘶:口 斯)의 대변인이란 뜻이 있다. 남인도(南天竺)의 브라만 (Brahmin, 婆羅門) 출신의 용수 (龍樹)가 불교 발생지인 수지(隨地)에 올라가 노승 (老比丘. 李老; 妙雲相佛) 으로 부터 들은 외국 종교의 뜻 (外道義)을 기록한 수문 (隨文) 내용을 인도어로 경전을 만들어 중앙아시아에 알려 졌다. 대당서역기에 대사립 외도의 (大師立外道義) 수문파석상 그우열 (隨文破析詳其優劣) 이란 문구가 있다. 법립(法立)을 외국에서 들어온 도의 뜻을 바로 세운 스승으로 법거 (法炬)를 아견산에 있는 연정법거 (然正法炬) 라 했다.[19] 불법을 세우고 크게 번성시킨 사람이란 뜻이 있다. 이 두 사람이 천축국 사람들이 편술한 루탄경(樓炭經)을 중원에서 사용하던 언어로 번역 했다.[20]
인도의 다른 이름 이로 현두(賢豆)를 현수 (賢首)라 했다. 현수에서 흰머리란 뜻의 히말리아 또는 힌두교 인더스 하는 이름이 나타났다. 화엄종(華嚴宗)의 발생지가 수지(隨地)다.[21] 이렇게 몇 차례에 걸쳐 번역된 불경이 한국에 전해 졌다.
대루탄경(大樓炭經)
총령 동쪽을 진단(震旦)이라고 했다. 진단(震旦)의 우뢰진 자는 “별 진, 별 신, 때 신 (辰)이라 읽는 삼신 (三辰,日月星也)을 뜻한 글자의 파생자”로 “벼락 진, 아이 밸 신, 우레 진, 애 밸 신 震”이라고 풀이 한다. 이는 ‘동방 아침의 나라’라는 뜻이다. 출처를 불교경전 루탄경 (樓炭經)이라 했다. 대루탄경(大樓炭經)은 중국 서진(西晋)시대에 법립(法立)과 법거(法炬)가 290년에서 306년 사이에 낙양(洛陽)에서 한역하였다. 세기경(起世經)에는 빛의 종주권을 놓고 환웅과 석제가 다투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진수(陳壽, 233년 ~ 297년)의 삼국지 왜인전에 원시불교의 발생에서 중원에 알려진 사연을 간략히 설명 했다. 중앙아시아에 대진국(大秦國) 안식국(安息國) 과 인접한 곳에 시라(斯羅) 월지(月氏國) 소륵(疏勒)등 여러 나라가 있었다. [22]
현장 (玄奘:602-664년)의 대당 서역기(大唐西域記)에 나타난 루탄경 (樓炭經)에 실린 옛적 불교식 이름을 현장이 토를 달아 당나라 언어로 기록 하여 고조선어가 그 곳에 남아 있다. 진수는 불교가 나타난 곳에 노자 도덕경 내용이 “부도소재여 중국노자경 상출입 (浮屠所載與 中國老子經相 出入) 이라” 했다. 운남성 사람들이 불교 발생지 원주민과 차마고도 (茶馬古道)를 통해 계속 교류가 있었다는 뜻이다. 같은 길을 따라 대루탄경이 낙양에 전래 되여, 서진 말기에 번역 되기 시작 했다.
현지인들이 예맥족(斯. 濊貊 夫餘)이 쓰던 풍속과 신앙을 불교 경전에 남겼다. 불교 경전에는 옛적 예맥족이 쓰던 어음이 상형글자로 실려 있다. 그 한 예가 인도에 관한 이름이다. 축을 독(竺音篤)이라고 읽었고 백제 신라 임나가야가 남쪽에 있었다는 사실을 무시 했다. [23] 그러나 정운인 특 가라 (正云印特伽羅)란 문구가 있다. 이는 [천부인을 가라 사람들로 부터 얻었다]는 뜻이다.
동남유럽과 인도는 알래산더 대왕 때 부터 교류가 있었다. 원시 불교 발상지의 풍속, 신앙과 많은 어음이 서구에 알려 졌다. 서쪽으로 갔던 인도 사람들이 집씨(gypsy)란 종족의 원조다. 천축국 (天竺國)을 영어로 “Tianzhu, India” 라고 쓰고 있다.
당 현장의 대당서역기에 지나자 전왕지 국호 (至那者 前王之國號)란 문구가 있다. [24] 전왕이란 글자를 진시황의 진 나라 왕(秦王) 으로 풀이 했다. 삼국지 왜인전에 있던 대진 (大秦) 옆에 안식국에 속했던 시라국(斯羅國屬安息)이 있었다. 시라(尸羅) 란 불교를 위해 싸우다 죽은(殉敎者. Valor, Martyrs ) 시라(斯羅) 사람들의 시신이 여기 저기 흐터진 상황을 뜻한 글자다. 소륵(疏勒, 蘇勒)은 위그르 지역에 있던 나라로, 륵(勒)이 소생해 온 곳이란 뜻이다. 후한 시대에 나타났다. 천축국에서 활약 하던 예맥족(斯乃羅漢) 용사(勇士, 尸羅) 들이 중앙 아시아를 지나 금미달 영역에 왔다는 뜻이 있다. 힌두쿠쉬 협곡을 너머 중앙 아시아로 이어지는 통로에는 옛적 한국어가 남아 있고, 경주 금관총에서 출토된 유물이 중앙 아시아에서 출토된 유물과 같다. [25]
중앙아시아 불교국 사람들이 아침에 해가 뜨는 동쪽 땅을 진단 (震旦) 이라 했다. 진단 (震旦)의 본 뜻은 천한 예맥(濊貊)족이 사는 [옳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於義為地)사는 땅이란 뜻에 시탄 (斯坦)이라] 했다. 그 지역 대월지국에서 온 사신 이존(伊存)으로 부터 불경 내용을 말로 전해 들엇다.
마우라란 어음은 [도덕경에 실린 아무위(我無為)에서 유래] 했다고 본다.
예맥족 현인(賢人) 지도자 여러사람을 노자 (老子, 賢頭)를 뜻한 어음에서 “Himalaya, Indus, Hinduism” 하는 명사가 불교국가 영역에 나타났다.
인도에서는 아무런 근심걱정이 없는 지도자를 아수가 (Aśoka, Ashoka:阿輸迦) 라 했다. 이를 당나라에서 아육왕 (阿育訛也王) 으로 기록 했다.[26] 최고의 지도자를 무우왕 (無憂王, 阿育王) 이라 했다. 그가 진시황 이전에 인도 전역에 불교를 전파하여 아프카니스탄을 거처 중앙 아시아에 까지 이르서 서역 불교가 나타났다.[27]
차마고도(茶馬古道) 지도
Map of the Tea-Horse road – 차마고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고향을 찾아 왔다: 원시 불교 도인 시라 (尸羅)가 뿌리를 찾아 마지막 단군이 살던 지역에 왔다. 기원전 304 년에 천축국 도술인 시라 (尸羅)가 불상을 들고 연도(燕都)에 나타났다. 시라 (尸羅)란 범어로는 청란(清涼), 진(秦) 어로는 성선(性善) 이란 뜻이라 한다. 산서성 오대산 일대에 청랑산(清涼山)이 있다. 그 곳에서 상형글자가 처음 나타났다. [28] 토속 신앙를 다루던 선인을 보살로, 선인이 쓰던 건물을 불당으로, 선인이 즐기던 청양산 (清涼山)을 문수보살 (文殊菩薩)이 살던 오대산(五臺山)이라 했다. 보살 (菩薩)이란 보시(菩提)와 같은 옛적 한국어(胡語, 蓋狄語)로 “보살펴준다”는 뜻이다.
오대산 일대에 옛 단군의 무덤이 펼쳐진 신령한 구릉(丘陵)을 영구(靈丘), 영지(靈地) 또는 청구 (靑丘)라 했다. 황제가 그곳에 살던 자부선인 (紫府仙人居)을 만났다. [29]
여씨춘추에는 우(禹)가 인물을 구하려고 동쪽으로 갔다는 지명에 조곡 (鳥谷), 청구지향 (青丘之鄉)이란 이름이 있다. 서주 창립 초기 대회를 설명한 일주서 왕회해 에도 청구란 지명이 실렸다. 그 곳에 말갈 사람들이 살았다. 남조를 통일한 수나라가 돌궐 가한 막사에서 고구려 사신을 만났다. 그 사연을 배구가 답하기를 고구려본 고죽국 (高麗本 孤竹國)이라 했다. 고구려와 말갈병이 수문제의 아들이 이끌던 수나라 군사를 임유관 (臨渝關)에서 크게 격파 했다. [30] 고죽국이 있던 곳을 요서 임유 (遼西臨俞)라 했다. 낭랑이란 말갈어(多語, tartar language; 胡)라 했다. 청구산(靑丘山)에서 흘러 나오는 맑은 물소리를 사음한 글자가 낭랑(樂浪)이다. [31]
그 지역을 흐르는 여울을 쌍건하 역수 성수등 여러 글자로 기록 했다. 가람(伽藍, 神名)이란 명사가 그곳에서 나타났다. 그 시절에는 서왕모 (西王母)를 모시는 토속 신앙과 초창기 도교인 신선 (神仙. 僊)이 되기를 원하는 풍조가 흥행 했다. [32] 가라(加羅)와 신라는 원시불교 발생지와 깊은 관련이 있다.
불(佛) 부따( Buddha) 하는 어음은 “밝다, 환하다”는 뜻의 고조선 사람들(斯)이 쓰던 말이다. 예수(Jesus)란 예맥족(濊貊, 斯)의 수장 환웅(桓雄)에서 따온 이름인듯 하다.
한인(桓因)을 유가에서는 유인씨(有因氏) 불가에서는 제석(帝釋)라 한다. 세기경 (世記經)에 환인 (桓因)이 밝은 빛 (light)의 종주권을 놓고 제석(帝釋)과 다투었다는 기록이 있다.
천축국(天竺國) 인도 (印度)의 어원
원시불교가 남 아시아 대륙에 퍼져,불교국 지역을 여러 이름으로 표기 했다. 천축국은 신독(身毒) 현두(賢豆) 인도(印度) 또는 월 (月)이라는 둥 이름이 분분하다. [33] 산해경에 조선의 지도자를 천독 (天毒)이라 한다. 필자는 규를 든 유목민의 지도자(𣫴)란 글자를 바꾸었다고 풀이 했다.[34] 인도에서 수지(隨地)란 곳을 특별한 나라로 다루었다. [35] 그곳 사람들이 천축국을 좋은 뜻으로 부른이름이 인도다. 인도를 월月이라 부르는 이유는 달의 형상이 여럿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그 하나가 사(斯)다. 모든 새상만사가 쉬지 않고 돌고 돌아 다시 나타난다. 이 사, 천할 시(斯) 라고 읽는 글자에는 “쪼개다. 떠나다. 희다” 는 뜻이 있다. 인도 지도자에게는 수지 사람들이 믿던 종교가 세롭다 하여 무위지교 미신 (無為之教彌新) 이라 했다. 인죽(印竹)이란 글자도 있다. 운남성에서 올라간 수지 사람들은 새로 정착한 곳을 좋은 뜻으로 천부인 (印)이 도착한 (度; reach to. deliver to) 곳이라 인도라 했다.
인도를 월이라 부르는 이유는 달의 형상이 여럿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모든 새상만사가 쉬지 않고 돌고 돌아 나타난다. 이 사, 천할 시(斯) 라고 읽는 글자에는 “희(白, 해, sun. 解)다” 는 뜻이 있다. 고조선의 수도 평양이 오늘의 해지(解池)연안 운성시다. 그 호수(salt water lake)를 씨애 치(Xiechi)라고 읽는다.
신구당서와 통전에 나오는 부도경 또는 고승전은 대당서역기에서 원명을 밝혔다. 그 원음을 사용하여 대루탄경 (大樓炭經) 이란 이름으로 첫 불교 경전을 작성 했다. 한국 고대어가 대루탄경과 불교경전에 살아 있다.
대루탄경(大樓炭經) 이란 먹칠한 큰 사원(Large temple painted with charcoal graffiti)이란 뜻이다. 대당서역기에는 루탄(樓炭) 이란 글자가 없다. 패허가 된 곳을 진흙이 주춧돌을 덮은 곳 (涅疊般那地) 또는 회탄 (灰炭) 또는 (塗炭)이라 했다.[36] 그 곳에서 자씨(茲氏), 즉 부처님이 나타났다. 현장은 황제 헌원 시절 순임금이 구토를 개발한 지도를 만들어 바치(虞舜之納地圖)던 시절에 이미 자씨가 내려 왔다 (自茲已降) 고 했다.[37] 산서성 분양시 (汾陽市) 를 자씨읍(茲氏邑)이라 한다. 도가 경전에는 황제 헌원이 청구에서 자부선인으로 부터 삼황내문 (三皇內文) 을 배웠다는 기록이 있다.[38] 이렇게 단군조선의 발생지에 관련된 사연이 황로 사상으로 바뀌어 수지에 이르러 원시불교로 나타났다. 금미달에 있던 큰 궁정 건물을 떠났다는 뜻이 맹자 이루 상하
(離婁上. 離婁下)편은 궁궐을 떠나 남 북으로 갔다는 뜻이다.
