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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Mosol’s Book Collection
22 Sep

재세이화 (在世理化)가 묵가 (墨家)의 핵심 사상

Lee Mosol Blog 0 0

단군의 가름침이 묵가 (墨家)의 핵심 사상이다.

 

모두들 단군조선을 전설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단군왕검이 시련을 받고 사는 사람들을 옳바로 가르쳐 밝은 세상에 살도록 인도 한다는 홍익인간이 대한민국의 교육이념으로 채택되었다. 풀이에 논란이 있는 재세이화 (在世理化)를 AI에는 답하기를  ” “To govern and transform the world” or “to regulate and civilize human affairs.” The phrase “在世理化” is used to describe this divine mission: Hwanung’s role is to bring order, civilization, and moral guidance to the human world.” 라고 답한다.   국조 단군이 지시한 “신성한 사명”을 찻아 보았다.

 

불교 기독교 모두 시련을 받고 사는 사람들을 구하려고 온 사람이 그 신앙의 교조가 되었다. 사마천의 고향이 단군조선 발상지다.

고향 사람들(斯)로 부터 들은 고조선 신앙을 음양오행(陰陽五行) 황로사상(黃老思想) 이라 했다. 예맥족이라고 기록된 노인들이  “황노사상을 원시 불교 발생지”에 전하여 불교가 나타났다.  고조선의 지식인들이 원시불교 발생지의 지식인들과 “황노사상을 학술적으로 토론한 결과 도덕경이”  중원 남쪽 지나 (支那) 에서 나타났다. 전국 시대 (기원전 403~221)  말기에 원시 불교가 산서성 대현 연도(燕都)에 들어 왔다. 그 곳이 단군조선 마지막 수도 였다.  그곳을  진시황이 흡수 하고 장성을 쌓았다.  아사달에서 금미달에 이른 1900년 동안 이어온  국조 단군이 지시한 “재세이화 (在世理化)란 신성한 사명”은 여러 사람들이 인용한 방대한 기록에 있어야 한다.

 

전국시대에  “재세이화 (在世理化)란 신성한 사명”을 다루는 제자백가(諸子百家)란 이름이 나타났다. 논란이 많아  백가쟁명(百家爭鳴) 이란  별명이 나타났다. 제자백가, 즉  고조선 의  “신성한 통치 사명”을 다루는 학자들을  사마천은 “음양가(陰陽家) · 유가(儒家) · 묵가 (墨家) · 명가(名家) · 법가(法家) · 도가(道家)의 6가” 로 분류하였다. 한서 예문지에는 “제자백가 중 대표적인 10개의 학파를 구류십가(九流十家)라고 부르고 있다. 구류십가는 유가(儒家) · 도가(道家) · 음양가(陰陽家) · 법가(法家) · 명가(名家) · 묵가(墨家) · 종횡가 (縱橫家) · 잡가 (雜家) · 농가(農家)의 구류(九流)에 소설가(小說家)를” 더했다.  필자는 “ 금미달이 포위 당했다는 뜻(圍棋 囲棋, 行く이 있는 바둑 전문가 박혁가(博奕家) ”를 더하고 십다.  단군의 가르침이 광범 하다는 뜻이 장자 도척 (盜跖)편에 “재상의 언행 또한 평민인 공자와 묵자의 언행과 같다”는  표현을 했다.  도척 (盜跖) 의 형이 유하혜 (柳下惠) 다. 그를  맹자가 화해의 성인이라 했다. 그를 검루선생(魯黔婁先生)이라 했다.

 

이방인이 고조선땅에 들어와 서주가 나타났다. 원주민들이 전설로 전해오던 예기를 기록(斯文)으로 남겼다. 경기 지방을 빼앗긴 고조선 유민들이 사방으로 흐터졌다.

 

제자백가 중에 고조선 사람들의 가치관을 이어온 학파가 있어야 한다. 글자를 보면 묵가 (墨家) 의 핵심 사상이 고조선 사람들의 가치관을 이어온 학파라고 보겠다. 묵가 (墨家) 의 비조가 묵자(墨子),즉 묵작(墨翟)이다.  산속(中山) 금미달에  묵자와 글자가 같은 묵태 (墨胎)씨라는 고죽 (孤竹)군이 있었다.

