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의 글자는 전서체의 한자를 본떠 만들었다는 뜻으로, 자방고전 (字倣古篆)란 문구가 『조선왕조실록』 세종 25년 12월조 기사와 『훈민정음』의 「정인지 서문」 등에서 설명한 제자원리에 실렸다.
용비어천가 (龍飛御天歌)에 신등구이조전지재(臣䓁俱以雕篆之才)란 문구와, 맹자에 실린 내용을 인용하여 전각문자(篆刻文字)는 (동이)순임금부터 사용된 문자로 “서주 문왕 천부인을 지닌 사람이 왕(註符節以王為之) 이다. 순임금(동이)에서 서주 시조 문왕(서이)에 이르는 동안 고조선 발생 지역(서주가 나타난 곳) 언어는 전각문자 (篆刻文字)중앙을 갈라 합친 것과 같이 언어는 같았다.
念惟歌詩之作,屬茲隆泰之期。臣䓁俱以雕篆之才,濫叨文翰之任,謹采民俗之稱頌,敢擬朝廟之樂歌
이처럼 풍요로운 시대에, 저희 같은 미천한 신하들이 “조전지지재능을 다하여” 이러한 문학적 책임을 맡기에 부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백성들의 찬사를 모아 감히 황실을 위한 찬가를 지었습니다.
孟子曰。舜文王相去。千有餘歲,若合符節也。註符節,以王為之,篆刻文字而中分之,彼此各藏其半,有故則左右相合以為信也。若合符節,言其同也
중국 남북조시대 양나라 왕자가 편술했다는 금루자(金樓子)에는 “初堯教丹朱棋,以文桑為局,犀象為子”란 문구가 있고, 강희자전에는 “𠭌:《字彙補》古文桑字”란 문구가 있다. 불사초를 구하러 갔다는 곳 “始皇遣問北郭鬼谷先生,云,東海稟洲上不死之草,生瓊田中”,즉 대만섬 을 고주(稟洲)라 했다. 그곳 정신적 지도자를 진동번 풍속기( 隋東蕃風俗記云)에는 , 이목대미륵 (夷目大彌勒)이 수십명의 동반자를 대리고 찾아 와서헌록 (獻鹿) 괘주(餽酒)하는 종교의식을 하여 희위재해(喜為除害) 했다.
전국시대 (미지수천리)라고 기롯한 금미달을 떠난 사람들이 동남아 해안에서 신미제국 20여국을 이루고 살았다. 백제 22 담로가 있다. 왜왕이 다스리는 신라 임나 가라등 6국을 다스렸다”는 등등 삼한의 후손들이 해안을 석권 했다 하여 백가제해란 이름이 나타났다.
불가 기록에는 인도를 여러 글자로 기록한 사연을 설명 했다.
달월 자는 다다렀다, 도착 랬다는 뜻의 사음자다. 월지국이란 천부인이 도착한 곳, 즉 천축국, 인도(印度)를 뜻했다.
天竺之言語,由梵天稟承,故云梵語。 西域記二曰:「詳其文字,梵天所制。 原始垂則,四十七言也。 (中略)因地隨人,微有改變。 語其大較,未異本源。 而中印度特為詳正。 辭調和雅
龍飛御天歌 -> 檢索 “文字”: 海東六龍이〮ᄂᆞᄅᆞ샤〯,일〯마〯다天福이〮시니〮。古聖이〮,同符ᄒᆞ〮시니〮。海,晦也,取其其荒遠冥荒昧之稱。四海之外,皆復有海. Xxx. 孟子曰。舜文王相去。千有餘歲,若合符節也。註符節,以王為之,篆刻文字而中分之,彼此各藏其半,有故則左右相合以為信也。若合符節,言其同也
요순시대 우의 아버지와 동이수령 백익이 산하 구릉을 그려 놓은 약도가 산하경(山河經)의 초본이다. [1] 백익이 단군왕검 (王儉)이 되어 하동 염호 연안에 수도를 정하고 그곳을 평양(平壤)이라 했다.
중국사료에는 평양(平壤)을 평양(平陽)이라 기록 했고 같은 이름이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여러 곳에 흐터저 있다. 모두 서주의 제후국이였던 진(晉) 의 영역으로 산서성 일대에서 나타난다. 산서성을 뜻한 진(晉)이란 한자를 풀어 보면 “밝은 빛이 땅위로 올라오는 형상 (臸,下:日)으로 붉을 단 붉을 주(丹朱)와 같이 조선 (朝鮮) 이란 뜻이 있다. 산서성을 노예 예(隷) 자로, 그들이 만들어 쓰던 문자를 예서(隸書) 또는 천할시 시문(斯文)이라 하고, 고조선언어를 개적어(蓋狄語), 영어로는 진어(Jin 晉Language)라 한다. 이를 사기와 수경주에는 연나라 언어란 뜻에 연어(燕語)라 했다.