부여의 큰 궁정건물에 살던 사람을 해모수(解慕漱), 부루(夫婁 扶婁)태자라 한다. 어음이 유대인을 뜻한 히부루(Hebrew )와 비슷하다. 그 곳에서 해안으로 내려온 사람을 궁예 시조 박혁거세라 했다.
불경 비구 梵語 梵文 등등 불교 경전에 나오는 많은 고유명사 또는 형용사는 왕검조선과 관계 있는 사연들을 가차전주한 글자다. 고조선 땅이었던 진(晋)나라의 범선자 (范宣子) 는 洪範의 범자에서 성씨를 택했다고 한다. 같은 어음의 범(范,範)씨가 남긴 글자가 범문(梵文) 이라고 본다. 운남성에서 불교 스님이 쓰던 부적(符籍)의 글자와 비슷한 문자가 있다. 홍산문화권 전욱고양씨가 남겼다는 록도(綠圖, 錄圖)란 글자의 변형이 범문(梵文)이란 뜻이다. 주 무왕을 도았던 강태공, 태공망이 강성 여씨(姓姜, 氏呂)로 산서성 사람이다. 산서성 진양을 지나는 분수(汾水)로 이어지는 강수(降水)를 여러 글자로 썼다.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이 힌옷(白)을 입어 백적(白狄, 白翟) 또는 북적 (北狄)이라 했다. 강수(降水)연안이 백의민족(白衣民族)민족 시원이다. [39]
산서성 강수(降水)를 가차전주한 이름이 강가(ganga,강언덕)를 음차한 강기스 강 (Ganges River) 그사람들의 성수(聖水)다. 그곳 사람들 또한 힌(白)색을 선호 한다.
무시공(無是公)에서 무우왕 (無憂王)으로: 사마상여는 “無是公, 無是人也,明天子之義” 라는 문구를 남겼다. 무시공은 현명한 천자란 뜻이다. 무시공 (無是; shì, zhiɛ̌, xi)이 서역전에 나오는 무우왕 (無憂王)과 도덕경의 무위(無爲)모두 같은 뜻이다.
불학대전에는 천축국을 신독(身毒)국이라 했다. 신독국에 가상인물 황제헌원 (軒轅)이 살았다. 산해경에 나온 천독 (天毒)이 다스리던 조선을 신독국 이라 했다. 천독이 북쪽에서 상나라를 괴롭 혔다. 상 무정이 도깨비가 사는 북쪽지역 괴방(高宗伐鬼方)을 정벌 했다. 황제와 싸웠다는 치우 蚩尤, 천왕을 도깨비로 묘사 한다. 한 무제 때에 촉국의 상인이 인도 동북부에 있었다. 남월왕 조타 (趙他南越王),즉 남조의 지도자는 황옥에 살면서 천독, 즉 단군왕검이 다스리는 곳이란 뜻의 치우천왕이 들었던 둑기 (纛)를 달았다. 조(趙) 씨는 까마귀 오(烏)자에서, 새 조자 (鳥)로, 다시 나라 조자로 바뀌었다. 고조선의 영역이었던 삼서성 에서 나왔다.
한무제 (漢武帝) 당시 서역을 다녀온 장건(張騫.?~BC 114) 보다 앞서 촉국 상인이 차마고도를 거쳐 인도 동북부, 신독국(乾毒,身毒國) 즉 곤륜 (昆崙)이 사는 인도 동북부 수미산 (須彌山)이 있는 천축국(天竺國)과 교류 했었다. 소미로 (蘇迷盧) 또는 수미 (蘇迷盧山唐言妙高山。舊曰須彌) 란 글자는 중원에서 신선 (神僊) 이라고 부르던 단군신화를 전주한 글자다.
모름지기 수, 수염 수(須) 라고 읽는 글자는 유목민을 뜻한다. 그 지도자를 수미 (須彌山)라 했다. 곤륜과 같은 뜻이다. 수미산 (須彌山)이 곤륜산이 (崑崙山)이다. 뫼산자와 사람인자를 겸하여 여러 글자로 기록에 나타난다. 곤륜이란 글자가 나타나는 지역은; 산서성 분수 여안, 칸 탱그리가 있는 중앙 아시아, 그리고 운남성 서쪽에 있다. 수서에 나오는 곤륜인(昆侖人) 이 당시 토속 신앙을 주관하던 단군이라고 본다
강희자전에 여러 글자로 쓰던 천축국 어원을 설명 했다. 또한 인도(印度)의 인자는
가라에서 얻어 왔다 印特伽” 란 설명이 있다. 흰두교(Hinduism)란 이름 자제가 외래어 (exonym) 라 한다. 범어(梵語; Sanskrit)란 장승을 세워 놓은 신앙촌 (因地隨人) 에서 나타난 천부인(天符印; 原始垂則) 47자, 유범천 품승(由梵天稟承)이라 했다. [40] 즉 여러 글자로 기록되던 가야(加耶, 伽倻 가라(加羅, 伽羅, 迦羅, 柯羅) 사람들이 천부인을 보관 하던 곳집(伽藍堂)에서 쓰던 글자를 이어 받았다.
현명한 지도자란 뜻의 현두(賢豆)가 힌두(Hindhu)다. 노자(老子)란 뜻이다. 천축국(天竺國)이란 중원 사람들이 사용한 이름이다. 어원은 글자 속에 있어야 한다. 광아에 축은 죽(《廣雅》竺,竹也) 이라 했다. 천축국(天竺國)이란 하늘(天)을 떠밭이 (竺)는 나라(國)란 뜻이다. 시와 가무 (詩歌舞)를 즐기던 운남성에 살던 노인들이 높은 곳을 찾아 올라가 고조선 토속신앙과 풍속을 전했다. 예맥족 가라(伽羅) 사람들이 쓰던 글자 시문(斯文)으로 편술 되었던 시서역경 (詩書易經) 또한 천축국에 올라 갔다.
신앙촌
시킴(Sikkim, 斯金) 왕국 문양
고조선 문자 천부인(天符印):
환인의 아들 환웅이 천부인(天符印)을 받아들고 비천한 사람들(예맥, 斯 扶餘)이 사는 땅에 내려 왔다. 천부인(天符印)이 천부경이다. 가림토(加臨土, 加臨多) 문자의 어근은 가림(분별 divide )하는 한국어를 사음한 글자. 백제땅 부여에 가림성(扶餘 加林城)이 있었다. [41] 가림토(加臨土) 란 부여의 발생지인 금미달 가야국을 뜻했다.
불경 기록에 거루/가라선인 (Khara; 佉盧. 佉樓仙人) 이 창힐 이전에 글자를 만들어 썼다는 기록이 있다. 위진 혼란기에 금미달 지역에 있던 위나라 역사서 (蓋魏國之史書)가 발굴 되었다. 모두 옷칠로 그려진 과두자 (漆書皆 科斗字)로 적혔다. 과두조전(科斗烏篆) 자가 거루 선인 (佉樓仙人)이 쓰던 고조선 문자다.
주 선왕 시절에 산서성 북쪽 태원에서 중산보 (仲山父)가 잡혀와 구전해 오던 예기를 기록으로 남겼다. 이를 전(篆)자라 한다.
금미달 사람들이 남북으로 흐터져 나갔다. 만주로 올라 갔다. 발해국(渤海, 震國)에서 당나라에 보낸 “가림토 문자로된 서한”을 이태백 (701년 ~ 762년)이 풀이 했다는 기록이 있다. 환단고기 초본이 만주땅에서 나타났다. 그에 가림토(加臨土, 加臨多) 문자가 실렸다.
고조선 사람들(예맥, 斯 扶餘)이 운남성을 거처 원시불교 발생지에 이르렀다. 해부루와 음이 같은 “Hebrew alphabet” 과도 관계가 있다고 본다.
신앙촌(는)에서 쓰던 글자가 범어(梵語)는 범어 (梵語)란 장승을 세워 놓은 신앙촌 (因地隨人) 에서 나타난 천부인 (天符印; 原始垂則) 47자다. 유범천 품승 (由梵天稟承)이라 했다. [42] 즉 곳집에서 쓰던 언어를 이어 받았다. 이에서 남방불교국 지나 여러나라의 표음문자로 쓰이고 있다.
천부경에 실린 글자와 내용(無始 無終)이 도덕경과 불가 기록에 보인다.
푸를 청자를 달월(月) 또는 붉을 단 (丹)의 상형로 적기도 한다. 달월(月)을 근간으로 하는 청(青)자는 청구(靑丘)에 들어온 불교에서 유래된 글자다.
불교 경전에는 옛적 예맥족이 쓰던 어음이 상형글자로 실려 있다. 그 한 예가 인도에 관한 이름이다. 축을 독(竺音篤) 이라고 읽었고 가야가 있었다는 사실을 무시 했다. [43]
서진 시대에 나타난 루탄경 (樓炭經)에 실린 옛적 불교식 이름(舊曰,舊云) 을 현장이 토를 달아 당나라 언어 (唐言)로 풀이 했다.[44] 부도(浮屠)란 글자는 없고, 유목민의 지도자를 뜻하는 한(韓, Kahan, Khan)을 한나라 한(漢)자 로, 노자 도덕경과 도가에서 쓰는 문구를 인용한 글자를 이노 (李老)와 한자 (韓子曰) 라 했다.[45]
불경에 많이 나오는 수미(須彌) 도솔(兜率) 하는 글자는 옛적 변역 당시의 사음자라고 설명하느라 단 한번씩 나타났다.[46] 수미산(舊曰須彌)을 옛적에 묘고산 (唐言妙高山) 이라 부르던 높은 산이라 하고, 동서남북 네곳을 통치하며 수미를 보호하는 자를 사천왕 (四天王) 이라 했다. 금은동철륜왕(輪王)이라 이름했다. 금륜왕 (金輪王)이 사방(四方)을 모두 다스린다.[47] 그 곳에 전륜성왕(輪王之苑囿)이 기거 했다. 인도 동북 쪽 차를 많이 생산 하는 지역(漢荼城)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48]
도솔타(兜率他) 또는 도설술이란 용어는 [제일 높은 미로(迷路 Maze)가 되살아 났다는 산(蘇迷盧山)에서 친히 묘상을 보았다]는 뜻이 라고 했다. 도솔을 수미 (兜率他) 라 했다. 제일 높은 산에 다시 나타났다는 묘상이란 표현은 [요순시절에 삼묘 환두 (驩兜)를 북쪽 공공국에 있는 항산에 귀양을 보냈던 무리가 나타났다]는 뜻이다. 아라한(阿羅漢, 阿羅呵,阿羅呵) 이라고 기록된 인물 설명에 나온다.
축(筑)을 오를 섭(拾)이라 했다. 운남성으로 내려 갔던 노인들이 [다시 되돌아 올라 와서 쌓았(筑)다]는 뜻이다. 인도를 뜻한 축을 독(篤) 이라고도 발음했다. 쌓을 축(筑) 자는 쟁(箏)과 같은 현악기, 즉 가야금을 뜻했다. 운남성에서 선인(仙人) 의 경지에 이른 예맥족 노인(老子, 道士)들이 높은 지역에 올라가서 현지인에게 토속 신앙을 소개 했다. 당시 그들에게는 대(竹)로 만든 관악기와 현악기 “筑, 竺”가 필수품이 었다. [49]
자객 형가와 같이 갔던 고점리(髙漸離)가 현악기를 잘 다루어 이를 선격축(善擊筑) 이라 했다. [50] 변진전에는 철전(명도전)을 사용 하고 축과 비슷한 (似筑) 가야금이 있다. 전국시대 산동반도 제 나라 영역에서는 “鼓瑟、擊筑、彈琴” 풍속이 있었다. [51]
네 글자 “笁竺 筑築” 모두 대, 고죽과 관계가 있다. 첫 글자는 퉁소의 혀를 뜻한 글자다. 어음 죽 또한 ‘축’으로 혼용 했다.[52] 현악기를 뜻한 축(筑)자에 나무 목(築)을 더한 글자 와 같다고 한다.