 

묵가 (墨家)는 전국시대에 나타나,  진시황(秦始皇, B.C 259년 ~ 210년)이 중원을 통일한 이후 바람같이 사라졌다. 진(秦)나라와 관계가 있는듯 하다.  진시황(秦始皇) 이 천하를 통일하고 봉건제를 군현제로 바꾸고 홱기적인 개혁을 했다. 그 내용에 “평민을 검수(黔首) 로 부른다” 고 발표 했다.  이를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은 검은 맨머리라는 뜻으로, 관직에 있지 않은 일반 백성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글자라 한다.  급총죽간을 살펴본 황보밀 (皇甫謐)은 단군을 검루(黔婁) 라 했다.루에 사는 검이란 뜻으로 루를 떠난 사람이라 맹자는 이루(離婁)라 했다.

노나라에 살던 검루선생(魯黔婁先生)이 죽어 증자(曾子, 기원전 505년~기원전 435년)가 제자들과 같이 조문을 갔다. 검루(黔婁) 의 부인이 빈객을 마중 나왔다.  빈소는 소박하고 수의 마저 짧았 다. [1]

 

진시황이 금미달을 흡수하고 전국에 흐터져 살던 검을 수(黔) 검을 려(黎 黧 驪 孋)자  라고 기록 하던 고조선의 여러 부족 지도자들의 권한을 패지 하고 평민으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맹자집주 양혜왕 장구(梁惠王章句)에 실린 내용을 보면 “사서에 검은 색이란 뜻으로 표현한 사람들의 지도자”란 뜻이 분명하다.[2]    금미달에 나타났던 위나라 군주가 남쪽으로 내려와 위혜왕 (魏惠王)을 양혜왕 (梁惠王)이라 했다. 그를 보내는 궁중 의식을 사마천은 수유이악(須臾離樂)이라 했다. 하늘에 올라 가서 요이 되지 못한 오래된 구렁이를 이무기 라 한다. 그가  고요가요 가시리의 주인공인 가야국 가실왕이다.

사마천은 나라위(魏)자를  지킬위자로 바꾸어 위만조선 (衛滿朝鮮)이라 했다. 백익이 우물을 만들었다던 곳(伯益作井)에 살던 사람들이 북쪽으로 밀려와 위혜왕 (魏惠王)이 살던 곳이 포위 되었다하여 바둑(囲棋)이란 글자에 나타났다.

묵가(墨家)에는 바둑을 뜻한 글자라고 풀이 하는 박 (博) 자를 한국어 순박하다(樸)는 어음의 략자로  신라 시조 박혀거세(朴赫居世))와 같은 뜻으로사용했다. [3]

 

주공이 원주민의  소박(素朴/樸)한 인제를 골라 잘 다스리라는 지시를 “상서 주서 가래나무 제목(梓材)이란 편명”에 남겼다. 가래나무 제(梓)자는 백익(伯益, 李 )이 다스리던 서주 지역에 살던 원주민을  뜻했다.

 

묵가(墨家)는 춘추전국시대에 존재하였던 제자백가의 한 학파로, 묵자(墨子, 기원전 470~391?)를 시조로 하며, 전국시대에 활약하다가, 진시황의 통일 이후 홀연히 사라졌다.

묵가(墨家)의 창시자 묵자(墨子)는 산동성  노나라 사람으로  맹자(孟子;기원전 372년? ~기원전 289년?) 이전 사람이다. 하 영제때, 178년에  요서 (遼西) 태수가  강물에 떠내려 오는 관을 얼어보니 성은 이요  이름은 고주(姓李名孤竹)이라 는 사람이 나타났다. [4]

묵자(墨子)는 묵태(墨胎)와 같은 혈통으로 “동이 수령을 사방에서 모인 군장들이 만장 일치로 선출하여 왕검조선”의 후예다. 묵태(墨胎)란 검다는 뜻으로 기록한 고조선 여러 부족의 태반(胎盤. placenta) 이란 뜻 글자를  잘못 풀이 하여 얼굴이 검은 사람이라 한다.

 

백익(伯益, 李 )이 다스리던 서주 원주민들이 북으로 올라가 금미달에 살았다.  그들이 가야국을 이루어 가래나무 제(梓), 또는 가래나무 추 (楸) 자로 기록 했다. 묵가(墨家) 경전에는 한국 고대어를 음차한 상형글자가 많이 보인다. 추 라고 읽는 여러 글자(杍: 李字, 杍, 梓, 秋, 萩, 芻, 騶)는 모두 같은 뜻이라 했다. 산속에 살던 그들이 고난을 격어 고추(苦楸)라 했다. 제자백가 문헌에는 초식동물 이란 뜻에 추환(芻豢)이란 글자가 많이 실렸다. 그 어음이 고구려의 한 부족 고추가 (古鄒加)로 나타났다. 산동성에는 미추홀이 있고,맹자의 고향이 추현(古鄒加)이다. [5]

