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이두(吏讀)에 관해 설명 했다. (February 25, 2019 @ 22:44:10)
다음 사전에 이두 (吏讀)를 이도(吏道: “ 벼슬아치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 우리말을 적던 표기법” 이라 하고 이토 (吏吐) 또한 이두와 같은 뜻으로 신라시대부터 사용 했다.”
라고 설명 했다.
중국문헌에도 이두(吏讀)에 관한 설명이 있다.
중국문헌 관람의 창구인 “http://ctext.org/zh”에는 이두(吏讀)를 “이도吏道、 또는 이토 吏吐) 라고도 부른다고 기록 하고, 그에관해 설명 했다.
아래와 같은 설명이 있다.
古代韓國由漢字組成的一套音節符號。七世紀時為韓國僧人所創。也作「吏道」、「吏吐」。
吏道lì dào: 1.官吏處理政務之道。《文選.張華.答何劭詩二首之一》:「吏道何其迫,窘然坐自拘。」《舊唐書.卷九八.盧懷慎傳》:「懷慎自以為吏道不及崇,每事皆推讓之。」2.古代韓國由漢字組成的一套音節符號。參見「吏讀」條。
논형 論衡, 한비자( 韓非子) 염철론(鹽鐵論) 사기, 한서(漢書)등 여러 문헌에 이도(吏道)란 글자로 실렸다. 그 글자의 뜻과 사기 평준서(史記 平準書) 와, 태평어람 령장(太平御覽 令長), 금루자 후비(金樓子 后妃)등 에 실린 내용을 보면 전국시대 금미달 지역에서 나타난다. 금병매에는
이두(吏讀) 표기법이란 한국 고유의 문서작성법이 아니라, 언어가 다른 지역 “SMa-Out” 사람들이 사용하던 예기를 한자로 가차전주 하여 기록하던 방법이다.
향가(鄕歌)는 향찰 (鄕札) 로 기록되었다. 고조선 마지막 수도 금미달 (今彌達) 지역을 흐르는 여울 상간하 (桑乾河) 일대 가 신라 사람들의 고향 이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가 궁홀산에 살던 지도자의 후예라 했다.
弓裔 始祖,姓朴氏,諱赫居世。前漢孝。即位,號居西干,時年十三。國號徐那伐。先是,朝鮮遺民分居山谷之間,為六村:
금미달에서 부르던 민요가 향가다.이을 향찰로 적었다고 한다. 찰이란 “목간에 적혀있는 글자 사이에 칼로 긁어 남겨진 작은 글자”란 뜻글자다.
札,木𥳑之薄小者也。《釋名》札,櫛也。編之如櫛齒相比也
즉 상자지향 (桑梓之鄕) 에서 쓴던 글자란 뜻이다. 왕이란 자는 벌써 떠나고, 남아 있던 평민들이 그곳을 떠나 달밤에 도망오던 괴로움을 읊은 노래가 아리랑이다.
2/9/2026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