불교 스님이 쓰고 다녔던 삿갓(笠)에는 고죽군을 뜻한 대나무 죽 (竹)자가 있다. 화살(arrow)을 천죽(箭,天竹也)이라 했다. 대(竹)로 만든 삿갓을 쓴 노인들이 높고 높은 곳에 올라가 살던 천죽국(天竹國)이 천축국 (天竺國) 으로 기록 되었다. [53]
상(商 殷)나라를 부흥 시킨[부열(傅說;夫餘)의 후손이 가야금을 들고 운남성에서 서쪽 으로 올라가 하늘을 높히 떠 바치(筑)는 나라를 만들었다]는 뜻이 천축국 이다. 부열 (傅說)란 어음이 예맥족이 새운 부여(夫餘)의 어원이라 했다. [54]
사기 은(殷) 본기에 실린 “是時說為胥靡,筑於傅險” 문구를[죄인으로 부암성을 쌓던 사람] 이라 한다. 이 문구는 [남루한 옷을 입고 부암에서 거문고와 같은 현악기(筑) 줄을 손으로 뜯고 있던 사람] 이란 뜻이다. 고조선 노인들이 쓰던 악기에서 유래된 이름이 천축국이다. 부열(傅說)이 고조선 영역(隱于虞)에 은거 했다.
끝
원시불교의 중원 전래에 나타난 신라와 가라
히말리아 산맥 동쪽 수지(隨地)에 정착한 원시 불교는 오랜 시간동안 여러 갈래로 분파되어 넖은 지역에 나타났다. [55] 인도 서부에서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지역에서는 그곳에 번성 했던 종교를 믿는 사람들과 종교전쟁(宗敎戰爭)이 발생하여 많은 불교 신자가 죽었다. 이 현상을 시라(尸羅)라 했다. 신라의 어원인 시라(斯羅)가 나타났다.
원시 불교가 중원에 전래된 시기에는 몇가지 의견이 있다. 불교는 발생지에서 세 길로 중원에 이르렀다. 진나라 때에 사문 실리방 등(秦時沙門室利房等至)이 도착 했다. 원시 불교 발상지에서 나타난 노자(老子)의 제자들을 사문(沙門, shaman, 道士)이라 했다. [56]
진시황이 이상히 여겨 감옥에 가두었다. 밤에 금인(金人)이 나타나 문을 부수고 도망 갔다. 중원 세력은 제일 서쪽에 있던 진(秦)나라의 영역은 사천성을 포함 했다.
그 곳에서 살던 사마상여(司馬相如, 기원전 179년 ~ 기원전 117년)에 방불(仿佛)이란 글자가 있다. 공자는 서역에 성인이 있다고 했지만 , 그 성인이 부처님을 뜻한지는 불명 하다. 사마천이 홍범 구주 를 구등(九等)이라고 기록 했다. 등(等)자에 불교가 중원에 나타났다. 진시황 이전인 연소양왕 (燕 昭襄王: 재위 : 기원전 311년 ~ 기원전 279년) 시절에 천독국 도술인 시라(尸羅)가 금미달 지역 연도 (燕都) 에 불상을 싣고 왔다.[57] 그때는 이미 마지막 단군이 수도 궁홀산(弓忽山) 혹 방홀산 금미달 (今彌達)을 떠났다. 아사달에 돌아가 산신이 된 선친의 위업을 이어 받으려던 단군을 미륵 (彌勒)이라 했다. 안문관을 지키던 왕이란 뜻에 안왕 (雁王) 또는 아왕(鵝王)이라 했다.
불경(佛經)은 전한 애제(哀帝; 기원전 7-기원전 1년) 때 중국에 도착 했다. 전한이 통치력을 잃었다. [58] 일설에는 후한 초기 명제 (明帝, 58~75년) 때에 불경이 전래 되었다고 한다. 불경 번역 (釋:解)을 위한 자전 이아 (爾雅)가 나타났다. 중앙 아시아 월지(月支) 사신 이존 (伊存)이 부도경 (浮屠經) 을 구두로 전했다. 을지를 밝거라 (薄佉羅)라 했다. 달빛이 비쳐 밝은 나라란 어음을 훈역한 글자다. 불(佛)이란 횃불을 든 사람이란 뜻이다. 육상 통상로 (通商路. Silkroad)를 따라 도술인 시라(尸羅)가 금미달에 왔다고 본다.
현장의 대당 서역기에 [고조선 어음을 가차전주한 글자] 가 많이 실렸다. 그의 제자가 남긴 현응 음의(玄應意義) 와 고승전등 여러 불가 기록을 종합해 보면 예맥족의 어음이 분명 하다. 중원사람들은 발해만 북쪽을 먼 낙원이라 하여 요녕 (遼寧)라 불렀고,산동성 사람들은 공자때 부터 바다 건너에 낙원이 있다고 믿었다. 그들이 산동 반도에서 황해를 거너 강화도에 도착 했다. 호가 산다(州胡)고 했던 강화도 마니(단군 샤만)산 유적을 남긴 사람들이 물건너, 묘향산(妙香山)에 이르렀다. 스님 [가람 (伽藍, 神名) 이 분향을 해서 이상한 향냄세가 나는 산]이란 뜻이다. 봉산탈춤 변한양반 (弁韓兩班)에 남아 있다. 한반도 남쪽으로 내려가 내륙에 가야국이 나타났다.
금미달을 떠난 삼한의 후손이 해안을 따라 동인도에 이르어 미륵불이 나타났다. 운남성을 통해 올라갔던 지역은 지상 낙원(Shangri-la)이었다. 운남성에서 도덕경이 완성 되었다. 차마고도를 통한 불교의 중원 전래는 뚜렷한 기록이 없다. 금미달에서 해안으로 내려온 삼한의 후손들이 해안을 따라 스리란카에 이르러 남방 불교를 중원에 알렸다. 남방불교 전래는 뒤에 다루기로 한다.
불가 기록에서는 가야 (加耶, ought to go, 去)란 어음을 어근으로 하는 여러 글자가 나타났다. 가야 (加耶: 加邪 婀娜 伽倻)란 이름자가 북쪽으로 올라가 황제가 자부선인을 만났다는 청구(靑丘)가 가람(伽藍 神名)의 출원지다. 그곳에 있던 가야국 (加耶國)을 떠난 사람이 산신이 되었다. 즉 마지막 단군이 조용히 기거 하던 곳을 가람이라 했다.
글자를 만들었다는 거루(佉盧)의 거(佉)자는 거(祛)자와 같은 뜻이다. 두손 모아 기도 하러 가버린 사람 이란 뜻 글자다. 한국어 “가버린 사람”이란 뜻이 있다. 불가 내전 (內典)에 실린 내용을 인용하여 밝거라(薄佉羅)는, 즉 달 밝게 비추는 곳, 빛 월지야 (卽月支也)라 했다. [59] 밝은 새상을 찾아 기도하는 불가에서 사용한 어음으로 옛적에 우리 선조가 쓰던 말이다.
불가에서 사원을 가람 신명(伽藍 神名) 이라 했다. 람전(藍田)에 있던 큰 누각을 떠나간 사람이란 뜻 글자가 가람 (伽藍)이다. 람전(藍田)에서 청출어람 (靑出於藍), 즉 “새로운 사상이 옛적 것보다 우수하다” 란 사자성어가 나타 났다. [60] 황제가 자부선인을 만났다 고 하는 청구(靑丘, 青丘)다. 그 깊은 사연이 두 다른 글자로 쓰는 푸를 청(靑, 青)자와, 선인이 변해 하늘 나라로 올라 갔다는 뜻의 참진(眞 真: 僊人變形而登天也)자에 있다. 별 진(辰: 伸也, 申:神也)자와 같은 뜻이 있다. 한국에서는 붉을 단 (丹), 중국에서는 달월(月)을 바탕으로 하는 형태가 다른 글자를 쓰고 있다. 달월(月)을 바탕으로 하는 청(青)자는 불교와 관계가 깊다.
청구(靑丘, 青丘)가 삼한의 발원지다. 그 곳이 가야와 신라의 발생지다. 불교와 깊은 관게가 있는 두나라 이름자는 여러 글자로 적었다. 실라(悉羅)가 또한 본보기다. 당 장열의 양사공기(梁四公記)에 실라국(失羅國)이 있다. [61]
원시 불교가 중앙 아시아 일대 시라국(斯羅國)이 있던 씰크로드를 통해 금미달 지역 연나라 수도에 이르렀다. 이 통로는 오랫동안 이용 되었다. 석 탈해(昔脫解)의 선조가 중앙아시아에서 금미달에 왔다. 예 석(昔) 이라고 읽는 글자에는 서(西)쪽 이란 뜻이 있다. 석 탈해(昔脫解, 解脫)란 서쪽에서 온 스님이란 뜻이다.
왜국 동북 일천 여리에 있던 여러 글자로 기록한 지역 사람이라 했다. [62] 금미달 독룡(毒龍, 須臾)이 사는 옥지(玉池)가 있는 곳에서 가락국의 시조 수로왕(首露王)이 나타났다. [63] 삼감(三監) 삼경(三卿)이 살았다는 곳, 약으로도 쓰던 람사(藍蛇)가 살았다는 곳에서 가람(伽藍)이란 글자가 나타 났다. 진수는 삼감을 삼한으로 바꾸었다. 금미달 지역이 여러 글자로 기록 하는 변한(弁韓; 變汙; 弁, 示, 卞)땅 이다. [64] 금미달 (今彌達) 궁홀산 (弓忽山) 요새를 임유관이라 했다.
진시황제가 군으로 바꾸어 삼감(三監)이 다스렸다는 금미달 (今彌達)에서 발해만 연안 산동성으로 내려와 미추홀 (彌鄒忽), 비미호(卑彌呼) 등 미(彌) 자가 들어간 여러 나라가 나타났다. 석탈해(昔脫解)가 신라 가까이 있던 휴인 (休忍, 百濟及薛羅)을 정벌하고 왕이 되어 벌휴 이사금 (伐休泥師今, ?~196년) 이라 했다. 신라 시조 궁예 (弓裔) 박혁거세 거서간 (居西干)이라 했다. 서쪽 궁홀산 (弓忽山)에 살던 지도자의 후예란 뜻이다. 신라2대 왕 또한 서쪽에서 왔다 하여 남해 거서간 (南解居西干) 이라 했다. 통일 신라시대에는 “마야(엄Maya, 摩耶, 麻耶) 부인 운제 용춘을 용수 (龍春一云龍樹)라 하는 등” 불교에 나타난 글자가 많이 실렸다.
신라 백제 가라 왜의 발생지는 산동성 해안이다. 진서에 백제 설라 휴인 여러 나라(百濟, 薛羅, 休忍等諸國)가 있던 곳이다. 고조선 사람들이 살던 마을을 지나는 여울을 사수 (斯水)라 했다. 산동성 미산호 (大澤. 微山湖) 연안 사구 (沙丘)에서 진시황이 급사 했다. 사물현(史勿縣)을 지나는 여울을 사수 또는 사천이라 했다. 그 일대에 가야국 (加耶國) 이 있었다. [65] 광개토대왕이 정벌한 지역이다. 그로 부터 삼한의 후손들이 뱃길로 동남아 해안을 지나 인도 남쪽 스리란카에 이르렀다.
루탄경, 대당서역기, 고승전 등, 불교 경전에는 옛적 고조선어를 가차 전주한 글자가 많이 있다. 그러한 증거를 좀더 보충하여 간략히 적어 본다.
대당서여역기 에는 뜬금 없이 명나라 때(大明永樂; 1405) 인도양을 항해 했던 정화 (鄭和) 예기가 실렸다.[66] 진귀한 보물이 많이 나는 섬나라 스리랑카(Sri Lanka 三郞) 를 돌아 왔다. 가야국 스님들이 그 섬을 중심으로 해상 무역을 했다. 그지역 언어 풍속 문화를 영어로 “Sinhala, Sinhalese” 라 한다. 대상 승가라(僧伽羅)의 영어 사음자다. 그 언어를 “Dravidian language” 즉 [어디에서 왔는지 뿌리를 알수 없는 언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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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국자 앞에 붙은 가라(伽羅)는 타가라(Tagara; 多伽羅) 란 향목 을 간략해서 적은 사음자라 한다. 이 나무 多伽羅之略(다 가라; every one leave),香木名 태운 냄새를 뜻한 글자다. 건내보라국 (建那補羅國) 사람들이 나가족(Naga people) 이 되었다. 인도 동북부 에 여러 군락을 이루고 산다. 이에서 뱅갈만 (Bay of Bengal)이란 이름이 나타났다. [67]
현장이 다녀온 여러 곳에 가라국이 있었다. 이를 무우왕 (無憂王), 즉 [그위에는 아무도 없는 최고의 왕]이 다스렸다. 루탄경에 진단(震旦), 불어비구 그산심요 (佛語比丘. 其山甚樂)란 문구가 있다. [68]
아사달을 비구산(比丘山)이라 했다: 아사달(阿斯達, Asadal, Asadal) 은 아침 햇살이 비친 들이란 뜻아다. 음과 뜻을 이를 이리저리 바꾸어 적은 글자가 비구 (比丘)다. 아사달에 큰 사원이 있어 그 건물에 수도자가 많이 있었다. 그 곳에 살던 사람들을 비구니(比丘尼) 라 했다. 고조선의 수도에 있던 큰 사원을 불에 탄 숱으로 낙서를 했다는 뜻이 대루탄 (大樓炭) 이다. 고조선의 수도 아사달에 얽힌 사연이 경(經)에 실렸다. 불교경전에는 빛을 뜻한 사음자와 훈역된 글가 많이 보인다.