 

중원세력은 동이수령 백익(伯益)을 살해 하고 그를 여러 글자로 바꾸었다. 그 사실이 그를 추모하던 사람들이 만들어 세운  백충장군 허령비(百蟲將軍顯靈碑)에 실렸다. [6]  백익(伯益)이 전욱 고양씨의 두쩨 아들이고, 성은 이씨(伊氏) 휘가 익(諱益) 자는 토개(字隤敳)라 했다. 토개(隤敳)가 고양씨의 후손이란 기록은 “춘추좌전, 통전, 설문해자”에도 있다 . 순임금은 고양씨의 후손인 이씨(伊氏)의 딸을 정실로 드렸다 .

 

납형을 시작 했던 이기씨 (伊耆氏)라 부르던 단군왕검 백익의 후손을 오얏나무 리(李),  가래나무 자(杍) 또는 가래나무 재(杍,梓,榟) 로 기록 했다.  시경 소변(詩經 小弁)에는 유쌍여자(維桑與梓)란 글귀가 있다. 쌍간하가 흐르는 산서성 (山西省)대현 오대산 계곡에 사는 가래나무 재(杍,梓,榟)자로 기록된 사람들이 이기씨의 후손이란 뜻이다. 흔히 “재와 제를 잘못” 듣고 쓰기도 한다. 이에서 [고향을 재리(梓里)라 하고, 재궁 (梓宮/榟宮) 재궁 (齋宮) 하는 낱말이] 나타났고, 한자로 고향을 상자지향 (桑梓之鄕) 이라 했다.

 

유가의 태두 공자가 중용에서 충서(忠恕)를 강조했다.  충서의 근본이되는 인간의 본성 (本性)풀이에서 성선설 (性善說)과 성악설(性惡說)이 나타났다. 그에 앞서 묵자는 “인간의 본성 (本性)은 다 같다는 뜻”으로 풀이 했다.  살아 가려면 주위한경의 영향을 받는다는 뜻에  소염(所染)이란 편명이 있고, 욕심 많은 사람은 더 많이 가지려 한다는 뜻에 대취 (大取)편이 있다.  폭군의 행위 또한 “ 인간 본성의 하나” 로 보았다. [7] 묵자 (Mozi  墨子)의 사상을 고자(告子)가  이어 받았다.  맹자가 양혜왕(梁惠王), 그의 제상 백규 (白圭), 그리고 고자(告子)와 대화를 나누었다. 백규 (白圭)를 상인의 비조라 한다.

 

살아가기위해 꼭 필요한 기술이다. 청나라 때  편술된  묵자한고 (墨子閒詁)에 맹자가 만났던  양혜왕(孟子· 梁惠王) 에 관한 설명이 실렸다. 그 에 명실상응(名實相應 ; correspondence between name and reality) 이란 문구가 실렸다. 이 문구가 묵자의 주요 철학적 인식론이다. 그 인간이  타고난 (生)  천성 (天性)을 크게 “살아가기 위한 방법과 생존 보전의 본능(生,性)에 따라 살아간다”고 보았다. 이에서 나타나는 갈등 해소를 위한 법(法) 성악설과 성선설 등등 여러 학파가 나타났다.

 

그밖에도 묵자(墨子)에 실린 많은 글자를 다른 글자로 바꾸기도 하고 보충설명을 했다.  검을 묵, 검을 黎 , 검을 려,  사방의 지도자들이 모여 만장일치로 단군왕검을 선출했다.  그사람들, 즉 고조선 사람들(虞舜黧黑)을 검려(黔黎)라 했다.

묵자에는 “著在周之春秋, 著在燕之春秋, 著在宋之春秋” which referring the annals of those feudal states.  봄(春: 三 and 人 仨. 𡗗,下:日) 이라고 읽는 글자에는 (동쪽에 나타난)세 사람이 해을 떠 받든다”는 뜻이 있다. [8]   흔히 말하는 동도서기론 (東道西器論)의 뿌리다. 검을 검 (黔: 黑 今  )자는, 귀신(천毒, 궁홀忽산)의 명령을 뜻한 글자다. 귀주성(貴州省)을 검지( 黔地)라 한다.  천또개비 귀신의 후손들이 사는 곳이란 뜻이다. 그곳 남쪽 나라에 사는 사람들을 삼묘의 후예라 묘족 (苗族), 또는 백익의 후손이라 이족 (彝族)이라 한다.