전국시대에 중앙 아시아 월지국을 지나 씰크로드를 따라 원시 불교가 고조선의 수도에 들어 왔다. 불교국이 였던 월지국은 인도에서 쓰던 문자를 따서 표음문자를 만들었다. 그러한 글자가 금미달에 이르렀다고 풀이 한다. 그러나 인도에서 나타난 표음문자의 기원은 “가라 사람들의 곳집에 있던 , 천부인에서 얻은 문양” 이라고 필자는 논증 했다. 금루자에 실린 “상간학 흐르는 지역이 (少昊帝金天氏)의 수도( 始都窮桑)였다. 그 곳에서 바둑이 시작 되었다 (初堯教丹朱棋). 그 곳선인들이 옛부터 쓰던 문자가 세겨진 나무판를 바둑판(以文桑為局)으로 코뿔소의 뿔각과 상아로 (犀象為子) 흑백 바둑 돌을 만들어 유희로 즐겼다.
그곳에 있던 예맥족의 수도(𨜒:燕都) 커다란 궁정 건물 (시루:斯婁 )에 제비가 집을 지어 구 곳을 제비연 자 연도(𨜒:燕都)라 했다. 그 곳에 살던 가야국 가실왕, 즉 위 혜왕이 수도를 떠나(離婁) 대양으로 내려가 맹자를 만났다. 그를 양혜왕이라 했다. 예맥 사람들의 궁궐에서 천시께 드리던 제사떡이 한국고유의 시루떡이다. 금미달에서 쓰던 어음이 한반도에 많이 남아 있다. 그 하나가 예성(강)이다.
한국어를 가차한 글자가 고전에 많이 남아있다. 수경주에 힌옷을 입고 사는 사람들을 백적(白狄)이라 했다. 산서성 진양 강수(降水, 洚水)연안이 조선 사람을 뜻한 백의민족의 발상지다. 횃불을 든 사람의 상형자가 불 (佛)자다. 맫백(伯)자와 같은 뜻을 지닌 글자다.
산해경(山海經)에는 조선 (朝鮮)이란 글자가 해내경(海內經)과 해내북경 (海內北經)두편에 실렸다. 왕검조선의 수도 평양(平壤)이 실린 해내경은 단군조선의 발생지를 설명 했고, 열고사(姑射國) 왜 연(倭屬燕) 봉래산 (蓬萊山)등이 실린 해내북경 (海內北經)은 양자 방언에 실린 고조선(朝鮮) 사람들이 쓰던 언어의 분포도를 설명 했다. 단군조선은 산서성 서남쪽에서 나타나 동북쪽 대현 오대산 일대에 수도를 두었던 궁홀산(弓忽山) 금미달 (今彌達)에서 끝났다. 금미달을 훈역하여 미지수천리 (彌地數千里)라 했다. 그 곳 사람들이 발해만과 산동 반도로 내려왔다. 피난민의 언어를 훈역 또는 음역 하여 미(彌)자 와 추(楸)자의 파생어음이 많이 나타났다. 금미달 (今彌達) 에서 유래된 추언(鄒衍) 이란 이름이 나오고 오랫동안 시련을 격던 사연이 향가(鄕歌)로 남아 신라 본기에 전해온다. 가래나무 추(楸 梓) 자는 가야 (伽倻)가 있던 곳을 뜻한다. 옛고향을 쌍재지향(桑梓之鄕) 이라 한다.
[1].吳越春秋越王無余外傳:遂巡行四瀆。與益、夔共謀,行到名山大澤,召其神而問之山川脈理、金玉所有、鳥獸昆蟲之類,及八方之民俗、殊國異域、土地里數:使益疏而記之,故名之曰「山海經」. 太平御覽:會稽東越諸山:禹乃齋,登石簣山,鑿龍門,通伊闕,遂周行天下,使伯益記之,名為《山海經》
천손의 혈통을 이어받은 선조들이 고조선의 마지막 수도였던 금미달 (今彌達)에서 쓰던 고전(古篆)자의 문양 (𠭌: 古文桑)을 살려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 하셨다.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