아사달이 점령 당한 상황에서 아수라장(阿修羅場)이란 용어가 생겼다.[69] 인도 설화 에는 아수라(Asura)라는 악한 귀신무리로 나타난다. 히말리아, 힌두, 인더스강, 하는 어음이 원시 불교가 번성했던 지역에 남아 있다.
원시불교의 발생지 수지(隨地): 수지란 장승을 세워 놓은 지역이란 뜻이다.
진수는 임아국이 있던 곳을 타지 (墮地, 他地)라 했다. 그가 글자를 바꾸었다. 수지(隨地)의 뜻은 육서 상형의 풀이에 있다. 상형(象形)을 수체힐굴 (隨體詰詘) 이라, 즉 서낭신이 길한 예기를 하려는 모양의 글자와 같이 그럴듯 하게 그려 놓은 글자가 “日. 月” 이라 했다.[70] 진수가 남긴 고구려 전에는 “隨山谷以為居,食澗水” 란 문구가 있다. 고구려 사람들은 서낭을 세워 놓은 산간지역에서 맑은 여울물을 마시며 살았다는 뜻이다. 그는 고구려 개천절에 이리저리 돌려 수신 (隧神)이란 표현을 했다. 시경에 “無縱詭隨” 란 문구가 있다. 수체(隨體)에서 음이 같은 시신(屍身)을 염하는 수의 (壽衣) 가 나타났다.[71] 고죽국이 있던 금미달 오대산 계곡을 흐르는 여울에 불교와 관련된 호타(滹沱)란 글자를 만들 었다. 타(沱)자에는 불교를 믿는 이방인 이란 뜻이 있다. 불교의 성역인 산서성 대현 오대산 계곡을 흐르는 여울을 치수(治水) 성수(聖水), 쌍간하(桑乾河), 역수(易水) 호타하(滹沱河)라 했다. 도술인 시라(尸羅)가 온 곳이다.
남북조를 통일한 불교국 수(隋)나라 또한 수지(隨地)에서 유래된 글자다.
송고승전 (宋高僧傳)에서 같은 수(隨)자를 썼다. 구당서에는 서역 빙낙주 (馮洛州)로 융과 호가 같이 사는 목축하기 좋은 곳으로, 신당서 에는 “隨地之宜”로, 수경주에는 황하의 상류에 있던 지명이라 했다.[72] 통전에는 진수의 임아국을 인용했다. 출처를 진송시 부도경(晉 宋時浮圖經云) 이라 하고, 중원에서 봉선(封禪) 하는 곳을 타지 (墮地)라 했다. 형태는 비슷하고 두 글자에 땅(隨 墮地,Tan)이란 글자를 붙였다.[73]
범서(梵書)란 글자의 기원: 산서성의 실권자였던 범선자(范宣子)가 그를 찾아온 손님에게 <산서성 사람들은 세록(世祿,가계의 혈통을 기록한 책자) 를 갖고 있다>고 했다. 범(范)선자의 선조들이 지켜오던 가치관을 히말리아 산맥 수지에 전하여 글로 남겼다. 그곳에 사용하던 글자를 음이 같은 범서 (梵書)라 했다. 당 현종이 시문 표제를 제범서 (題梵書)라 했다. 모두 홍범(鴻範)의 범자를 사음한 글자다. 해초가 먼 바닷길을 배를 타고 갔다. 돝을 달고 바람을 이용하여 멀리가는 배를 범선(帆船)이라 한다.
고전을 종합해 보면 원시불교의 발생지는 히말라야 산맥 동쪽 운남성과의 경계 지역이 었다. 서주의 경기 지역에 남아 있던 고조선 사람들이 사천분지 익주(益州, 古梁州) 를 지나 운남성에 정착 했다. 그들이 단군왕검 백익을 살해한 융우 (夏禹氏) 의 추종자들이 세운 하 나라의 시조를 신성시 하여 옛적에 우왕 이란 뜻에서 석우(昔禹)라 했다.[74]
이를 큰 나무위에 돌로 만든 소 우(石牛)의 형상이 있다고 기록 했다.[75] 인도판 하루방을 석우(石牛)라 했다. 인도에서 소를 신성시 하는 (Holy cow)풍속이 나타났다. 같은 뜻에 직계 후손이란 뜻의 사자(嗣子)에서 사자국(獅子國)이란 글자가 나타났다. 현두(賢頭)
힌머리 (老子)하는 원시불교 발생과 관련된 어음이 힌두교 히말라야, 인더스강, 부탄, 하는 이름으로 옛 시킴 (Sikkim,斯金) 왕국 지역에 남아 있다.
그로부터 인더스강을 따라 서쪽 파키스탄 영역에 번창 했던 문명과 충돌이 생겨 많은 희생자가 나타났다. 이를 시신이 여기저기 흐터졌다하여 시라(尸羅 斯羅)라 했다. 삼극지 왜인전에 시라(斯羅)가 중앙 아시아 어라 동북 강건너(於羅東北) 안식국 (斯羅國屬安息) 가까이에 있었다. 그 일대에 월씨국과 목천자가 찾아 갔던 서왕무 (西王母)가 있었다. [76] 이 통로를 따라 천축국 도인 시라(尸羅)가 금미달에 도착 했다.
원시 불교의 전래도
Buddhist Expansion – History of Buddhism – Wikipedia
끝
지나 (支那)의 어원:
중국을 뜻한 글자라고 풀이 하는 진단(震旦 Cina)이 루탄경에서 나타났다. 여러글자(震旦 震旦 真丹 神丹)로 적은 동쪽 중국은 천한 땅(若所謂斯坦)을 옳은 땅(於義為地)이라 했다. [77] 천할 시(斯:其 斤) 자는 정의를 위해 도끼를 든 사람이란 뜻이다. 숙진(肅慎)씨는 진(慎, 辰, 晨)을 공경한다는 뜻으로 고조선 (朝鮮)의 대명사다. 총령 동쪽은 모두 삼신(辰)을 모시는 고조선 사람들(斯, 肅慎,夫餘)이 살았다는 뜻이다. 그곳에서 동쪽으로 옮겨온 한 부류가 내몽고 남쪽 산서성에서 고조선이 나타났다. 그곳에서 지도자 백익(伯益)을 잃고 사천- 운남성을 지나 원시불교 발생지에 이르렀다.
사마상여(司馬相如: 179년 ~BC 117년) 시절에 사천성 (益州)에 살던 백익의 후손들이 차마고도를 따라 천축국과 교류를 했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길을 따라 단군왕검의 가르침이 천축국에 전도 되었다. 운남성 산간 지역에 사는 소수민족은 아직도 도교와 토속신앙을 믿고 있다. 청(淸)나라 말기에 위원 (魏源, 1794년 ~ 1857년)이 저술한 해국도지(海國圖志)에는 지나(支那 와 至那)가 여러 곳에 보인다.
그는 이태리 선교사가 만든 만국지도 내용을 인용하여 현지음으로 적은 태국을 섬라 (暹羅)라 했다. [78] 천축국에서 해안을 따라 태국을 지나 월남에 이르는 방대한 지역을 지나(支那, Sayam)라고 했다. [79] 하노이의 역사서 대월사기 전서에 나타난 지나(支那)는 광동 광서 장족 자치구 (廣西壯族 自治區)와 운남성을 포함한 넓은 지역을 지나(支那)라 했다. [80] 남천축국 사람들은 지나(支那)를 [인도 에서는 사자국(師子國, 獅子國)의 동쪽, 중국 동남부 지명으로, 지도자를 천자 (支那天子)라] 했다. [81] 사자(嗣子), 즉 직계 후손 맏아들이 다스리던 나라란 뜻이다.
운남성에 남조(南詔 Nanzhao)를 세웠던 이족 (彝族, 夷族)은 당나라 세력을 물리치고 황금시대를 이루어 었다. 남조(南詔)의 지도자 고빙(高駢) 이 읊은 시문에 서역에서 중국을 (西域稱中國)시단이라고 부르던 글자가 “자아거 진단(自我居震旦), 즉 우리가 진단에 살때”란 문구로 실렸다. 최치원(崔致遠, 857년 ~ 908년)이 관여 했던 황소의난에 공을 세웠던 고빙(高駢)은 발해 고씨로 연나라 사람 이고 부친을 우후(虞候)라 한다. 단군왕검 백익의 혈통을 이어 받은 사람이란 뜻이다.
이를 대리국 (大理國)이라 한다. [82] 대리(大理)란 순임금 때 현명한 법관 고요 (皐陶. 咎繇)에게 붙였던 이름이다. [83] 고요의 아들이 백익(伯益) 이라 한다. 앞서 언급한 산서성의 범(凡伯, 范伯)씨는 홍범의 사음자요, 이윤 (彝倫)은 백익의 가름침이다. 이괘명문에는 백익을 뜻한 글자(彝)가 있다. 운남성에 있던 호수를, 백익 이기씨(伊耆氏)가 살던 마을을 지나던 이수 (伊水 洛水)와 음이 같은 이해(洱海, Erhai) 라 했다. 이원현 (洱源縣) 이라던 고을에 있는 도시를 대리 (大理)라고 이름 했다. 지나(支那 )의 출원지는 동남아 였다.
예부터 전해 오던 고요가 맡았던 대리 (皋陶為大理)란 어음과 뜻이 현 티뱃 불교의 지도자 “달라리라마 (Dalai Lama, taa-la’i bla-ma)란 칭호로 쓰이고 있다. 장족 자치주(廣西壯族) 산간지역에 인접해 있는 귀인이 사는 곳이란 뜻의 귀주 (貴州, Guizhou)를 (黔州)라 했다. 검수 왕검(王儉) 하는 어음, 검의 다른 사음자다. 그 들 이족 (彝族, 夷族)이 치우천왕의 후손이라 한다. 운남성을 정복 하지 못한 당 양귀비 안록산의 일화를 남긴 현종 이융기(唐玄宗 李隆基)이 읊은 시문 제범서(題梵書) 에 운남성 지도자를 비하 하여 지나제자 무언어 (支那弟子 無言語)라고 했다. [84] 영문본 “We Need Another Voice. Taoism to Zen Buddhism”을 준비 할때는 보이던 시문이 이번에는 찾을 수가 없다.
《題梵書》鶴立蛇形勢未休,五天文字鬼神愁。
支那弟子無言語,穿耳胡僧笑點頭。
당나라에 대적했던 운남성 세력, 남소(南詔)를 비하 해서 가지지자 지나(支那)라고 했다. [85] 서양 사람들이 해상로를 통에 동남아 불교국에 이르렀다. 그지역을 포함한 중국 남쪽 지역을 모두 지나(支那)로 기록 되었다. 패르샤 왕자가 코끼리가 많은 지나는 곳에 피란을 가서 꽃같은 신라 공주 화랑(Farang, 花娘, 源花)을 만났다. [86]동남아에 있던 미안마 진라 (滇羅)를 지나 (支那)로 적었다. 서역에서 진단(震旦)이라 하던 이름 중원을 거쳐 만주에 이르러 진국(辰韓者, 古之辰國) 이라고 부르던 신라의 옛 이름이 와전 되어 지나(支那即辰, 震, 神)라 했다.
일부가 서양에 알려져 총령 동쪽 전역을 동일한 국가로 풀이 했다.
현제 중국공산당 정부는 지나를 일본 사람들이 비하 하여 만든 이름이라 한다. 공식 명칭은 모택동이 붙였던 중화인민공화국 (中華人民共和國)을 간략한 중국이라 쓰고 대만섬은 장개석이 통치하는 국가로 인정 했다. 지나(支那)는 동남아를 뜻했다. 중앙- 아시아 사람들이 진단 또는 시탄 (震旦. 斯坦) 이라고 부르던 동쪽으로 옮겨와 운남성을 거쳐 원시불교 발생지와 동남아 전역에 흐터져 살았다.
여진의 어원: 만주 땅에 남아 있던 진한 (辰韓) 사람들이 세운 발해(渤海; 밝은 해가 뜨는 나라) 또한 동쪽 을 뜻한 진국(震國)이라 했다.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弓裔) 또한 마진(摩震)이라 했다.