검 (黔: 黑 今  )자를 남쪽에서는 금(kim4) 이라고 읽는다. 방이 설화 (旁㐌 說話)의 주인공을 신라 제일 귀족 김가(新羅國有第一貴族金哥)라 한다. 여러 글자로 기록된 불교국가 신라 (新羅)와 가야(伽倻)는  대만섬을 포함하나 지나라 부르던 동남아시아 전역에 살았었다.

 

수유란 별명이 붙은 양혜왕 (孟子見梁惠王)을 맹자가 만났다. 양혜왕의 장례식날 눈이 많이 왔다. 아들 양왕이 맹자가 “군주가 선정을 배풀면 하늘이 알아 새상을 풍요롭게 한다”는 조언이 있다. 이를 인식한 아들이 말하기를; [전임 왕은 사직을 돌보고 국민을 부양하기 위해 조금 더 머물고 싶었던 듯 아버님의 소망이, 하느님께 알려져서 눈을 많이 내리게 했습니다.]라 했다.

죽서기년에도 같은 내용이 실렸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는 어휘가 이에서 나온듯 하다.

맹자에 나오는 고자(告子)에서  “고자질” , 엄지다음  손가락으로 지시를 한다. 두쩨 손가락을  검지,  넷쩨 손가락을 약지, 또는 무명지 라는 손가락의  이름에 나타났다.

백익(伯益, 李 )이 다스리던 서주 원주민 숙진씨 (肅慎)들이  한반도에 정착 했다. 이성계는 만주 사람이다. 백익(伯益, 李 )이 세웠던 나라  이름을 따서  이씨조선 (李氏朝鮮)이라 했다.

결론: 묵가 (墨家)에 실린 글자의 어음과 뜻이 와전 되고 때로는 어음이 같은 글자로 바꾸었다.  있어야할 재세이화 (在世理化)란 문구가  제자백가 기록에는 실리지 않았다. 문헌을 살펴보면  묵가 (墨家)에 실린  여러 은유적 문구에 재세이화 (在世理化)의 뜻이 있다. 묵가 (墨家)란  “고죽군 묵태(墨胎)와 같은 혈통으로, 왕검조선의  후예로 명실상응 (名實相應)한 실용적이고 신성한 사명을 연구하던 학파” 를 부르던  이름이다. 금미달  영역이었던 산서성  대군(代郡)사람  노승(魯勝)이  서진시대 에 묵변주서(墨辯注敘)로 묵가 (墨家)의 명맥을 이었다.  백낙천 (白居易, 樂天: 772년 ~ 846년)을 비롯한 여러 당송 팔대가의 시문에는 “검루(黔婁)이 란 이름을  청렴 결백한 생활의 모범”으로 사용 했다.

통전에는 재상 홍익지도(宰相弘益之道)란 문구가 있다.  단군 통치 이념이 중원에 계속 남아 있었다.

 

화해의 성인 유하혜 (柳下惠)가 노나라의 단군이었다. 그를 노검루선생(魯黔婁先生)이라 했다. 유하혜 (柳下惠)의  철학적 생활 이념이 묵가 (墨家)의 핵심 사상이다. 하늘의 뜻(天志)을 이룩하고져  난세에 나타난  단군 사상에서 전국시대에 “겸애 (兼愛) 비공 (非攻) 절용(節用)을 주장했던” 묵가 (墨家)가 나타났다.  단군의 후손들이 유희 로 즐기는 바둑에 신선 사상이 잠겨 있다.

Revised 9/25/2025

끝

 

[1].列女傳  賢明  魯黔婁妻: 魯黔婁先生之妻也。先生死,曾子與門人往弔之. 其妻出戶, 曾子弔之。 上堂,見先生之尸在牖下,枕墼席稿,縕袍不表,覆以布被,首足不盡斂。 覆頭則足見,覆足則頭見。曾子曰:「邪引其被,則斂矣。」妻曰:「邪而有餘,不如正而不足也。先生以不邪之故,能至於此。生時不邪,死而邪之,非先生意也。」세상에 어디 검루(黔婁)와 검루처(黔婁妻)가 .. : 네이버블로그

[2].史記 秦始皇本紀: 分天下以為三十六郡,郡置守、尉、監。更名民曰「黔首」。大酺。 收天下兵, 聚之咸陽,銷以為鐘鐻,金人十二,重各千石,置廷宮中。 一法度衡石丈尺。 車同軌。書同文字。 四書章句集注  孟子集注 : 衣帛食肉但言七十,舉重以見輕也。 黎,黑也。 黎民,黑髮之人,猶秦言黔首也。少壯之人,雖不得衣帛食肉,然亦不至於飢寒也。

[3]. 藝文類聚 巧藝部  圍棋:《左傳》曰:太叔文子謂甯喜曰:視君不如弈棋,其何以免乎. 《說文》曰:弈,圍棋也.《博物志》曰:堯造圍棋,丹朱善棋. 《晉中興書》曰:陶侃為荊州,見佐史博弈戲具,投之於江。曰:圍棋堯舜以教愚子,博殷紂所造,諸君並國器,何以此為.  墨家  墨子:  今孔子博於詩、 書,察於 禮樂. 現在  你說 孔子博通《詩》、 《書》,明察禮、樂之制, 而認為他可以作天子.