송나라 사절단에 따라온서긍(徐兢, 1091년 ~ 1153년)의 고려도경 동문 유학(同文 儒學) 편에 진여국 (觀夫倭辰餘國或橫書 或左書 或結繩)이란 문구가 있다. 만주에 남아 있던 진국(辰國)사람들 진여(辰餘) 를 비하한 글자가 여진(女眞) 이다. 만주땅에 신라가 있었다는 기록이 글안국지에도 실렸다.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 마지막 황제를 애신각라 (愛新 覺羅) 부의(溥儀) 라고 했다. 신라(新羅)란 글자가 그의 성씨에 있다. 서역에서는 파미르고원 총령(蔥嶺) 동쪽 땅 진단 (震旦)을 해단(盍旦)이라 부르던 이름이 만주 (滿洲:Land of Man, 辰餘=女眞)와 한반도에 나타났다. 아침 단자는 신(旦當爲神) 을 뜻했다. 밝은 [해가 떠오르는 곳]이란 뜻에 발해라 했다. 동호(東胡)연맹의 한 부족이다.
유림열전에 黃老爹, 潘老爹, 모모 노부도(xx老爹道) 란 글자가 많이 실렸다. 모모(xx) 가문 또는 학파의 혈통을 뜻한 표현이다. 변노부도 (潘老爹道, 卜老爹道 老爹道)란 금미달 지역을 대표한 변한 사람들의 신앙 풍속을 뜻했다. 한유(韓愈)가 제사장에 끌려가는 여자를 읊은 글 제녀 노녀문 (祭女挐女文)에 가다 (阿爹), 가바 (阿八)란 글자가 보인다. 인신공양 (人身供養, 영어: human sacrifice)풍속을 그린 시문이다. 한국어의 사음자다. 아비 다(爹)자는 대대선조를 뜻한 상형자다. [87]
수미산(須彌山) 이 崑崙(昆侖山): 아직도 한국 방언에 “야 곤장 계시나” 이란 말이 있다. 곤륜이란 제일 높은 제사장이란 뜻으로, 미의 우두머리 (須彌)의 기능을 의역한 글자다. 수미산(須彌山) 또는 수메루 산, 메루산은 힌두교 및 불교의 세계관에서 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상상의 우두머리 산 또는 그가 사는 산] 이란 뜻으로 강화도의 마니산과 같은 뜻이다.
원시불교의 중원 전레: 삼국지 왜인전에 후한 초에 불경이 구전된 시기를 기원전 2년 (漢哀帝元壽元年)이라 했다. 후한 항제(桓帝 132년 ~ 168년)가 불당을 짖고 불교를 믿었다.[88] 정치 사회적 혼란에 휘말린 후한 시대에 토속신앙에 각종 신앙이 번창 했다.
옛 부터 알려진 통상로 힌두 쿠쉬 와 서역 통상로(Silk Road)를 통하여 원시 불교가 동서로 번져 나갔다. 이 때 중앙 아시아에 나타난 불교를 빛 경자 경교(景敎)라고 한다.
황건적이 도가(道家)의 탈을 쓰고 나타났다. 이러한 혼란기에 강남 광주(廣州)지역에 불교가 번창 했다. 현장의 서역기 또한 마등(摩騰)이 곤명도가 막혀(昆明道閉) 통하지 못하고 먼길을 돌아 낙양에 도착해서 불경을 석실에 보관 했다고 한다.[89]
원시불교는 차마고도를 따라 운남성으로 들어 와서 광주로 퍼저 갔다. 십육국춘추에 나타난다.[90] 불교 경전이 중원에 알려진, 후한 초기에 도교경전으로 알려진 노자 서승경 (老子西升經)은 노자가 운남성에서 서쪽 높은 지역으로 갔다. 왜인전에 노자가 호를 가르쳤다는 문구가 있다. 후한 (桓帝 劉志, 132년 ~ 168년)시대 산동성 사람으로 강남에 정착 했던 사람이 남긴 모자(牟子)에는 광동성 지역에는 불교가 성행 했다고 했다.[91] 운남성 서쪽에서 노자가 올라갔던 육로를 통해 중원에 전래되었다.
동진(東晉:317 ~ 420)시절에 해상로를 따라 중국 동해안에 확산 되었다. 발해만 연안에 있던 백제 신라 휴인(百濟及薛羅 休忍)이 남방불교에서 가라 (加羅)를 나라 이름으로 바뀌어 광개토대왕비에 나타났다. 가라(伽羅)란 어음은 불가에서는 [변두리 조용한 지역으로 갔다]는 뜻이라 했다. [92] 금미달 궁궐을 떠나 조용한 곳에서 산다는 신선 이름이라고 풀이한 가람(伽藍, 神名)이 와전 되어 나타난 글자다. 그곳에 살던 큰 물새 즉 기러기(水鳥,鵝之大者)를 가람조(伽藍鳥)라 했다. 금미달 지역 산서성 오대산 일대에 단군 사당으로 추정 되는 청량사(清涼寺)가 있던 산을 청량산 (清涼山) 이라 한다. 서늘할 량(涼) 이라고 읽는 글자는 서로 도아 준다는 뜻이 있다. 그 곳 청구(靑丘)에서 상형글자가 처음 나타났다. [93] 가라와 신라는 원시불교 발생지와 깊은 관련이 있다. 통일 신라 초기에 청량사 (清涼寺)라는 불교 사원이 나타났다.
남방불교가 한반도에 전래된 사연은 다음편에서 다루기로 한다. 기독교가 왕성 하기전에는 집집마다 고사를 지냈다. 마귀 할미(마고 麻姑, 서왕모, 삼신할머니) 와 관련이 있다는 몽고점 (蒙古點 Mongolian spots)이 한국인의 특징이다.
장수왕이 백제 개로왕의 한성을 점령한 시절에 한해 남방로가 개척 되어 그를 따라 남방 불교가 한반도 남단에 전래 되었다. 그 해상통로를 따라 해초가 다녀 와 남긴 견문록이 왕오천축국전 (往五天竺國傳)이다.[94] 화랑의 유래에서 다루기로 한다.
하늘에 뜬 밝은 빛 삼신 (三辰,日月星)을 찾아 동쪽으로 온 유목민이 숭상하는 토속신앙을 신선지도 (神仙之道. 神道)라 했다.
예맥족 여러 노인들이 원시불교 발상지에 이르러 그곳 사람들과 가치의 철학에 관해 토의 하여 원시성교 (聖教)라고 자칭하던 불교가 인도 동북 히말라야 산중에서 나타났고, 고조선 토속신앙이, 신선 사상으로 바뀌어 오늘의 도교(道敎, Taoism, Daoism)로 운남-사천성 영역에서 나타났다. 전국 시대에 이르러서는 유불선(儒佛仙) 사상이 제자백가 여러 학파에 반영 되어 권선징악(勸善懲惡)으로 나타났다.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소통할수 없던 지역에는 토속신앙의 원형이 오랫동안 전해왔다. 한국, 중앙아시아 북미대륙 등지에 장승 하루방 (totem pole)에 무색 천을 다는 풍속이 서낭당(西娘堂)에 전해오고 있다. 한국고유의 개천절, 유태인의 하누까 (하늘이 깨진 sky open), 중앙아시아 와 코미 러시아에서색이 찬란한 리봉으로 장식한 돌무더기, 북미 대륙에 오나이다 (Oneida; 降臨 강림) 등으로 전해 온다.
서긍의 고려도경에 “고려는 도산(道山)·선도(仙島)와는 멀지 않으니 고려 백성들이 장생구시 (長生久視) 가르침을 숭모할 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중국 (中原) 에서 이전에는 정벌하는 경우가 많았음으로 청쟁무위 지도 (清浄清涼無爲之道), 도교로서 교화하는게 없었을 뿐이다” 라고 했다.
도산 선도란 신령한 약초가 자란다는 봉래산 (蓬萊山)을 뜻 했다. 탐모라국 (𨈭牟羅國) 이라 부르던 대만섬 (Formosa Island) 에는 아리랑의 어원이 되는 아리산(阿里山)과 가라산 (加羅山) 가라호(加羅湖)가 있다. 임진란 전후에 조총으로 무장한 왜의 침략을 받아 많은 사람이 죽어 이목대미륵 (夷目大彌勒)이 수십명의 동반자를 대리고 찾아 와서 헌록(獻鹿) 괘주 (餽酒)하는 종교의식을 하여 희위재해 (喜為除害)라 했다. [95] 그 곳에서 나무에 글자를 세겨 뜻을 전했다. 그 글자를 조적문(鳥跡文)이라 했다.
이목대미륵 (夷目大彌勒)이란 불가의 스님이 아니다. 산해경 숙신씨 마을에 실린 “有樹名曰雄常, 先入代帝 ”란 문구가 “Totem Pole雄常”을 뜻했다. [96]
단군조선 발상지에 있던 숙신씨가 중원을 거쳐 만주땅 동북쪽에 이르렀다. 그 한 부류는 중국 내륙을 따라 멀리 불교 발상지에 이르렀다. 전국시대 말기 에는 금미달에서 해안으로 내려와 동남아해안을 따라 남 천축국, 미륵보살 (彌勒菩薩)의 발상지 스리랑카에 까지 이르렀다. 보살이란 보살펴준다는 현제 쓰고 있는 한국말이다.
원시 불교의 유래 결론: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 아시아에 전해오는 무속(巫俗) 신앙이 동양 종교의 기원이다. The current Korean word “Tree(나무), father (아버지, 아빠, 아비) wish (희망, 소원, 바램, 바라다) are in Buddhist Prayer: “나무아비타불 관세음 보살”이란 문구로 나타났다. 그곳에서 나타난 미륵보살 (彌勒菩薩)을 숭배하는 종교를 편의상 남방불교라 한다. 바다에서 폭풍을 만나 홀로 쪽배(Canou, Kayak, 舟, 小船, 小乘)에 몸을 싣고 생사의 기로에서 구원의 밧줄을 갈구하는 소승불교(小乘佛敎)가 나타났다. 그 시절에 뱅골만 (Bengal)에 정착하여 “나가족, 방가국(Naga People 이 Banga(放家, 出家); ancient kingdom of Vanga, or Banga)이” 나타났다 . [97]
쿠쉬나매에 나오는 꽃같은 신라 공주(Princess of Silla)가 미실이로 나타났다. 신라 공주가 숲속의 요정이란 뜻이 있는 Sheilla로 쓰인다.
미륵(彌勒)이란 명사는 금미달에 살았던 마지막 단군을 뜻한 글자다. 금미달이 전란에 시달리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사방으로 흐터져 나갔다. 일부는 육로를 따라 남쪽 나라, 운남성과 귀주성 호남성으로 내려 갔다. 운남성 지도자를 당 현종이 비하 해서 지나 (支那)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은 해하 수계를 따라 옛적부터 친밀 했던 사람들이 살고 있는 발해만 연안 산동성으로 내려와 해안을 따라 흐터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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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漢傳佛教與東方文化.任繼愈. 中華佛學學報第12期 (1999.7月出版 ).中華佛學研究所發行.
[2]. 高士傳: 老子李耳,字伯陽,陳人也。生於殷時,為周柱下史。好養精氣,貴接而不施,轉為守藏史。積八十餘年, 《史記》云「二百餘年」。時稱為「隱君子」,謚曰聃。仲尼至周,見老子,知其聖人,乃師之。後周德衰,乃乘青牛車去,入大秦,過西關,關令尹喜望氣先知焉,乃物色遮候之。已而,老子果至,乃強使著書,作《道德經》五千餘言,為道家之宗。以其年老,故號其書為《老子》노자(老子) 서진(西晋) 황보밀(皇甫謐)이 편찬한고사전
[3]. 淮南子 繆稱訓:老子學商容,見舌而知守柔矣;列子學壺子,觀景柱而知持後矣。故聖人不為物先,而常制之, 其類若積薪樵,後者在上。人以義愛,以黨群,以群強。是故德之所施者博,則威之所行者遠..
[4]. 康熙字典 : 䳗 䳘 鵝: 野曰雁,家曰鵝 《世本》伯益作井。《汲冡周書》黃帝作井. , 鵝:《說文》曰:鴚鵝也. 鴐鵝 環其城邑曰圍. e圍 囲 같은 뜻과 음이 같다.鴚鵝也。長脰善鳴,峩首似傲,故曰鵝。《爾雅·釋鳥》舒雁,鵝。
[5]. 康熙字典 : 䳗 䳘 鵝: 野曰雁,家曰鵝 《世本》伯益作井。《汲冡周書》黃帝作井. , 鵝:《說文》曰:鴚鵝也. 鴐鵝 環其城邑曰圍. e圍 囲 같은 뜻과 음이 같다.鴚鵝也。長脰善鳴,峩首似傲,故曰鵝。《爾雅·釋鳥》舒雁,鵝。
[6]. 史記 老子韓非列傳: 韓非者,韓之諸公子也。喜刑名法術之學,而其歸本於黃老。非為人口吃,不能道說 , 而善著書。 與李斯俱事荀卿,斯自以為不如非. 太史公曰:老子所貴道,虛無,因應變化於無為, 故著書辭稱 微妙難識。 莊子散道德,放論,要亦歸之自然。申子卑卑,施之於名實。韓子引繩墨,切事情,明是非, 其極慘礉少恩。皆原於道德之意,而老子深遠矣。韓非子 喻老.: 太平御覽 仙經下: 神無常體,和無常容.