[4].康熙字典·杍:漢靈帝光和元年,遼西太守黃翻上書。海邊有流屍,露冠絳衣,體貌完全。翻感夢云。我伯夷之弟,孤竹君子也。海水壞吾棺槨,求見掩藏。民嗤視之,皆無病而死。出《博物志.  某比是此山居人,姓李名孤竹。有妻先遘沈疴,歷年不愈.

[5].康熙字典·杍:《玉篇》古文李字, 杍:工木匠或作梓. 尚書正義 : 此古「杍」字,今文作「梓」。

墨家  墨子 公孟: 二三子復於子墨子曰:「告子曰:『言義而行甚惡。』。

[6]. 단군조선의 첫 왕검 백익(伯益) « Lee Mosol’s Book Collection. 水經注: 伊水:又有 《百蟲將軍顯靈碑》,碑云:將軍姓伊氏,諱益,字隤敳,帝高陽之第二子伯益者也

[7]. 墨子所染: 凡君之所以安者,何也?以其行理也,行理性於染當。故善為君者, 勞於論人,而佚於治官。墨子 大取: 為暴人語天之為是也而性, 為暴人歌天之 為非也。諸陳執既有所為,而我為之陳執;執之所為因,吾所為也。若陳執未有所為,而我為之陳執,陳執因吾所為也。暴人為我為天之。以人非為是也,而性不可正而正之。

[8].康熙字典·春:《爾雅·釋天》春爲靑陽。《註》氣淸而溫陽。昏斗指東方曰春。《史記·天官書》東方木主春。《前漢·律歷志》陽氣動物,於時爲春。春,蠢也。物蠢生。

墨家  墨子 公孟: 二三子復於子墨子曰:「告子曰:『言義而行甚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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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세이화 (在世理化)가 묵가 (墨家)의 핵심 사상이다

 

모두들 단군조선을 전설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단군왕검이 시련을 받고 사는 사람들을 옳바로 가르쳐 밝은 세상에 살도록 인도 한다는 홍익인간이 대한민국의 교육이념으로 채택되었다. 풀이에 논란이 있는 재세이화 (在世理化)를 AI에는 답하기를  ” “To govern and transform the world” or “to regulate and civilize human affairs.” The phrase “在世理化” is used to describe this divine mission: Hwanung’s role is to bring order, civilization, and moral guidance to the human world.” 라고 답한다.

 

국조 단군이 지시한 “신성한 사명”을 찾아 보았다. 사마천의 고향이 단군조선 발상지다. 그는 고향 사람들로부터 들은  황노사상이라 했다. 예맥족이라고 기록된 노인들이  “황노사상을 원시 불교 발생지”에 전하여 불교가 나타났다.  고조선의 지식인들이 원시불교 발생지의 지식인들과 “황노사상을 학술적으로 토론한 결과 도덕경이”  남쪽에서 나타났다. 원시불교가 전국 시대 (기원전 403~221)  금미달 에 이르렀다. 국조 단군이 지시한 “(在世理化)신성한 사명”은 방대한 개념이다.

 

중원에서는  제자백가(諸子百家)란 이름이 나타났다. 논란이 많아  백가쟁명(百家爭鳴) 이란  별명이 나타났다. 제자백가를 사마천은 “음양가(陰陽家) · 유가(儒家) · 묵가(墨家) · 명가(名家) · 법가(法家) · 도가(道家)의 6가” 로 분류하였다. 한서 예문지에는 “제자백가 중 대표적인 10개의 학파를 구류십가(九流十家)라고 부르고 있다. 구류십가는 유가(儒家) · 도가(道家) · 음양가(陰陽家) · 법가(法家) · 명가(名家) · 묵가(墨家) · 종횡가(縱橫家) · 잡가 (雜家) · 농가(農家)의 구류(九流)에 소설가(小說家)를” 더했다.  필자는 “ 금미달이 포위 당했다는 뜻(圍棋 囲棋, 行く”이 있는 바둑 전문가 “박혁가(博奕家) ”를 더하고 십다.

 

제자백가 중에 고조선 사람들의 가치관을 이어온 학파가 있어야 한다. 글자를 보면 묵가 (墨家) 의 핵심 사상이 고조선 사람들의 가치관을 이어온 학파라고 보겠다. 산속(中山) 금미달에  묵자와 글자가 같은 묵태(墨胎)씨라는 고죽 (孤竹)군이 있었다.

묵가 (墨家)는  전국시대 나타났다  진시황(秦始皇, B.C 259년 ~ 210년)이 중원을 통일한 이후 바람같이 사라졌다. 진(秦)나라와 관계가 있는듯 하다.  진시황(秦始皇) 이 천하를 통일하고 봉건제를 군현제로 바꾸고 홱기적인 개혁을 했다. 그 내용에 “평민을 검수(黔首) 로 부른다” 고 발표 했다.  이를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은 검은 맨머리라는 뜻으로, 관직에 있지 않은 일반 백성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글자라 한다.  진시황이 금미달을 흡수하고 전국에 흐터져 살던 검을 수(黔)  또는 검을 려(黎 黧 驪 孋)자  라고 기록 하던 고조선의 여러 부족 지도자들의 권한을 패지 하고 평민으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맹자집주 양혜왕 장구(梁惠王章句)에 실린 내용을 보면 “사서에 검은 색이란 뜻으로 표현한 사람들의 지도자”란 뜻이 분명하다.[1]    금미달에 나타났던 위나라 군주가 남쪽으로 내려와 위혜왕 (魏惠王)을 양혜왕 (梁惠王)이라 했다. 그를 수유 須臾 이무기(彲 이무기 리, 이무기 치)라 했다.  그가  고요가요 가시리의 주인공인 가야국 가실왕이다.

사마천은 나라위(魏)자를  지킬위자로 바꾸어 위만조선 (衛滿朝鮮)이라 했다. 백익이 우물을 만들었다던 곳(伯益作井)에 살던 사람들이 북쪽으로 밀려와 위혜왕 (魏惠王)이 살던 곳이 포위 되었다하여 바둑(囲棋)이란 글자에 나타났다.

 

묵가(墨家)와 순자(荀子)에는 있을 법한 바둑을 뜻한 글자(博弈  圍棋 囲棋)가 없다.

묵가(墨家)에는 바둑을 뜻한 글자라고 풀이 하는 박자(博)를 한국어 순박하다(樸)는 어음의 략자로 사용했다. [2]  신라 시조 박혀거세(朴赫居世))와 같은 뜻으로 사용 했다.

 

상서 주서에 가래나무 제목(梓材)이란 편명에  주공이 원주민의  소박(素朴/樸)한 인제를 골라 잘 다스리라는 지시를 남겼다. 가래나무 제(梓)자는 백익(伯益, 李 )이 다스리던 서주 지역에 살던 원주민을  뜻했다. 그들이 북으로 올라와 금미달에 살다가 전국시대에 산동반도로 내려 왔다.

 

묵가(墨家)는 춘추전국시대에 존재하였던 제자백가의 한 학파로, 묵자(墨子, 기원전 470~391?)를 시조로 하며, 전국시대에 활약하다가, 진시황의 통일 이후 홀연히 사라졌다.

묵가(墨家)의 창시자 묵자(墨子는 산동성 태생 노나라 사람으로 맹자(孟子;기원전 372년?~기원전 289년?) 이전 사람이다.  잘못 풀이 하여 일을 많이 해서 얼굴이 검은 사람이라 한다. 묵태(墨胎) 고죽군과 같은 혈통이다.

 

 

묵가(墨家) 경전에는 한국 고대어를 음차한 상형글자가 많이 보인다. 가래나무 추 (楸) 자가 없다.  추 라고 읽는 여러 글자(杍:李字, 杍, 梓, 秋, 萩, 芻, 騶)는 모두 같은 뜻이라 했다. 산속에 살던 그들이 고난을 격어 고추(苦楸)라 했다. 제자백가 문헌에는 초식동물 이란 뜻에 추환(芻豢)이란 글자가 많이 실렸다.