[7].史記 伯夷列傳: 夫學者載籍極博,猶考信於六藝。詩書雖缺,然虞夏之文可知也。堯將遜位, 讓於虞舜,舜禹之閒,岳牧咸薦,乃試之於位,典職數十年,功用既興,然後授政。
[8]. 시경(斯經) 과 시도(斯道) 시문(斯文) « Lee Mosol’s Book Collection
[9]. 隋書 道經 佛經: 此身之前,則經無量身矣。積而脩習,精神清淨,則成佛道。天地之外,四維上下,更有天地, 亦無終極, 然皆有成有敗。自此天地已前,則有無量劫矣。今此劫中,當有千佛。自初至于釋迦,已七佛矣。 其次當有彌勒出世,必經三會,演說法藏,開度衆生。由其道者,有四等之果. 道、佛者,方外之教, 聖人之遠致也。 俗士為之,不通其指,多離以迂怪,假託變幻亂於世,斯所以為弊也。故中庸之教. https://ctext.org/zh。: 佛道: 梵語菩提,新譯曰覺,舊翻曰道. 道者通之義,佛智圓通無壅。「菩提胡語,此翻為道。果德圓通,名之為道。」
[10]. 荀子 解蔽,聖人知心術之患,見蔽塞之禍,故無欲、無惡、無始、無終、無近、無遠、無博、無淺、無古、無今, 兼陳萬物而中縣衡焉. 故道經曰:「人心之危,道心之微。」危微之幾,惟明君子而後能知之.
[11]. 三國志 倭人傳:臨兒國,浮屠經云其國王生浮屠。浮屠,太子也.浮屠所載與中國老子經相出入,蓋以為老子西出關, 過西域之天笁、教胡。浮屠屬弟子別號,不能詳載,故略之如此
[12]. 大唐西域記: 卷第三: 故道安云。斯為不易矣。或曰。漢魏之際盛行斯意。致使陳壽國志述臨兒國云浮屠所載與中國 老子經而相出入。蓋老子西出關過西域之天竺教胡為浮屠。此為見譯家用道德二篇中語。便認云與老子經互相出入也。設有華人能梵語與西僧言說。兩相允會。宋高僧傳: 漢魏之際盛行斯意。致使陳壽國志述臨兒國云浮屠所載與中國老子經而相出入。蓋老子西出關過西域之天竺教胡為浮屠。此為見譯家用道德二篇中語。便認云與老子經互相出入也.
[13]. 史記 太史公自序:唐虞之際,紹重黎之後,使復典之,至于夏商,故重黎氏世序天地。其在周,程伯休甫其後也。 當周宣王時,失其守而為司馬氏。司馬氏世典周史。惠襄之閒,司馬氏去周適晉。晉中軍隨會奔秦,而司馬氏入少梁。
[14].大唐西域記:山經莫之紀。王會所不書。博望鑿空。徒置懷於印竹。昆明道閉。謬肆力於神池。 遂使瑞表恆星。鬱玄妙於千載。夢彰佩日。秘神光於萬里。暨於蔡愔訪道。摩騰入洛。經藏石室.
[15]. 大唐西域記: 印度者。斯其一稱. 如來問曰。汝子我之族也。今何所在。 母曰。 旦出畋遊 今將返駕。如來與諸大眾 尋欲發引。王母曰。我惟福遇生育聖族。如來悲愍又親降臨。我子方還。願少留待。世尊曰。斯人者我之族也。
[16]. Sinja Valley – Wikipedia. 五臺山本名清涼山。」Sinja Village:「清涼山者,即代州 雁門郡 五臺山也。 以歲積堅冰, 夏仍飛雪,曾無炎暑,故名清涼。」 抱朴子 地真 昔黃帝東到青丘, 過風山, 見紫府先生,受三皇內文,以劾召萬神 太平御覽 :五臺山《仙經》云:「此山名為紫府,仙人居之。」其九臺之山,冬夏常冰雪,不可居,即文殊師利常鎮毒龍之所。
[17]. 康熙字典: 《說文》惟初大始,道立於一。造分天地,化成萬物。《廣韻》數之始也,物之極也。 《易·繫辭》天一地二。《老子·道德經》道生一,一生二。文心雕龍 正緯:夫神道闡幽,天命微顯,
馬龍出而大《易》興,神龜見而《洪範》耀,故《繫辭》稱「河出圖,洛出書,聖人則之」,斯之謂也
[18]. 大唐西佛學大辭典/龍樹本跡: 龍樹菩薩之本地,謂為過去之妙雲相佛,又曰妙雲自在王如來,今為垂迹之身, 在初歡喜地之位云。三寶感應錄下曰:「金剛正智經中:馬鳴過去成佛號大光明佛,龍樹名妙雲相佛。大莊嚴三昧經中:馬鳴過去成佛號日月星明佛,龍樹名妙雲自在王如來。」弘法之付法傳上曰:「尋本則妙雲如來,現迹則位登歡喜。」八宗綱要上曰:「龍樹則昔之妙雲相佛,今則寄位於初歡喜。」(但三寶感應所引二經藏經中無之)舊稱,那伽曷樹那,那伽阿周陀那Nāgārjuna,
[19]. 大唐西域記: 卷第三: 時南印度那伽閼刺樹那菩薩唐言龍猛舊譯曰龍樹非也幼傳雅譽長擅高名。 捨離欲愛出家修學。深究妙理位登初地。有大弟子提婆者。智慧明敏機神警悟。白其師曰。波吒釐城諸學人等辭屈外道不擊揵稚。日月驟移十二年矣。敢欲摧邪見山然正法炬。龍猛曰。波吒釐城外道博學。爾非其儔吾今行矣。提婆曰。欲摧腐草詎必傾山。敢承指誨黜諸異學。大師立外道義。而我隨文破析詳其優劣然後圖行
[20]. User dictionary:龍猛:舊譯曰龍樹,新譯曰龍猛。西域記八曰:「南印度那伽閼刺樹那菩薩,唐言龍猛,舊譯曰龍樹。
非也。」龍樹之譯名有三:一、龍樹(羅什譯之龍樹傳),二、龍勝(般若流支譯之順中論),三、龍猛(今之西域記)。嘉祥中論疏序會龍樹與龍勝之名,賢首宗致義記上會龍樹與龍猛之名,真言宗常依新譯用龍猛之名
[21]. User dictionary: 賢首: 比丘之尊稱。猶言賢者,尊者。義淨譯新律中多用此稱. 賢首宗: 。華嚴宗也。 至賢首而此 宗大成,故名. 水經注 淮水:. 淮水又東得溮口,水源南出大潰山,東北流,翼帶三川,亂流北注溮水。 又北逕賢首山西。唐言龍猛,舊譯曰龍樹。非也。」龍樹之譯名有三:一、龍樹(羅什譯之龍樹傳), 二、龍勝 (般若流支譯之順中論),三、龍猛(今之西域記)。嘉祥中論疏序會龍樹與龍勝之名,賢首宗致義記上會龍樹與龍猛之名,真言宗常依新譯用龍猛之名
[22]. 三國志: 臨兒國,浮屠經云其國王生浮屠。浮屠,太子也。父曰屑頭邪,母云莫邪。浮屠所載臨蒲塞、 桑門、伯聞 、疏問、白疏間、比丘、晨門,皆弟子號也。浮屠所載與中國老子經相出入,蓋以為老子西出關,過西域之天笁、教胡。於羅屬大秦,其治在汜復東北,渡河,從於羅東北又渡河,斯羅東北又渡河。斯羅國屬安息,與大秦接也。大秦西有海水,赤水西有白王山,白玉山有西王母,西王母西有脩流沙,流沙西有大夏國、堅沙國、屬繇國、月氏國,疏勒.
[23]. 廣韻 穢: 濊:濊貊夫餘國名. 廣韻 餘:殘也. 晉卿韓宣子之後有名餘子者傳餘氏本自傅說 後有留於傅巖者因號傅餘氏 秦亂自淸河入吳漢興還本郡餘不還者曰傅氏今 夫餘爲氏今百濟王夫餘氏也. 康熙字典: 印度之古稱。 西域記曰: 「天竺之稱,異議糾紛。舊云身毒,或云賢豆。今從正音, 宜云印度。」 玄應音義曰: 「竺今作篤, 或言身毒, 或言賢豆,皆訛也,正言印度。印度名月。一說云:賢豆本名因陀羅婆他那,此云主處, 謂天帝也。」 希麟音義曰:「竺音篤,或云身毒,或云賢豆,或云印度,皆訛。正云印特伽羅,此云月。」
[24]. 大唐西域記 卷第五: 大唐國者豈此是耶。對曰。然至那者前王之國號. 秦王天子。早懷遠略。 興大慈悲. 摩訶至那國秦王破陣樂者。聞之久矣。豈大德之鄉國耶。
[25]. 《題梵書》:鶴立蛇形勢未休,五天文字鬼神愁。支那弟子無言語,穿耳胡僧笑點頭.