그 어음이 고구려의 한 부족 고추가 (古鄒加)로 나타났다. 산동성에는 미추홀이 있고,맹자의 고향이 추현(古鄒加)이다. [3]

 

중원세력은 동이수령 백익(伯益)을 살해 하고 그를 여러 글자로 바꾸었다. 그 사실이 그를 추모하던 사람들이 만들어 세운  백충장군 허령비(百蟲將軍顯靈碑)에 실렸다. [4]  백익(伯益)이 전욱 고양씨의 두쩨 아들이고, 성은 이씨(伊氏) 휘가 익(諱益) 자는 토개(字隤敳)라 했다. 토개(隤敳)가 고양씨의 후손이란 기록은 “춘추좌전, 통전, 설문해자”에도 있다 . 순임금은 고양씨의 후손인 이씨(伊氏)의 딸을 정실로 드렸다 .

 

납형을 시작 했던 이기씨 (伊耆氏)라 부르던 단군왕검 백익의 후손을 오얏나무 리(李),  가래나무 자(杍) 또는 가래나무 재(杍,梓,榟) 로 기록 했다.  시경 소변(詩經 小弁)에는 유쌍여자(維桑與梓)란 글귀가 있다. 쌍간하가 흐르는 산서성 (山西省)대현 오대산 계곡에 사는 가래나무 재(杍,梓,榟)자로 기록된 사람들이 이기씨의 후손이란 뜻이다. 흔히 “재와 제를 잘못” 듣고 쓰기도 한다. 이에서 [고향을 재리(梓里)라 하고, 재궁 (梓宮/榟宮) 재궁 (齋宮) 하는 낱말이] 나타났고, 고향을 상자지향 (桑梓之鄕) 이라 부르는 한자로 기록 했다.

 

맹자(孟子;기원전 372년?~기원전 289년?)가 당대의 바둑 성인을 혁추(奕秋)라 했다.

그 후대 사람으로 금미달이 고향이었던 순자(荀子: 기원전 298? ~238?)에 혁추(奕秋) 또는 바둑과 관련된 글자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실리지 않았다. 혁추(奕秋)란 만든 이름이다.

성악설(性惡說)은 공자(孔子) · 맹자(孟子)와 더불어 유가(儒家)의 대표적 사상가 중 한 명인 순자(荀子: 기원전 298? ~238?)가 주장한 인간의 심성(心性)에 대한 학설로, “인간의 본성 (本性)은 악(惡)하다”는 학설이다.

공자가 중용에서 충서(忠恕)를 강조했다. 어느 한쪽으로 지치지 않은 너의 생각이란 뜻으로 너희들 마음은 다양하다는 뜻이 있다.  그러한 인간의 본성 모두를 묵가에서 다루었다. [5] 묵자에는 살아 가려면 주위한경을 영향을 받는다는 뜻에  소염(所染)이란 편명이 있고, 욕심 많은 사람은 더 많이 가지려 한다는 뜻에 대취 (大取)편이 있다.  폭군의 행위를 “ 인간의 본성 하나” 로 보았다.

 

청나라 때  편술된  묵자한고 (墨子閒詁)에 맹자가 만났던  양혜왕(孟子· 梁惠王) 에 관한 설명이 실렸다. 그 에 명실상응(名實相應 ; correspondence between name and reality) 이란 문구가 실렸다. 이 문구가 묵자의 주요 철학적 인식론이다. 그 인간이  타고난 (生)  천성 (天性)을 크게 “살아가기 위한 방법과 생존 보전의 본능(生,性)에 따라 살아간다”고 보았다. 이에서 나타나는 갈등 해소를 위한 법(法) 성악설과 성선설 등등 여러 학파가 나타났다.

그밖에도 묵자(墨子)에 실린 많은 글자를 다른 글자로 바꾸기도 하고 보충설명을 했다.

묵자에는 “著在周之春秋, 著在燕之春秋, 著在宋之春秋” which referring the annals of those feudal states.  봄(春: 三 and 人 仨. 𡗗,下:日) 이라고 읽는 글자에는 (동쪽에 나타난)세 사람이 해을 떠 받든다”는 뜻이 있다. [6]   흔히 말하는 동도서기론 (東道西器論)의 뿌리다.

 

맹자와 대화를 나눈 고자(告子)가  묵자 (Mozi  墨子)의 사상을 이러 받았다.  검을 묵, 검을 黎 , 검을 려,  사방의 지도자들이 모여 만장일치로 단군왕검을 선출했다.  그사람들, 즉 고조선 사란들을 검려(黔黎)라 했다. 사전에는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은 검은 맨머리 라는 뜻으로, 관직에 있지 않은 일반 백성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이라 풀이 했다.

검을 검 (黔: 黑 今  )자는, 귀신(천毒, 궁홀忽산)의 명령을 뜻한 글자다. 귀주성(貴州省)을 검지( 黔地)라 한다.  천또개비 귀신의 후손들이 사는 곳이란 뜻이다. 그곳 남쪽 나라에 사는 사람들을 삼묘의 후예라 묘족 (苗族), 또는 백익의 후손이라 이족 (彝族)이라 한다.

검 (黔: 黑 今  )자를 남쪽에서는 금(kim4) 이라고 읽는다. 방이설화의 주인공을 김가(金加)라 한다.

 

수유란 별명이 붙은 양혜왕 (孟子見梁惠王)을 맹자가 만났다. 양혜왕의 장례식날 눈이 많이 왔다. 아들 양왕이 맹자가 “군주가 선정을 배풀면 하늘이 알아 새상을 풍요롭게 한다”는 조언니 있 이를 인식한 아들이 말하기를;

[전임 왕은 사직을 돌보고 국민을 부양하기 위해 조금 더 머물고 싶었던 듯 아버님의 소망이, 하느님꼐 알려져서 눈을 많이 내리게 했습니다.]라 했다.

 

맹자에 나오는 고자(告子)에서  “고자질”, 엄지다음  손가락으로 지시를 한다. 두쩨 손가락을  검지,  넷쩨 손가락을 약지, 또는 무명지 라는 손가락의  이름에 나타났다.

 

 

성악설(性惡說)은 공자(孔子) · 맹자(孟子)와 더불어 유가(儒家)의 대표적 사상가 중 한 명인 순자(荀子: 기원전 298? ~238?)가 주장한 인간의 심성(心性)에 대한 학설로, “인간의 본성 (本性)은 악(惡)하다”는 학설이라 한다.

묵가 (墨家)에 실린 글자의 어음과 뜻이 와전 되고 때로는 어음이 같은 글자로 바꾸었다. 묵가 (墨家)의 핵심 사상

있어야할 재세이화 (在世理化)란 문구가  제자백가 기록에는 실리지 않았다. 문헌을 살펴보면  묵가 (墨家)에 실린  여러 은유적 문구에 재세이화 (在世理化)의 뜻이 있다.

 

끝

 

[1].史記 秦始皇本紀: 分天下以為三十六郡,郡置守、尉、監。更名民曰「黔首」。大酺。 收天下兵, 聚之咸陽,銷以為鐘鐻,金人十二,重各千石,置廷宮中。 一法度衡石丈尺。 車同軌。書同文字。 四書章句集注  孟子集注 : 衣帛食肉但言七十,舉重以見輕也。 黎,黑也。 黎民,黑髮之人,猶秦言黔首也。少壯之人,雖不得衣帛食肉,然亦不至於飢寒也。

[2]. 藝文類聚 巧藝部  圍棋:《左傳》曰:太叔文子謂甯喜曰:視君不如弈棋,其何以免乎. 《說文》曰:弈,圍棋也.《博物志》曰:堯造圍棋,丹朱善棋. 《晉中興書》曰:陶侃為荊州,見佐史博弈戲具,投之於江。曰:圍棋堯舜以教愚子,博殷紂所造,諸君並國器,何以此為.  墨家  墨子:  今孔子博於詩、 書,察於 禮樂. 現在  你說 孔子博通《詩》、 《書》,明察禮、樂之制, 而認為他可以作天子.

[3].康熙字典·杍:《玉篇》古文李字, 杍:工木匠或作梓. 尚書正義 : 此古「杍」字,今文作「梓」。

墨家  墨子 公孟: 二三子復於子墨子曰:「告子曰:『言義而行甚惡。』。

[4]. 단군조선의 첫 왕검 백익(伯益) « Lee Mosol’s Book Collection. 水經注: 伊水:又有 《百蟲將軍顯靈碑》,碑云:將軍姓伊氏,諱益,字隤敳,帝高陽之第二子伯益者也

[5]. 墨子所染: 凡君之所以安者,何也?以其行理也,行理性於染當。故善為君者, 勞於論人,而佚於治官。墨子 大取: 為暴人語天之為是也而性, 為暴人歌天之 為非也。諸陳執既有所為,而我為之陳執;執之所為因,吾所為也。若陳執未有所為,而我為之陳執,陳執因吾所為也。暴人為我為天之。以人非為是也,而性不可正而正之。

[6].康熙字典·春:《爾雅·釋天》春爲靑陽。《註》氣淸而溫陽。昏斗指東方曰春。《史記·天官書》東方木主春。《前漢·律歷志》陽氣動物,於時爲春。春,蠢也。物蠢生。

墨家  墨子 公孟: 二三子復於子墨子曰:「告子曰:『言義而行甚惡。』。

 

9/22/2025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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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Lee Mosol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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