[26].大唐西域記: 卷第八:是無憂王作地獄處。釋迦如來涅槃之後。第一百年有阿輸迦 唐言無憂舊曰阿育訛也王者。頻毗婆羅唐言影堅。舊曰頻婆娑訛也王之曾孫也
[27].https://ctext.org/zh: Aśoka,舊稱阿恕伽。新稱阿輸迦。譯曰無憂。西紀前三百二十一年頃,於印度創立孔雀王朝之 旃陀掘多大王(Chandragupta)孫也。紀元前二百七十年頃,統一全印度,大保護佛教,使之宣布各地。
[28]. 太平廣記 異僧七 宣律師:六國同時,隸文則非吞併之日也。此國篆隸諸書,尚有茫昧,寧知迦葉佛時之事。 決非其耳目之所聞見也。又問今西京城西高四土臺。俗諺云:是蒼頡造書臺。多在清涼山五臺之中,今屬北岱州西,見有五臺縣清涼府。皇唐已來,有僧名解脫。在巖窟亡來三十餘年。身肉不壞,似如入滅盡定。復有一尼,亦入定不動。各經多年。聖迹迦藍。菩薩聖僧,仙人仙花,屢屢人見。
[29]. 康熙字典:五臺山志曰:「五臺山本名清涼山。」華嚴經疏云:「清涼山者,即代州 雁門郡 五臺山也。 以歲積堅冰, 夏仍飛雪,曾無炎暑,故名清涼。」 抱朴子 地真 昔黃帝東到青丘, 過風山, 見紫府先生,受三皇內文,以劾召萬神 太平御覽 :五臺山《仙經》云:「此山名為紫府,仙人居之。」其九臺之山,冬夏常冰雪,不可居,即文殊師利常鎮毒龍之所。
[30]. 說文解字 渝:變汙也。从水俞聲。一曰渝水,在遼西臨俞,東出塞。
[31]. 康熙字典: 渶:水名出靑丘山。逸周書 王會解:麃麃者,若鹿,迅走,青丘狐九尾. 以歲積堅冰, 夏仍飛雪, 曾無炎暑,故名清涼。」太平御覽 河北諸山:《水經注》曰:五臺山《仙經》云:「此山名為紫府,仙人居之。」其九臺之山,冬夏常冰雪,不可居,即文殊師利常鎮毒龍之所。今多佛寺,四方僧徒善信之士,多往禮焉。
[32]. https://ctext.org/zh: 伽羅Tagara,多伽羅之略,香木名。譯曰度邊地。羅什譯之仁王經下曰:「以六阿僧祇劫, 集無量明波羅蜜故,入伽羅陀位,無相行,受持一切法。」吉藏疏五曰:「入伽羅陀者,此云度邊地也。又作沒刀伽羅子。沒特伽羅者,譯言取綠豆,取胡豆,採菽等姓也。上古有仙,取綠豆而食,此仙種,云沒特伽羅。依沒特伽羅姓之 母而生,故曰沒特伽羅子。佛弟子中神通第一之比丘是也。舊稱目犍連. 佛學大辭典/天竺
[33]. 大唐西域記: 詳夫天竺之稱。異議糾紛。舊雲身毒。或曰賢豆。今從正音。宜云印度。印度之人隨地稱國。 殊方異俗 遙舉總名。語其所美謂之印度。印度者。唐言月。月有多名。斯其一稱。言諸群生輪回不息。無明長夜莫有司晨。
[34]. 山海經에 나타난 천독(天毒)-끝 « Lee Mosol’s Book Collection (ancienthistoryofkorea.com)。
[35]. 大唐西域記: 徒置懷於印竹。昆明道閉. 同風類俗略舉條貫。異政殊制隨地別敘。 印度風俗語在後記. 異政殊制隨地別敘. 。印度之人隨地稱國。殊方異俗遙舉總名。語其所美謂之印度。
[36]. 大唐西域記: 諸婆羅門無所得獲於涅疊般那唐言焚燒舊云闍維訛也地。收餘灰炭持至本國。建此靈基而修供養. 自茲已降奇跡相仍. 地今黃黑土雜灰炭。至誠求請或得舍利。無挍輕重總入塗炭
[37]. 大唐西域記: 軒轅垂衣之始。所以司牧黎元。暨乎唐堯之受天運。光格四表。虞舜之納地圖。德流九土。自茲已降。
[38]. 抱朴子 地真:昔黃帝東到青丘,過風山,見紫府先生,受三皇內文,以劾召萬神,
阿蘇羅,阿素羅。譯曰無端,容貌醜陋之義。又曰無酒,其果報無酒之義。新稱阿素洛。譯曰非天。其果報勝似天而非天之義。為常與帝釋戰鬥之神。六道之一。八部眾之一。名義集二曰:「阿修羅,舊翻無端正。男醜女端正,新翻非天。」西城記九曰:「阿素洛,舊曰阿修羅,又曰阿須倫,又曰阿蘇羅,皆訛也。」法華文句五曰:「阿修羅,此云無酒。四天下採華,醞於大海。魚龍業力,其味不變。嗔妒誓斷,故言無酒神。」大乘義章八末曰:「阿修羅者,是外國語,此名劣天。又人相傳名不酒神。」玄應音義三曰:「阿修倫,又作阿修羅,皆訛也,正言阿素洛。此譯云:阿無也,亦云非。素洛云酒,亦云天。名無酒神,亦名非天。經中亦名無善神也。」
[39].https://ctext.org/zh: 梵語: 天竺之言語,由梵天稟承,故云梵語。西域記二曰:「詳其文字,梵天所製。原始垂則, 四十七言也。 (中略)因地隨人,微有改變。語其大較,未異本源。而中印度特為詳正。辭調和雅。與天同音。」
[40].https://ctext.org/zh: 梵語: 天竺之言語,由梵天稟承,故云梵語。西域記二曰:「詳其文字,梵天所製。原始垂則, 四十七言也。 (中略)因地隨人,微有改變。語其大較,未異本源。而中印度特為詳正。辭調和雅。與天同音。」
[41].後漢書 董卓列傳:帝疑賦卹有虛,乃親於御前自加臨檢: he personally conducted an inspection in front of the court. 새우리말 큰사전 :가림마-머릿가락을 똑 같이 좌우로 나누나. 舊唐書 卷八十八 劉仁軌 郝處俊 裴行儉: 或曰:「加林城水陸之沖,請先擊之。」仁軌曰:「加林險固,急攻則傷損戰士, 이태백전서 (李太白全書)
[42].https://ctext.org/zh: 梵語: 天竺之言語,由梵天稟承,故云梵語。西域記二曰:「詳其文字,梵天所製。原始垂則, 四十七言也。 (中略)因地隨人,微有改變。語其大較,未異本源。而中印度特為詳正。辭調和雅。與天同音。」
[43]. 廣韻 穢: 濊:濊貊夫餘國名. 廣韻 餘:殘也. 晉卿韓宣子之後有名餘子者傳餘氏本自傅說 後有留於傅巖者 因號傅餘氏秦亂自淸河入吳漢興還本郡餘不還者曰傅氏今 夫餘爲氏今百濟王夫餘氏也. 康熙字典: 印度之古稱。 西域記曰: 「天竺之稱,異議糾紛。舊云身毒,或云賢豆。今從正音, 宜云印度。」 玄應音義曰: 「竺今作篤, 或言身毒, 或言賢豆,皆訛也,正言印度。印度名月。一說云:賢豆本名因陀羅婆他那,此云主處, 謂天帝也。」希麟音義曰:「竺音篤,或云身毒,或云賢豆,或云印度,皆訛。正云印特伽羅,此云月。」
[44]. 大唐西域記: 蘇迷盧山唐言妙高山。舊曰須彌。又曰須彌婁皆訛略也四寶合成. 海中可居者。大略有四洲焉。 東毗提訶洲舊曰。弗婆提。弗于逮訛也南贍部洲舊曰。閻浮提洲。剡浮洲訛也西瞿陀尼洲舊曰。瞿耶尼。的伽尼訛也北拘盧洲舊曰。鬱單越。鳩樓。訛也金輪王乃化被四天下。
[45]. 大唐西域記:李老曰。美言者則不信。信言者則不美。韓子曰。理正者直其言。 言飾者昧其理。
[46]. 大唐西域記: 末田底迦舊曰末田地訛略也阿羅漢之所造也。羅漢以神通力攜引匠人. 升睹史多天舊曰兜率他也。 又曰兜術他。訛也親觀妙相。蘇迷盧山唐言妙高山。舊曰須彌。
[47]. 大唐西域記: 昆明道閉。謬肆力於神池。遂使瑞表恆星。鬱玄妙於千載。夢彰佩日。秘神光於萬里。暨於蔡愔訪道。 摩騰入洛。經藏石室。飛英天竺。文傳貝葉。聿歸振旦。太宗文皇帝。金輪纂禦。寶位居尊。啟玄妙之津。書揄揚之旨。蓋非道映雞林。譽光鷲岳。
[48]. 大唐西域記: 從烏鐸迦漢荼城北踰山涉川。行六百餘里至烏仗那國。唐言苑。昔輪王之苑囿也。舊云烏場。 或曰烏茶皆訛北印度境遂
[49]. 史記 殷本紀: 得說於傅險中。是時說為胥靡,筑於傅險。故遂以傅險姓之,號曰傅說。史記 大宛列傳: 騫曰:「臣在大夏時,見邛竹杖、蜀布。問曰:『安得此?』大夏國人曰:『吾賈人往市之身毒。康熙字典: 竺:天竺國名又姓出東莞後漢擬陽侯竺晏本姓竹報怨,又冬毒切厚也,《集韻》或作笁。又作䈞. 筑:筑似箏十三弦髙漸離善擊筑。《說文》曰:以竹爲五弦之樂也. 又《爾雅》云:筑拾也. 爾雅 釋言: 筑,拾也.
[50]. 史記 刺客列傳: 「高漸離也。」秦皇帝惜其善擊筑。使擊筑。高漸離乃以鉛置筑中,舉筑樸秦皇帝,不中。
[51]. 戰國策 齊策 : 臨淄甚富而實,其民無不吹竽、鼓瑟、擊筑、彈琴、鬥雞、走犬. 三國志 弁辰傳:有瑟,其形似筑.
[52]. 康熙字典 :竺:《廣雅》竺,竹也。其表曰笢。又天竺,國名。《後漢·西域傳》天竺國,一名身毒國,在月氏東南 數千里。天毒。《郭璞註》卽天竺國。《括地志》天竺國。《通志略》天竺卽捐毒也。又姓。《後漢·竇融傳》酒泉都尉竺曾。《福建志》福淸縣石竺山,其產多竹而少筍。《爾雅·釋訓》竺,厚也。《疏》與篤同《集韻》或作笁。又作䈞. 史記三家注 : 築→筑. 廣韻 竹: 本姜姓封爲孤竹君至伯夷叔齊之後以竹爲氏.今遼西孤竹城是後漢有下邳相竹曾。 急就篇:有瑟,竽瑟空侯琴筑箏,釋樂器:筑,以竹鼓之,筑柲之也.也
[54]. 廣韻: 晉卿韓宣子之後有名餘子者奔於齊號韓餘氏又傳餘氏本自傅說說旣爲相其後有留於傅巖者因號傅餘氏秦亂自淸河入吳漢興還本郡餘不還者曰傅氏今吳郡有之風俗通云吳公子夫摡奔楚其子在國以夫餘爲氏今百濟王夫餘氏也.《 廣韻 》本作濊,濊貊,夫餘國名。或作䫉。《集韻》通作薉穢。濊:濊貊夫餘國名或作獩䫉又汪濊.
[55]. 大唐西域記 檢索 “隨地: 詳夫天竺之稱。異議糾紛。舊雲身毒。或曰賢豆。今從正音。宜云印度。 印度之人隨地稱國。殊方異俗遙舉總名。語其所美謂之印度。印度者。唐言月。月有多名。斯其一稱
[56]. 道士 – 다음 한자사전 (Daum 漢韓辭典). 沙門 – 다음 한자사전 (Daum 漢韓辭典)
[57]. 太平廣記 幻術一: 燕昭王七年,沐骨之國來朝,則申毒國之一名也。有道術人名尸羅。 問其年,云。 百四十歲。 荷錫持瓶,云。發其國五年,乃至燕都。喜衒惑之術。金樓子 興王:漢哀帝時遣大司空行湯冢
[58]. 康熙字典: 佛 秦時沙門室利房等至,始皇以爲異,囚之。夜有金人,破戸以出。 漢武帝時, 霍去病過焉支山, 得休屠王祭天金人以歸,帝置之甘泉宮。金人者,浮屠所祠,今佛像卽其遺法也。哀帝時, 博士弟子秦景, 使伊存 口授浮屠經,中土未之信。以是考之,秦西漢知有佛久矣,非明帝始也。又古本列子周穆王篇,西域之國有化人,無西方 聖人 名佛之說,獨仲尼篇載孔子曰:西方之人有聖者。蓋假借孔子之語也。
[59]. 康熙字典: 佉:與祛同。國名。《內典》薄佉羅,卽月支也。人名。 《法苑珠林》造書凡三人,長曰梵,其書右行。 次書佉盧,其書左行。又佉沙國,卽疏勒也。《釋書》佛說彌勒成佛經,其先轉輪聖王,名儴佉。伽藍,神名。又《梵書》那伽,龍也。竭伽,犀也。僧伽藍,衆園也。譯云園,取生植義,今浮屠所居是也。凡稱釋氏曰僧伽
[60].康熙字典: 浮屠亦作浮圖,休屠。按浮屠浮圖。 皆即佛陀之異譯。古人因稱 佛教徒為 浮屠。佛教為浮屠道。 後并稱佛塔為浮屠.三藍皆可作澱,色成勝母,故曰靑出於藍而靑於藍.
[61]. 太平廣記 異人一 梁四公: 扶南大舶從西天竺國來,賣碧玻黎鏡,更問此是瑞寶, 王令貨賣, 即應大秦 波羅奈國失羅國諸大國王大臣所取,汝輩胡客,何由得之,必是盜竊至此耳。印度之人隨地稱國。殊方異 俗 遙舉總名。語其所美謂之印度。太平廣記 神仙四十三 盧山人: 盧生忽叱之曰:「汝等所為不悛, 性命無幾。」 其人悉羅拜塵中曰:「不敢不敢。」其侶訝之。盧曰。此輩盡刼賊也。其異如此。元卿言:「盧卿狀貌,老少不常。亦不常見其飲食。常語趙生曰:『世間刺客隱形者不少,道者得隱形術,能不試,二十年可以化形,名曰脫離,後二十年,名籍於地仙矣。又言刺客之死。屍亦不見。』所論多奇怪,蓋神仙之流也。出酉陽雜爼. 《張說·梁四公記》黑谷之北有漆海。悉羅.
[62]. 三國史記 : 脫觧本多婆那國所生也,其國在倭國東北一千里。其國王娶女國 王女 為妻,有娠七年, 乃生大卵。 王曰:「人而生卵,不祥也,宜棄之。」其女不忍, 以帛裹卵 并寶物, 置於櫝中,浮於海, 任其所徃。初至金官國海邉,金官人怪之,不取。 三國遺事: 脫解一作吐解 尼叱今 昔氏父琓夏國含達婆 王一作花夏國王母積女國王之女妃南解王之女阿老夫人. 三國遺事: 乃作詞誡之曰快適 須臾意已閑暗從愁 裏老倉顏不須更待黃梁熟方悟勞生一夢間治身臧否先誠意鰥夢蛾眉賊夢藏何似秋來清夜夢時時合眼到清涼魚山佛彰古記云。萬魚寺者古之慈成山也。又阿耶斯山當作摩耶斯。此云魚也。傍有呵囉國。昔天卵下於海邊。作人御國。即首露王。境內有玉池。池有毒龍焉。萬魚山有五羅剎女。往來交通。故時降電雨。
[63]. 三國遺事: 作人御國。即首露王。當此時。境內有玉池。池有毒龍焉。
天竺訶羅國佛影事符同者有三。一。山之側近地梁州界玉池。亦毒龍所蟄是也。
[64]. 康熙字典: 《水部》渝:變汙也。从水俞聲。一曰渝水,在遼西臨俞,東出塞
[65]. 三國史記: 史勿縣進長尾白雉,賜縣吏穀.炤知麻立干 加耶國送白雉, 尾長五尺。
[66].大唐西域記: 卷第十一: 僧伽羅國雖非印度之國路次附出茶建那補羅國 「僧伽羅國。古之師子國。又曰無憂國。 即南印度。其地多奇寶.大明永樂三年。皇帝遣中使太監鄭和。奉香華往詣彼國供養。鄭和勸國王阿烈苦柰兒。敬崇佛教遠離外道。攻戰六日. 永樂九年七月初九日至京師。
[67].Bay of Bengal – Wikipedia. Barak Valley – Wikipedia. Dravidian – Wikipedia
[68]. 大樓炭經 – 佛經經文 | 佛弟子文庫 佛語比丘:「其山甚樂,姝好樹木生葉,華實甚香,畜獸鳥無所不有, 無與等者也。」 佛言:「比丘!其欝單茄山甚樂,姝好巍巍,欝單茄山,有山名須桓那,其山有八萬窟,中有八萬
[69].https://ctext.org/zh阿修羅: Asura,又作阿須羅。舊稱阿修羅,阿須倫,阿蘇羅,阿素羅。譯曰無端,容貌醜陋之義。 又曰無酒,其果報無酒之義。新稱阿素洛。譯曰非天。其果報勝似天而非天之義。為常與帝釋戰鬥之神。六道之一。八部眾之一。名義集二曰:「阿修羅,舊翻無端正。
[70]. 說文解字 序:: 二曰象形。象形者,畫成其物,隨體詰詘,「日、月」是也。三曰形聲。
詩經大雅 民勞:惠此中國、以綏四方。無縱詭隨、以謹無良。民亦勞止、汔可小休。惠此中國、以為民逑 。 無縱詭隨、以謹惛怓. 惠此京師、以綏四國 。無縱詭隨、以謹罔極。
[71]. 三國志:高句麗傳:多大山深谷,無原澤。隨山谷以為居,食澗水. 以十月祭天,國中大會,名曰東盟。 其公會, 衣服皆錦繡金銀以自飾。大加主簿頭著幘,如幘而無餘,其小加著折風,形如弁。其國東有大穴,名隧穴,十月國中大會,迎隧神還於國東上祭之,置木隧於神坐. 진수가 남긴 요수(遼隧)란 곳는 어디인가? « Lee Mosol’s Book Collection (ancienthistoryofkorea.com)
[72]. 舊唐書 地理三: 馮洛州已上十六番州,雜戎胡部落,寄於北庭府界內,無州縣戶口,隨地治畜牧. 新唐書 :隨地之宜。 水經注 河水: 從蔥嶺出而東北流。闞駰曰:河至金城縣,謂之金城河,隨地為名也。《釋名》曰:河,下也, 隨地下處而通流也. 通典天竺: 遂俘阿羅那順以還。晉、宋時浮圖經云:「臨倪國,其王生浮圖太子也,父曰屑頭耶, 母曰莫耶。浮圖身服色黃,髮青如青絲。始莫耶夢白象始孕,及生,從母左囱出。生而有髻,墮地能行七步。此國在天竺域。通典封禪:壇上飾以青,四面依方色。一壝,隨地之宜。又為降禪壇於社首山上。
[73]. 隨 따를 수, 게으를 타1 따르다2. 거느리다3. 몸에 지니다4. 따라서. Follow, listen to, submit; to accompany; subsequently, then. 墮 떨어질 타, 무너뜨릴 휴1. 떨어지다2. 무너지다3. 깨뜨리다
[74]. 新書 胎教:昔禹以夏王,而桀以夏亡. 說苑 政理: 昔禹與有扈氏戰,三陳而不服, 禹於是修教一年而 有扈氏請服, 故曰. 孔子家語 辯物:孔子曰:「丘聞之,昔禹致群臣於會稽之山,防風後至,禹殺而戮之,其骨專車焉。」國語 魯語下:仲尼曰:「丘聞之:昔禹致群神于會稽之山,防風氏後至,禹殺而戮之,其骨節專車。三國志郭淮:「昔禹會諸侯於塗山,防風後至,便行大戮。」
[75]. 通典 古梁州下: 益昌古劍閣道,秦使司馬錯伐蜀所由,謂之石牛道。康熙字典一部:《蜀記》秦惠王欲伐蜀, 造石牛,置金其後. 太平廣記 李冰:雖甚秋潦,亦不移適。有石牛,在廟庭下。
[76]. 三國志 倭人傳: 於羅屬大秦,其治在汜復東北,渡河,從於羅東北又渡河,斯羅東北又渡河。 斯羅國 屬安息,與大秦接也..水西有白王山,白玉山有西王母,西王母西有脩流沙,流沙西有大夏國、堅沙國、屬繇國、月氏國,四國西有黑水,所傳聞西之極矣。
[77]. 康熙字典 日部: 震旦: 又震旦,西域稱中國之名Cina,又作振旦,真丹,神丹。翻譯名義集曰:「東方屬震, 是日出之方,故云震旦。」近人或云:震即秦,乃一聲之轉。旦,若所謂斯坦,於義為地。蓋言秦地耳。參照支那條
[78]. 海國圖志 卷五: 東南洋一海岸之國. 萬國地理全圖集》曰:四大地之中,亞齊亞最廣大。長二萬四千裏, 大地北極出地二度,至七十八度,英國中線偏東,自二十六至一百九十度。南及印度海,有東京、暹羅、北耳西海隅。
[79]. 海國圖志 : 西北五十裏,有支那西寺,古漢寺也。西北百裏至花氏城,肓王故都也。西北五十裏,有支那西寺, 古漢寺也。西北百裏至花氏城,肓王故都也。甫六年,與佛蘭西戰,敗績於支那,國幾不守。近日乘佛蘭西為俄羅斯所
[80]. 三國史記: 史勿縣進長尾白雉,賜縣吏穀.炤知麻立干 加耶國送白雉, 尾長五尺。
[81]. 宋高僧傳 釋蓮華。本中印度人也. 敕廣州節度使李復修鼓鑄畢.一云梵夾本是南天竺烏荼國王書獻支那天子。 常聞支那大國文殊在中。 錫指東方誓傳佛教。乃泛海東邁。垂至廣州風飄卻返抵執師子國之東. 展轉游化漸達支那印度俗呼廣府為支那。名帝京為摩訶支那也乃於廣州制止道場駐錫
[82].康熙字典:《唐書·南詔傳》初鳳迦異築柘東城,諸葛亮石刻故在,文曰:𥓓卽仆,常以石搘捂. 舊唐書:南詔蠻蒙異牟尋大破吐蕃於神川,使來獻捷,語在《南詔傳》。黃少卿攻陷欽、橫、潯、貴四州,吐蕃渠帥論乞髯蕩沒藏悉諾律以其家屬來降。明年,並以為歸德將軍。吐蕃寇慶州及華池縣,殺傷頗甚。《南詔樂》,南詔異牟等作《奉聖樂》舞,
[83]. 訄書 : 遠藤隆吉曰:「孔子之出於支那,實支那之禍本也。支那以蠶絲名,世謂震旦、支那,譯皆言秦。 今人考得,實為蠶義域多利以英吉利主名.曰:言語、風俗、歷史。三者喪一,其萌不植。俄羅斯滅波蘭而易其言語,突厥滅東羅馬而變其風俗,滿洲滅支那而毀其歷史。自歷史毀,明之遺緒,滿洲之穢德,後世不聞.
[84]. 全唐詩 : 唐 李隆基著: 《題梵書》:鶴立蛇形勢未休,五天文字鬼神愁。支那弟子無言語,穿耳胡僧笑點頭。
[85].太平廣記 南詔: 南詔以十二月十六日,謂之星回節日,遊于避風臺,命清平官賦詩。驃信詩曰:「避風善闡臺, 極目見藤越。隣國之名也。悲哉古與今,依然烟與月。自我居震旦。謂天子為震旦,翊衛類夔、契。伊昔經皇運。
[86]. 三國史記 -> 檢索 “源花”: 始奉源花。初,君臣病無以知人,欲使類聚羣逰,以觀其行義,然後舉而用之.
、唐令狐澄《新羅國記》曰:「擇貴人子弟之美者,傅粉妝餙之,名曰花郞,國人皆尊事之也。」安弘法師入隋求法,與胡僧毗摩羅等二僧廻. 三國遺事: 彌勒仙花 未尸郎
[87]. 康熙字典 爹:《廣雅》爹,父也。荆土方言謂父爲爹,故云。《廣韻》爹,北方人呼父, 與南史不合。 《韓愈·祭女 挐女文》阿爹,阿八。◎按集韻云:說文爹,㸙父也。說文本無父部,又不載多部,集韻引說文誤。《廣韻》羌人呼父也
[88]. 後漢書 :設華蓋以祠浮圖、老子,斯將所謂「聽於神」乎!及誅梁冀,奮威怒, 天下猶企其休息
[89]. 大唐西域記:徒置懷於印竹。昆明道閉。謬肆力於神池。遂使瑞表恆星。 鬱玄妙於千載。夢彰佩日。 秘神光於萬里。暨於蔡愔訪道。摩騰入洛。經藏石室。
[90]. 十六國春秋:法明罽賓人少而好學為弗若多羅所知及長氣幹髙爽神識明悟與眾 不群博覽經典潛思八禪遊心七覺時人方之浮頭婆馱孤行山澤不避虎兕晉隆安中至廣州住白沙寺善誦毗婆沙律咸稱為大毗婆沙時年已八十五徒眾八十五人晉故丹陽
[91]. 大唐西域記 序:昆明道閉。謬肆力於神池。遂使瑞表恆星。鬱玄妙於千載。夢彰佩日。 秘神光於萬里。 暨於蔡愔訪道。摩騰入洛。經藏石室。同風類俗略舉條貫。異政殊制隨地別敘。印度風俗語在後記。出高昌故地。自近者始。曰阿耆尼國舊曰烏耆. 舊唐書: 牟子 漢桓帝時蒼梧太守牟融著書號牟子,推美釋氏。見釋門正統四
[92]. https://ctext.org/zh: 伽羅Tagara,多伽羅之略,香木名。譯曰度邊地。羅什譯之仁王經下曰:「以六阿僧祇劫,
集無量明波羅蜜故,入伽羅陀位,無相行,受持一切法。」吉藏疏五曰:「入伽羅陀者,此云度邊地也。又作沒刀伽羅子。沒特伽羅者,譯言取綠豆,取胡豆,採菽等姓也。上古有仙,取綠豆而食,此仙種,云沒特伽羅。依沒特伽羅姓之母而生,故曰沒特伽羅子。佛弟子中神通第一之比丘是也。舊稱目犍連. 佛學大辭典/天竺
[93]. 太平廣記 異僧七 宣律師:六國同時,隸文則非吞併之日也。此國篆隸諸書,尚有茫昧,寧知迦葉佛時之事。 決非其耳目之所聞見也。又問今西京城西高四土臺。俗諺云:是蒼頡造書臺。多在清涼山五臺之中,今屬北岱州西,見有五臺縣清涼府。皇唐已來,有僧名解脫。在巖窟亡來三十餘年。身肉不壞,似如入滅盡定。復有一尼,亦入定不動。各經多年。聖迹迦藍。菩薩聖僧,仙人仙花,屢屢人見。
[94]. 三國志 倭人傳:臨兒國,浮屠經云其國王生浮屠。浮屠。父曰屑頭邪,母云莫邪。 此國在天笁城中。天笁又有神人, 名沙律。昔漢哀帝元壽元年,博士弟子景盧受大月氏王使伊存口受浮屠經曰復立者其人也。浮屠所載與中國老子經相出入,蓋以為老子西出關,過西域之天笁、教胡。昔漢哀帝元壽元年,博士弟子景盧受大月氏王使伊存口受浮屠經曰復立者其人也. 通典 天竺:後漢通焉,即前漢時身毒國. 大夏國人曰:「吾賈人往身毒國 市之。」即天竺也。或云摩伽陀, 或云婆羅門。在蔥嶺之南,去月氏東南數千里,地方三萬餘里。其中分為五天竺.
[95]. Published in KAUPA Letters – April 1st, 2024. Adjusted June 7th, 2024
[96]. 太平御覽 肅慎: 《山海經》曰:不咸山在肅慎國。有樹名雄常,先人代帝,於此取衣。 其俗無衣。 中國有聖帝代立者,則此木皮可衣。《家語》曰:孔子在陳,惠公賓之於上館。時有集隼庥於陳侯之庭而死,楛矢貫之,石砮,楛,木名。砮,箭鏃。其長尺有咫。惠公使以隼如孔子之館問焉,子曰:「隼之來遠矣,此肅慎氏之矢也。」
[97]. Bengal – Wikipedia。West Bengal – Indian History, Colonialism, Partition | Britannica,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